(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은행권을 향해 전방위 압박을 가해왔으나 돌연 ‘자율’을 강조하고 나섰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일뿐 은행 각자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언급이 나왔다.
10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8개 국내은행 은행장과 함께 가계부채 관련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는 최근 은행권의 가계대출 취급동향 관련 은행권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근 수도권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띄고 있다. 주택거래량이 회복되고 있고 그 결과로 가계대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월 가계대출이 전월 대비 9000억원 증가했던 것에서 시작해 3월 4조9000억원, 5월 5조3000억원, 6월 4조2000억원, 7월 5조2000억원, 8월 9조500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향후 가계부채를 적정수준으로 조절하지 못할 경우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경제성장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국민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원장은 국내 은행의 경우 주택 관련 대출 집중도가 높은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이 64.2%, 전세대출이 14.4%를 차지했고 이외 신용대출이 14.2%, 예금담보대출 등 기타 7.2%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일각에선 은행이 손쉽고 안정적으로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는 부동산 부문 위주로 자금을 공급하면서 혁신 성장 부문으로의 자금공급은 도외시한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며 “이런 취지에서 최근 은행권이 여신심사기준을 강화하고 자율적인 리스크 관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개별은행 뿐만 아니라 거시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전제로 한 자금 등 위험 성향이 높은 대출에 대해선 심사를 보다 강화하는 등 가계대출 취급에 있어 그간의 심사 경험을 살려 선구안을 발휘하고 대출 포트폴리오를 건전하게 조정해 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 원장은 감독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가계대출을 축소시키기 위해 은행권을 향해 지속적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했던 것과는 다소 달라진 뉘앙스다.
실제 이 원장은 지난해 말 은행권을 향해 상생금융에 동참할 것을 주문, 금리인하를 유도한 바 있다. 그러다 올해 7월 임원회의에서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고 그 결과로 은행권에서는 한 달 만에 20번 가량의 금리 인상이 이뤄졌다.
그러자 은행권이 금리 인상을 통해 배를 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이 원장은 지난달 25일 은행권의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것이 아니라며, 개입을 더 세게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제 은행권에 자율적으로 가계대출 규제를 맡기겠다는 언급을 한 것이다.
이 원장은 “감독당국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며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은행권 자율적 가계대출 관리와 관련해 시장의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고 대출 수요자들은 불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까지 모든 은행이 동일하게 감독당국의 대출규제만 적용하다 보니 은행별 상이한 기준에 익숙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자율적인 가계대출 관행이 자리잡기 위해선 반드시 현 시점에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원장은 “은행권의 자발적인 노력이 조기에 안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가겠다”며 가계대출 규제에 있어서의 자율성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은행권을 대출을 축소해가면서 실수요자 보호 방안도 찾아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은행의 자율 관리 조치가 우선시되면서 당분간 각 은행마다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인해 대출 현장 일선에서의 혼란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