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이 가야 할 미래는 조세회피처…조세경쟁력 순위의 허구성

2024.02.16 15:17:00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무언가를 비교할 때, 그 조사의 편향성을 알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 조사가 가장 좋다고 보는 게 뭔지 찾아보는 거다.

 

한국은 인구 5000만이 넘는 국내총생산 2200억 달러의 주요국이다.

 

세금제도는 그 나라의 역사에 맞춰 바뀌며, 나라가 커지면 조세제도는 복잡해진다.

 


그런데 누군가가 한국은 인구 130만‧370억 달러의 조세회피처 국가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위의 표는 한국의 주요 일간지‧경제지, 국책연구기관, 학계 주요 인사들이 매년 가을마다 인용하는 국제 조세경쟁력 순위 이야기다.

 

미국 민간단체, 조세재단(Tax Foundation)이란 곳에서 발표하는 데 쉽게 말해 정책 민원 단체다. 기업 이익을 대변하며 기업과 재산에 세금 물리지 말고 개인에게 세금을 떠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의도에서 발표하는 게 조세경쟁력 순위다.

 

OECD국가들은 평균 전체 세금의 10% 이상을 법인세에서 버는데 미국은 6%밖에 벌지 않는다. 그런데도 재단은 미국을 한국이나 일본 정도의 20위권 이하 후진` 반열에 밀어 넣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 부(富)가 세금을 피해 해외로 도망가는 것을 강력히 막고 있다.

 

단체 입장에서야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1937년 재단 출범 당시 주도한 곳들은 제네럴모터스 그룹, 존스 맥빌 그룹, 스탠다드 오일 등 미국 굴지의 대기업들이었으니까.

 

한국의 주요 관‧학‧언계에서 이걸 좋다고 하시려면 최소한 단서는 하나 달아주셔야 했다.

 

‘이 순위는 순전히 기업 입장에서 매긴 것입니다’라고.

 

이제 맨 처음 말했던 조사의 편향성을 말하자면, 이 순위에서 조세경쟁력 최고 모범국가는 에스토니아.

 

자랑스러운 조세회피처 국가다.

 

개인소득세에서 1위, 법인세에서 2위인데, 개인소득세는 20% 단일세율로 가난한 사람과 못 사는 사람 동일하게 매긴다. 단일세율은 철저히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하며, 인구나 경제규모가 좀 되는 국가들은 누진세율로 만든다. 부자에게 유리하니 당연히 1등이다.

 

에스토니아의 법인세율은 0%인데 대신 사회보장 명목으로 왕창 걷는다. 그것마저도 기업한테 걷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서 2등이다.

 

다만, 이 구조는 ‘에스토니아에 직원 0~1명 있는 유령회사’를 만들기에는 최적의 구조다. 과연 조세회피처 국가다.

 

2위 라트비아, 3위 뉴질랜드, 4위 스위스, 5위 체코, 6위 룩셈부르크, 7위 터키 등 상위권들 모두 깔 수 있지만, 지루해지니 생략하고 아래의 그림을 보자.

 

아래 그림은 조세재단이 조세경쟁력 선진국가는 짙은 파랑색, 후진국가는 짙은 상아색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우리 배우지 말아야 할 나라들은 서유럽국가들이고, 배워야 할 국가들은 동유럽에 배치되어 있다.

 

다시 말해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조세 후진 국가이며, 탈세‧비자금 창구로 쓰이는 나라들이 배워야 할 국가들이다. 

 

물론 준수한 영역에 속하는 독일이나 북구 3국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다. 바로 국가 체계의 체험이다. 조세제도는 그 중 표층에 불과하다. 이걸 경험하지 않으면 저 조세체계가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없다.

 

이 나라들에서 한번 기업 해보시라.

 

한국 법관들이 기업 비자금 재판 때마다 말씀하시는 ‘경영판단의 원칙’.

 

독일에서도 사용하니 가보시라.

 

개인‧가족기업 세워서 그 법인 명의로 스포츠카, 아파트, 골프장 회원권, 해외여행 뽑아보시고, 산별노조를 무시하고 월급 동결 및 퇴직 종용해보시고, 공익재단을 통해 상속지분 10% 비과세 혜택을 받아보시고, 자녀를 외국인으로 만들어 해외 유령회사 대주주로 세워놓고 계열사 중간거래상으로 만들어 기업 이익 빼보시고, 전환사채를 돌리거나 저가 합병으로 수 배, 수십 배, 수백 배 차익을 한번 봐보시라.

 

독일에도 사면제도가 있는데, 혹 기대해볼 수도 있겠다. 독일 검찰청을 아주 뭉개버려야 가능하겠지만. 거긴 사면 요건이 수사상 중대한 오류다.

 

앞으로 조세경쟁력 순위를 더 많이들 인용해주셨으면 좋겠다.

 

당부컨대 이 순위가 지향하는 국가가 조세회피처고, 지향하지 않는 국가가 서유럽국가란 점도 동시에 알리셨으면 한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한국은 조세회피처 따위가 절대 될 수 없다.

 

한국은 자기 일감(제조업)이 있는 공인이자, 장사꾼(수출) 나라다.

 

공인‧장사꾼 모두 신용이 생명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조세제도가 OECD처럼 ‘낮은 법인세‧높은 소득세’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세금은 돈이 쌓여 있는 곳에 물리는데 한국은 재벌과 기업, 부동산에 올인한 나라다.

 

거꾸로 개인에게 부가 잘 귀착되지 않는다.

 

당연히 법인세와 재산세(상속증여세 포함)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고, 소득세와 소비세를 올리기가 어렵다. 소득세 중에서도 주식양도세, 주택임대소득 등 굵직한 구멍들이 많다.

 

어떤 세금은 높고, 어떤 세금은 낮고.

 

조세경쟁력이란 게 있다면 겨우 그 따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세경쟁력이란 자기 나라 상황에 가장 적합한 체계를 갖춘 나라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OECD 평균처럼 소득세, 부가가치세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부의 분배체계와 사회공공지출구조에도 손을 대야 한다. 특히 정경유착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세금 내야 하는 것의 억울함만이 아니라 어떻게 쓰는지의 억울함도 따지는 나라.

 

조세경쟁력이 있는 나라는 그런 나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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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주 기자 ksj@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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