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6회 연속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기준금리는 기존 3%에서 3.25%로 올라섰다. 이와 함께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1%대로 낮춰 잡으며 새해부터 경기침체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임을 시사했다. 일명 3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24일 베이비스텝(0.25%p 인상)을 단행해 기준금리를 3.0%에서 3.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기준금리 인상 결정과 그 수준에 대해선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이례적으로 터미널 레이트(Terminal Rate, 금리종착점)를 공개했다. 최초로 한국판 점도표를 제시한 것인데, 금통위원들이 이번 금리 인상기 최종 금리 수준을 3.50%로 내다보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 그 내용이다.
먼저 그는 “지난달에는 외환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이라 대외요인에 더 많은 중점을 두고 최종 금리를 고려했으나 이번엔 금융 안전 상황과 성장세 둔화, 물가 수준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50% 정도로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위원이 3명, 3.25%에서 멈추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위원이 1명, 3.50%에서 3.75%로 오를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위원이 2명이었다. 시장에 예측 편의를 주기 위해 위원들의 터미널 레이트 의견을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이 총재의 언급을 바탕으로 3.50%를 주장하는 금통위원 3명은 신성환, 서영경, 박기영 의원, 3.25%에서 금리 인상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을 낸 금통위원 1명은 주상영 의원, 3.75%로 올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한 금통위원 2명은 조윤제, 이승헌 위원이라 추측하고 있다.
아울러 이 총재가 언급한 터미널 레이트에 대해선 한국판 점도표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점도표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매 분기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뒤 발표하는 금리 예상치로, 연준 의원들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금리 인상 시기와 폭을 점도표 위에 점으로 찍는다.
이를 두고 한은 관계자는 “미국처럼 아주 세세한 전망을 제시하는 불가능하지만 한은이 수량적인 포워드 가이던스가 가능할 정도로 역량을 갖추도록 하자는 게 이 총재의 뜻”이라고 전했습니다.
금리 인상 기조는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기존과 같이 당분간 유지할 것이란 의사도 분명히 드러냈다. 그는 “당장은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것 관련) 3개월 정도로 생각한다. 그 뒤 기간에 대해선 많은 불확실성이 있어 말하기 어렵고 내달 FOMC 결정, 미국 물가 수준, 우리 외환시장에서의 영향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언급했다.
◇ 빨강, 파랑도 아닌 흰색…틀 깨는 이창용式 소통법
이날 이 총재가 매고 온 넥타이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란 시가 까맣게 쓰여진 흰 넥타이를 매고 서울 태평로 한은 본관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과거엔 통상적으로 금통위 의장이 붉은색 계열 넥타이를 매면 기준금리 인상을, 푸른색 계열 넥타이를 매면 ‘인하’ 또는 ‘동결’을 의미하는 메시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판단됐다.
이 총재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중략)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는 시구가 적힌 흰 넥타이를 선택했다.
이 총재는 ‘(넥타이가) 대출자를 위로하기 위한 의미냐’라는 질문에 “아내가 골라줘 제가 좋아하는 넥타이를 매고 왔다. 그 해석이 더 좋아 (해석을) 받아들이겠다”며 “경제주체들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도록 금리를 빨리 안정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한은이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 정도의 속도를 조절하긴 했지만, 고금리 대출을 선택한 차주들의 고통은 여전한 상태다. 고금리 상태에선 부동산 시장이 반등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PIX) 변동주기가 6개월 또는 1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준금리가 다시 내려가더라도 한동안은 시장에 어떤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내년 경기 둔화는 피할 수 없어
한국은행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내년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 8월 성장률 전망치인 2.1% 보다 0.4%p 낮아진 1.7%로 내려 전망했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기존과 동일한 2.6%라고 내다봤다.
내년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글로벌 경기 둔화 영향에 따라 한국 경제 성장세가 주춤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앞서 국외 주요 경제기관에서도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1%대로 낮춰 잡은 바 있다. 세계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9월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1.9%로 제시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달 초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로 1.8%를 예측했다. 이밖에 국내 주요 경제기관인 산업연구원은 1.9% 한국금융연구원은 1.7%,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1.8% 등으로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1%대로 예측했다.
이처럼 경제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측되자, 경기침체 상황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다만 이 총재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르기엔 좀 과도하지 않냐는 게 개인적 생각”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여러 요인에 의해 물가가 낮아질 것으로 본다”고 선을 그었다.
과감하게 김소월 시인의 시가 적힌 넥타이를 매고 올해 마지막 금통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창용 총재. 시구가 3高에 고통 받는 경제주체들의 회환이라는데 공감한 그의 모습에서 한은 금통위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메시지가 어렴풋이 전달됐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경제 둔화를 감안하고라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유지하면서, 동시에 고금리로 고통받는 차주를 위해 빠른 금리 안정화도 고려 대상에 두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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