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내가 바라는 세상

2018.11.05 06:00:00

시인 이기철, 낭송 조정숙, 영상 세인트1

 

내가 바라는 세상_이기철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상 가에 모여 앉아 꽃물 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 꽃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 밤 갓 시집 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일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입니다

 

[시인] 이 기 철

1943년 경남 출생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영남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으로 『전쟁과 평화』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유리의 나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가장 따뜻한 책』 『스무살에게』 『정오의 순례』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평론집 『문예창작』 『인간주의 비평을 위하여』

소설집 『리다에서 만난 사람』 등

 

[詩 감상] 양 현 근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그저 바라만 보아도 웃음꽃이 번지는

그런 욕심없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시기와 질투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환한 꽃말이 되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남부럽지 않고

낮은 자리에 서 있어도 당당할 수 있는

마음 넉넉한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온 마을에 살구꽃 같은 예쁜 사연들이 앞 다퉈 피어나

함께 가는 새벽길을 환하게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낭송가] 조 정 숙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청마유치환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김영랑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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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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