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윤석열-이재명 회담, 의제 이상 중요했던 ‘앵커 포인트’

2024.04.29 19:22:20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4월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만났다.

 

흉기에 목이 찔려 생명이 위급했던 상대에게 건강 회복은 됐느냐고 묻는 윤석열 대통령과 차로 20분여 거리밖에 되지 않는 용산과 국회가 첫 회담에 이르기까지 700일이나 걸렸다는 이재명 대표.

 

통상 고위급 회담은 기념용 사진을 찍고, 간단한 환담 후 비공개 회담이 진행되지만, 이재명 대표는 회담장을 떠나는 기자들을 붙잡고 미리 준비한 10페이지 분량의 모두 발언을 기록해줄 것을 요청했다.

 


◇ 민의와 정치 실종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24.4.2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회담. 윤석열 대통령)

 

이재명 대표 모두 발언에 담긴 10가지 의제, ▲민생회복지원금 ▲연구개발예산 복원 ▲전세사기 특별법 ▲의료개혁 특위 ▲소득대체율 증가를 중심으로 한 국민연금 개혁 ▲이태원특별법 ▲채상병 특검 ▲저출산 정책 재설계 ▲재생에너지로 산업재편 ▲실용외교 등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상당수는 예상하던 것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굳이 언론에 기록을 남길 것을 요청하면서까지 10분간에 모두발언을 했던 이유는 ‘판’이었다.

 

2년 전 대선 승리자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이어진 지방선거에서도 대승을 거뒀다. 여권에서는 대세가 바뀌었음을 자신했다. 그중 하나가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윤심이 곧 민심’이란 말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까지 과거 정부에선 늘 있었던 대통령-여당대표 회담 한번 갖지 못했다. 협상대상자가 아닌 패자 취급을 받았던 셈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 시기를 공포로 규정했다.

 

“최근에 많은 우려를 합니다만, 정부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서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보도를 이유로 기자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께서도 혹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거 아닐까 이런 걱정들을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다, 이런 연구결과를 발표되기도 합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보면 소위 말 폭탄이 진짜 폭탄되는 거 아닌가 이런 걱정도 많이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행안부의 경찰 지휘 강화, 정보경찰의 부활, 대검의 특사경 정보 분석 등 치안과 정보에 대한 결합이 강화됐다. 언론비판이 있긴 했으나, 민주당 정부 때에 비해선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해법으로 민의에 대한 추종과 정치의 부활을 제시했다. 쉽게 말해 야당과 협력하자는 말이다.

 

“정치의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의 뜻을 잘 따르는 데서 시작된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중략)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저의 입을 빌린 우리 국민들의 뜻이다, 이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기존 패, 거부권 행사로는 야당과 협력이 불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견제와 균형 속에 국정을 함께 이끄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 하시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총선의 민의를 존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변화를 관측할 앵커 포인트

 

이날 회담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정치는 단위가 정해져 있는 ‘자’가 아니라 늘렸다가 줄일 수 있는 ‘고무줄’처럼 양자 간 조율과 타협으로 조정된다. 정치에 단판 승부란 없다.

 

그러하기에 회담 전 통상 실무진 간 의제를 정하고, 양쪽의 ‘고무줄’의 길이가 얼마인지 가늠해 내 전략과 전술을 조정한다.

 

하지만 본 회담은 정해진 의제설정 하나 없이 백지 회담으로 진행됐다.

 

관측가능한 범위가 사라진 셈이다.

 

회담 후 대통령실에서 나온 말들도 총론적·대승적·공감 등 구체적 의미가 없는 여구가 상당수였다. 

 

하지만 이날 모두발언 의제에 의해 불투명한 회담에 평가 기준점이 설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주어진 시간은 무궁하지 않다.

 

그리고 2022년 대선에서 지선으로 갔듯

 

2024년 총선에서 지선으로, 지선에서 대선으로

 

민심의 평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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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주 기자 ksj@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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