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新외감법 폐지론下] ‘회계감사’ 신외감법 이전 부실시공 그대로다

2021.12.06 11:55:20

제값 달라해서 줬더니 현장 인력 부족은 여전
회계감사 실무자들, 과잉‧저가수주 관행 호소
매년 1000명씩 줄퇴사 “회계감사, 다신 안 돌아온다”
미국회계사로 공인회계사 대체는 모욕
합리적 인력증원, 업무분장 통해 과도한 업무부담 낮춰야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재계가 대선을 앞두고 新외감법 축소‧폐지를 공표하고 나섰다. 앞서 대선 특수로 신외감법을 통과시켰던 회계사회는 바싹 긴장했다. 김영식 회계사회 회장이 고군분투했으나, 회계사회의 대응은 다소 느렸고, 그나마도 명확하지 않았다.

 

신외감법 통과 후 회계업계 내부에서 정말 품질이 좋아진 것 맞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회계사 대체 제안은 회계감사 실무자들에게 기름을 끼얹었다. 신외감법 도입 후 회계업계가 감사품질 향상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거 아니냐는 격한 표현까지 나왔다.

 

 

지난달 회계감사 실무자들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슈가 회계사회 내부에서 발생했다.

 

모 회계법인 대표는 회계사회 내부 회의에서 회계감사에 미국회계사를 쓸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공인회계사를 구하기 어렵고, 미국회계사도 전문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소식을 전해 들은 회계감사 실무자들 사이에서 모욕감마저 느낀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공인회계사의 공인은 국가가 회계감사 자격을 국가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회계사에게 회계감사를 허용한다는 것은 '한국의 회계주권'을 무시하고, 현재 공인회계사의 전문성마저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감사 실무자들의 비판의 날은 매서웠다. 회계법인 경영자들이 회계사들을 단순 계산기 정도로 생각하니 회계품질이 나아질 리가 있느냐, 그럴 거면 신외감법을 도입 취지가 무엇이었느냐고 되물었다. 

 

이 가운데 가장 건조하면서도 뼈아픈 지적은 ‘신외감법이 나온 후 기업들은 변화하려는 몸짓이라도 하는데 회계업계는 그렇지 않다’라는 말이었다.

 

회계감사 실무자들은 생산라인을 증설(증원 및 경력직 유지)하라고 주기적 감사제, 표준감사제가 도입됐지만, 정작 회사(회계법인)에서는 판매관리비 등 영업직 성과보수(일감 수주 및 영업선 관리 보수)만 늘어났다고 성토했다. 

 

회계업계가 신외감법 도입을 통해 적정 생산원가를 확보했지만, 영업을 따오는 파트너들의 이익만 대폭 늘어나고 현장의 생산라인(충분한 인력과 시간) 확충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 회계사가 1년에 1100명인데 일할 사람이 없다?

 

미국회계사 제안이 나온 ‘현상적 이유’는 중견, 중소 회계법인의 인력난 때문이다.

 

1년에 최소 1100명이 넘는 회계사들이 합격장을 받고 시장에 나온다. 올해에는 1172명으로 역대 최대인원을 경신했다.

 

삼일, 삼정, 한영, 안진회계법인 등 업계 빅4는 신외감법 시행 후 쓸어 담다시피 채용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 1, 2위인 삼일과 삼정이 올해 채용한 한국공인회계사만 각각 385명, 390명이다.

 

신외감법 도입 후 보수도 상향조정됐다.

 

삼일은 회계사 기말 300% 보너스 중 200%를 월급에 섞어 지급하고, 나머지 100%는 기말에 지급하도록 했다. 조삼모사가 아니다. 회사로서는 늦게 돈 줘서 누렸던 이자효과를 포기하고, 회계사는 지출능력을 빨리 확보하게 된다.

 

삼정은 3년차 시니어 회계사의 승진시 기본급 인상률을 26.3%로 올리고 중간 성과급 200% 안을 내놓았다. 승진이 조건이기는 해도 최소 연봉이 1억5000만원선을 가볍게 넘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도 매년 대량 퇴사의 릴레이는 계속되고 있다. 신외감법 이전이나 이후나 1000명을 뽑으면 1000명이 퇴사한다는게 회계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문제는 퇴사자 상당수도 회계사가 된 후 감사경력 3~5년을 채운 실무자들이란 점이다. 보수가 늘었고, 주 52시간도 시행되긴 했는데 회사 실무라인에는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퇴사 사유도 절박하다. 건강이 무서워서, 가족을 잃을 거 같아서란 말이 나온다.

 

기업 결산철, 회계감사 철이 되면 야근 시즌이 시작된다. 시즌이 끝나면 3주 정도 유급 휴가가 보장되지만, 시즌 시기가 임박하면 극한의 업무스트레스에 내몰린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됐지만, 현장에서는 총량제로 운영된다. 한 달이 4주라면 한 달 동안 208시간을 일 시킬 수 있는데 20여 일의 영업일로 나눠 하루에 9시간 일 시킬 수도 있겠지만, 208시간(8.7일)을 한 방에 몰아서 9일이나 10일 동안 잠도 안 재우고 일 시키고 나머지 10여 일을 쉬게 할 수도 있는 식이다.

 

한 회계사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하루 3~4시간씩 자고 나머지 풀 타임 야근을 하면 건강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건강에 이상신호가 느껴지는 순간 3년 채우면 꼭 퇴사하든지 아니면 딜(기업 인수합병 등 투자 컨설팅)이나 컨설팅으로 빠져야 살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7급 공무원으로 재입사한 빅4 출신 회계사는 퇴사 후 보수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지만, 그 때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은 삶의 여유도 있고 평일에 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집에 가서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가 회계법인에 다녔을 때 받았던 급여는 현재 그가 속한 기관의 고위공무원 급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 회계업계의 콘크리트 천장

 

회계사회에서는 이러한 현장 실무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다 옛날 소리라고 일축했다. 옛날에는 힘들어서 탈주한 게 맞지만, 지금은 선택권이 늘어나는 데 대한 자연스러운 퇴사라는 것이다.

 

한 삼일 출신 회계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삼일 출신 회계사는 삼일이 IT기업도 아니고, 업무 숙련도가 중요한 회계감사업계 1위 기업에서 매년 20%씩 퇴사자가 발생하는 게 정상적인 일이라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삼일회계는 국내에서는 굴지의 1등 회계 기업이다. 고객(기업)만이 아니라 동종 회계사들, 그리고 대응하는 정부기관까지 삼일의 역량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 삼일회계 내부 한국공인회계사는 1800명 중 매년 300명이 퇴사하고, 빈자리를 300명의 신입으로 채우는 일이 매년 되풀이돼고 있다. 삼일이 아닌 모 회계법인의 경우는 일에 지쳐 나가는 회계사의 수가 너무 많아 인건비가 줄어 이익이 올랐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회계 감사반 실무자들은 줄퇴사 원인을 업무량 총량이 유지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현재 회계법인은 등급(티어 1, 2, 3, 4)에 따라 일감을 배정받는다. 대기업 3개, 중견기업 7개를 맡았던 기업이 대기업 6~7개를 맡는 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총량유지 기준이 과거 자유수임제에서 마구잡이로 일감을 따와 늘어난 업무량 기준으로 정해지다 보니 주기적 감사제, 표준감사시간제가 도입돼도 일하는 건 그대로라고 말한다. 일감이 줄면 개별 난이도가 오르고, 난이도가 낮아지면 맡는 일감의 수가 늘어나는 식이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회계업계의 성과 배분체계가 지목된다.

 

회계 감사반(회계감사 실무자)의 업무량은 담당 파트너 회계사가 얼마나 자기 계정의 일감을 가져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파트너 회계사는 일감의 규모에 비례해 성과급을 받기 때문에 자신이 관리하는 ‘일감의 수와 질’에 따라 보상의 규모도 달라진다. 그런데 파트너급이 회계감사 실무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일감이 늘어나도 파트너는 보수가 늘어날 뿐 영업선 관리 외에 업무적으로 큰 부담을 지지 않는다고 전한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은 다르다.

 

파트너라 해도 실무에 참여하지 않으면 돈을 못 받는다. 피감기업에서 보수를 줄 때 파트너건 시니어건 회계감사로 일한 시간과 업무의 중요성을 철저히 계산해 개인당 시간급으로 보수를 지급한다.

 

국내 기업 재무담당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회계법인 파트너는 하는 일이 정말 많지 않다고 말하는데 처음 계약맺을 때 한번, 회계감사 종료 후 보고서 제출할 때 쑥 훑어보는 것이 전부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긍정적이지 않은 입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파트너급이 회계실무 관여 정도가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할 때 그리 높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업계도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신입회계사가 빅4에서 3~5년 정도는 머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기업 인사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회계사 이직 시장에서는 최소 요구 경력이 3년이며, 빅4 출신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중견회계법인보다 빅4가 체계적으로 일을 잘 하며, 회계감사를 몇 개 기업을 해봤냐보다는 큰 기업을 얼마나 해봤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견, 중소 회계법인의 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지만, 그 내부를 보면 업무량은 빅4와 같은데 보수는 70~80%로 깎아서 오길 원한다고 한다. 일은 그대로인데 보수만 깎겠다는 중견회계법인에 들어갈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 실질 생산원가의 정상화

 

현재 회계감사 실무진들 가운데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는 것은 그 속내야 어찌됐든 기업들은 신외감법에 의해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정작 회계법인들은 돈만 더 받고 신외감법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한다는 데 있다. 

 

비유하자면, 자유수임제하에서는 저가‧과잉 수주로 제값도 못 받고 일해야 해서 철근 빼고 기둥 줄여서 공사 기간을 억지로 맞췄었다. 그래서 철근 제대로 넣고 기둥 굵기도 설계대로 유지하라고 신외감법을 도입했다. 그런데 회사가 신외감법으로 제값을 받는데도 과거처럼 철근 빼고 기둥을 줄여 파트너나 회사 이익만 극대화하려고 있다는 지적이다.

 

회계사회도 이러한 사정에 대해 손을 놓은 것은 결코 아니다.

 

김영식 현 회계사회 회장(전 삼일회계법인 회장)은 취임 즉시 대형 회계법인의 노하우와 시스템을 공유했고, 중견, 중소 회계법인의 역량강화, 다시 말해 이들의 감사품질 향상에 이바지하려 했다. 

 

새로운 최신 무기가 도입됐다고해서 절대로 강군이 될 수 없듯이, 신 무기를 운용 가능한 내부역량 강화와 개발지원, 그리고 인재영입 노력이 뒤따랐어야 했다.

회계감사반 실무자들은 감사반에 적당한 업무량, 적정 보수, 충분한 인력과 시간을 부여하는 것, 이는 신외감법의 본질적인 목적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은 미국회계사 같은 모욕적인 방안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별 보수가 하향 조정돼도 좋으니 인원을 늘리고, 인원당 업무량을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저가 쌍끌이 영업을 지양해 저녁 있는 직장 등 일에만 전념하게 해달라고 하고 있다.

 

미국처럼 파트너들도 회계감사실무를 해야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되기는 당장 어렵겠으나, 충분한 인력확보, 인당 업무량 조정, 체계적인 운영 등 회계법인들이 회계품질을 올리기 위한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다보면 기업들도 신외감법에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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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주 기자 ksj@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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