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한국의 부동산 세금제도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세금제도다.
집값이 오를 때까지 보유세는 낮게 매기고 기다려줄테니 나중에 집 팔아 돈 벌면 그 때 양도세로 좀 달라는 식이다.
한국의 GDP 대비 국내 전체 부동산 값은 5.3배로 주요국 평균 4.1배로 1.3배 더 높다.
비교대상인 8개국은 호주 5.0배, 프랑스 4.9배, 영국 4.0배, 독일‧캐나다‧일본 3.6배, 미국 2.7배다.
한국의 주택매매거래 회전율은 5.5%로 미국보다 1.2배, 일본보다 9배 많이 팔린다.
미국(4.5%), 영국(3.6%), 일본(0.6%) 등이다. 증여나 무상거래는 뺀 숫자고 그거까지 치면 한국의 주택매매거래 회전율은 9.9%까지 솟구친다.
한국은 주요국보다 집값은 1.3~2배나 비싼데, 거래회전율이 1.2~9배나 된다.
집이 비싼데도 더 많이 사고 판다는 건 집이 돈이 된다는 것이고, 세금 부담이 낮다는 뜻이다.
무슨 부담이 낮느냐면 보유세다.
한국의 GDP 대비 보유세 비중은 0.16%다. 주요국 8개국 평균은 0.54%로 주요국의 30% 정도다.
일각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동산 세금 이야기만 하면, 양도세‧취등록세가 높다며 목소리를 올린다. 일단 틀린 건 아니다. 한국이 1.5%, OECD 평균이 0.4%란 것은 맞다.
그런데 보유세는 보유하는 동안 매년 내는 세금이고, 양도세나 취등록세는 사고 팔 때 한번만 낸다.
한국이 10년간 보유세로 내는 금액은 GDP의 1.6%인데, 미국은 10%, 프랑스 5.5%, 영국은 7.7%, 일본 5.2%를 낸다. 양도세‧취등록세를 내도 한국은 외국보다 갑절의 세금이익을 얻는 다. 집값 오를 때까지 보유세 적게 매기겠다는 명시적인 메시지다.
한국 부동산 세금이 ‘존버’ 특화형이란 건 알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민주당의 부동산 세금 정책을 보면 ‘옴쭉달쭉’이다.
처음에는 정석대로 보유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주택자 종부세를 찔끔 강화하다가 집값이 올라 종부세 내는 사람이 확 늘어나자 재산세를 낮추고, 종부세‧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올려 95%에게 감세혜택을 줬다.
양도세에서는 전체 주택의 약 40%를 독식하는 다주택자에게 부담을 주는 듯 싶더니 종국에는 양도차익 5억 초과 시 보유공제를 축소하는 안을 국회 제출했다. 전체 중에 양도차익이 2~3억원이 넘어서 세금내는 사람은 0.9% 정도 밖에 안 된다.
거시지표로 볼 때 별로 한 게 없는 셈이다.
언론에서는 여당이 별로 한 게 없다고 비판하면서도 여당 때문에 집값 오른다 세금 높다며 연일 비판이다. 한 게 없다며? 그런데 여기에 여론이 움직이고, 선거 결과가 움직인다.
조금난 부동산을 만져도 지지율 출렁이고, 담당 민주당 의원실은 몇 주간 전화통에 불이 난다. 따르릉 소리만 울려도 해당 의원실은 ‘옴쭉달쭉’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여당을 ‘옴쭉달쭉’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한국 사회는 낙오 사회다.
자녀학비는 삶을 짓누르고 있다.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그 비용을 대지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된다.
근로자 90%가 중소기업에서 일하지만, 임금격차는 대기업의 두 배다.
무수한 낙오 끝에 늙으면 어떻게 되나. 국민연금은 설계부터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어졌다. 당신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병들고 아프면 앓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나야 한다.
부동산은 낙오 사회의 유일한 희망이다.
본 기자가 취재한 영끌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열심히 산 거 빼고 잘못한 게 없다. 그런데 매일 고통 받으며 미래를 두려워 한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낙오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은 영원할 수 없다.
부동산에 더 많은 돈을 부울수록 더 많은 낙오자가 나온다.
그 높다던 도쿄 집값도 꺼졌다. 인구가 줄어서다. 한국도 시한폭탄의 초시계가 돌고 있다. 통계청은 2028년부터 인구가 줄어들 거라고 봤는데, 이미 지난해 한국인구가 2만명 줄었다.
낙오를 막지 않으면 붕괴될 뿐이다.
분명 많은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정부도 우리 모두도.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대가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이 무엇인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집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삶을 지키는 것이다.
집은 ‘사는 주소’가 아니다. ‘인생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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