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법인 보유 부동산 매각 대금을 개인적으로 편취하면서 폐업하기로 결심한 부동산 법인 대표가 소득을 탈루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워 성공했지만, 결국 국세청 세무조사팀에 덜미가 잡혔다.
본인이 법인으로부터 빼내간 가지급금을 물려주는 조건으로 소득・재산이 없는 무능력자에게 주식을 양도한 뒤 법인이 신임 대주주에게 지급해야 할 유상감자 대금과 상계하는 수법의 통정행위가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백일하에 드러났다.
부동산 중개업이 주된 사업 영역인 A법인의 대표 P씨는 최근 직업도, 소득도 없는 K씨에게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50억원을 받고 팔았다고 국세청에 신고를 했다.
국세청은 그런데 A법인의 주식양도세 신고에서 수상한 점 여러 개를 발견했다.
우선 A법인 대표 P씨가 A법인으로부터 법인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자금(가지급금)을 무려 45억원이나 가져다 쓴 점이 발견됐다. A법인은 P씨가 가져다 쓴 45억원을 주거래 S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더 이상한 것은 무능력자 K씨가 법인 대표 P씨의 이 가지급금을 승계했고, A법인은 유상감자 대금과 K씨가 물려받은 가지급금을 상계 처리한 점이다.
A법인은 P대표가 무능력 K씨에게 자신의 주식을 50억원에 양도한 뒤 유상감자를 실시했다. A법인 주식 수를 줄여 자본을 감소시키면서 자본금 감소로 발생한 소멸된 주식의 대가를 무능력 K씨에게 지급키로 결정, 이 돈으로 K씨가 법인 대표 P씨로부터 물려받은 가지급금을 갚은 걸로 퉁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가 50억원 상당의 A법인 보유 부동산을 B법인에 매각, 50억원이 법인통장으로 입급된 점이 발견됐다. 게다가 A법인은 유상감자 실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신고를 냈다.
사건을 재구성 해 복기해보면, A법인과 P대표가 주도한 복잡다기한 일련의 과정은 세금을 회피하려는 속셈이었음이 드러난다.
최초 A법인은 은행에서 45억원을 빌린다. 이 돈을 법인 대표 P씨가 가지급금으로 꺼내간다. 법인자금을 회사 밖으로 유출한 것이다. 그런 뒤 P대표의 주식을 무능력자 K씨에게 50억원을 받고 판다. K씨는 P대표가 법인으로부터 꺼내간 가지급금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A법인을 인수한 것이다.
A법인은 그 뒤 법인 보유 부동산을 50억원에 매각해 그 돈으로 은행으로부터 꾼 45억원을 갚는다. 그런 뒤 법인 주식을 소각하는 유상감자를 실시한다. 그런 다음 유상감자로 소각되는 주식의 대가를 받게 되는 새로운 대주주 K씨에게 지급할 45억원과 K씨가 P대표로부터 승계한 가지급금을 상계처리 한다. 얼마 뒤 A법인은 폐업신고를 했다.
국세청은 A법인과 P대표의 행각을 ‘주식양도를 가장한 변칙적 소득 탈루'라고 결론을 내렸다.
P대표는 애당초 법인으로부터 빼 낸 가지급금 45억원을 가짜 주식양도 절차를 거치면서 K씨에게 승계하는 식으로 회사에 도로 채워넣는 절차를 면했다.
가지급금의 회계상 의미는 ‘용도나 액수를 확정하지 않은 채로 지급한 불확실한 돈을 확정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설정하는 계정과목’을 말한다. 세무상으로는 ‘특수관계에 있는 자에게 지급한 법인 업무와 무관한 자금 대여액’으로 정의할 수 있다.
통상 세법에서는 가지급금 발생 때마다 계약서(금전대차약정서 등)를 작성하고 이에 따라 상환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법인은 계약서에 명시된 이자도 받아야 한다. 법인이 대표이사로부터 이 이자를 받지 않으면, 대표이사에게 보너스(상여금)를 준 것으로 관련 세금(근로소득세)을 신고・납부해야 한다.
가지급금을 장기적으로 갚지 않거나 법인이 임의로 대손처리할 경우 업무상 배임, 횡령죄가 성립될 수도 있다.
대표이사 변경이나 기업인수에 따른 전임 대표이사의 가지급금은 원칙적으로는 전임 대표이사가 갚아야 한다. 신임 대표이사에게 아무 이유 없이 승계되는 게 아니다.
대표이사 변경 때 신구 대표이사 간의 ‘가지급금 인수인계’ 절차가 장부상 나타나면 문제가 없지만, 전임 대표이사의 가지급금을 상환하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세법에서는 전임 대표이사 퇴사 시점에 전임 대표이사와 법인 간에 특수관계가 소멸되는 것으로 본다.
국세청은 특수관계 소멸 때까지 회수되지 않은 가지급금을 담보나 법적 다툼, 상계 채무 등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특수관계가 소멸 되는 퇴사 시점에 법인의 익금으로 과세한다. 전임 대표자에게는 가지급금 만큼 상여금을 받은 걸로 봐서 근로소득세를 과세한다.
만일 신임 대표이사가 자기 돈으로 이 가지급금을 갚는다면 전임 대표자로부터 해당 금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법인 폐업 때 가지급금이 남아 있는 경우 법인 청산으로 소멸하는 시점까지 가지급금 인정이자를 법인의 이익(익금)에 반영하고, 해당 금액을 대표이사에 대한 상여로 처리해 근로소득세를 과세해야 한다.
또 법인이 폐업으로 해당 가지급금에 대한 회수를 포기한 것으로 인정되면 해당 대표이사에게 가지급금 전액을 상여금으로 봐 소득처분, 근로소득세를 과세하게 된다.
따라서 가지급금이 있는 경우에는 대표이사 퇴직금과 상계하는 등 반드시 가지급금을 처리하고 폐업해야 거액의 법인세, 소득세 추징을 면할 수 있다.
‘주식양도를 가장한 변칙적 소득 탈루'라고 결론을 내린 국세청이 A법인과 P대표의 행각을 어느 범위까지 합법적 행위로 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식양도를 가장했다”는 프레임은 처음부터 A법인과 P대표가 폐업을 하면서 가지급금 등 관련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K씨라는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가짜 주식양수도 거래를 끼워 넣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짜 주식양수도 거래를 끼워넣은 직간접 이유는 P대표가 법인에서 빼간 가지급금을 갚지 않고 물려줄 목적이 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대주주인 P대표 입장에서 은행 채무는 어차피 폐업을 작심했기 때문에 법인 보유 부동산을 팔아 갚으면 되니까, 법인 자산을 어떻게 빼돌리느냐가 관건이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주식양수도 거래 자체를 부인하면 비록 폐업했지만 A법인은 막대한 법인세를 추징당할 수 밖에 없다. 대주주인 P대표도 근로소득세를 대거 추징 당할 것이고, P대표의 농간에 끼어든 K씨는 증여세를 추징 당할 가능성이 높다.
국세청은 지난 3월말 마감된 12월말 결산법인 법인세 신고납부 내용을 정밀 분석, 불성실 신고 법인에 대해 철저한 검증하는 한편 세무조사 대상으로 판명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할 전망이다.
올해도 예년처럼 법인 대표이사 등의 업무 무관 가지급금에 대해 이자를 제대로 냈는지 등을 꼼꼼히 살피고, 자기주식 처분 이익을 법인 이익으로 제대로 잡았는지(익금산입)도 철저히 검증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부동산과 슈퍼카 보유 법인에 대한 신고 서류를 꼼꼼히 들여다 봐 정밀하게 세무신고의 적정성을 한 번 더 검토할 법인을 가려낼 방침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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