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TF] 에너지 자립 관점 부족한 한국의 수소 비전…강한 수소 리더십 시급

2022.10.21 17:13:20

— 모든 기술 테이블에 올려 시나리오별 공동체 충격 최소화 관점에서 우선순위 결정해야
— 천연가스・그린수소수입 의존하는 수소경제는 뿌리부터 위험…바이오가스 수소에 주목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우리 캐나다는 지구촌 수소 공급자로서 한국을 에너지안보 파트너로 적극 환영합니다. 양국 국제협력 강화가 경제협력으로 이어질 것이며, 깨끗한 지구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포함한 외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타마라 모휘니(Tamara Mawhinney) 주한 캐나다 대사대리가 지난 8월말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수소 컨퍼런스 ‘H2 MEET 2022’의 개막식에서 주빈국 대표로 인사를 하자 이를 지켜본 참석자들이 환호와 함께 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기자는 원인 모를 소름이 돋았다. 앞서 이 대회 조직위원장인 정만기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수력발전 전기로 전기분해(수전해)하는 방식으로 ‘탄소배출 없이 만든’ 청정수소(Green Hydrogen)’를 한국이 대거 수입해 수소 에너지 전환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취지로 말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우리 그린수소 큰 고객!”…봉?


모휘니 대사가 “에너지 전환과 안보 차원에서 양국은 수소의 잠재력에 공감하며 연료전지 섹터를 비롯해 수소 생산물 교역을 강화하고 탄소저장 및 활용(CCU) 등 에너지 혁신을 공조하는 전략을 함께 구현할 것”이라고 했을 때까지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캐나다는 러시아 가즈프롬이 독일과 바다밑으로 연결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등에 사용하는 터빈과 천연가스 발전용 터빈 제조 강국으로, 배울 점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이 캐나다 그린수소의 최대 고객’이라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자 머리카락이 서는 느낌을 받았다. 서방진영은 최근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서방과 여러 측면에서 충돌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서방과 그 동맹국들은   이들 나라에 맞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결성,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등 각종 전략산업 지형을 신냉전 구도로 진영화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 해왔다. 에너지 역시 큰 그림 속에 들어 있다.

 

기자는 그동안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를 보장하는 수소로의 에너지 전환에 열광해왔다. 한국은 산업강국이지만 일본과 독일처럼 에너지 순수입국이기 때문이다.

 

영연방국가들의 수소 야심…신종 산유국 노릇?

지난 2017년 1월17일 세계경제포럼(WEF) 당시 설립된 지구촌 최고경영자(CEO)들의 수소경제 협의체인 수소위원회(Hydrogen Council)는 최근 “2050년까지 청정수소(Green hydrogen)의 60%가 장거리 수송될 전망”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 현재 캐나다 수력발전으로 만든 그린수소와 서호주(Western Australia) 태양광으로 만든 수소를 협력 중이다. 유전개발과 같은 개념으로 일부는 공동 투자로 설비를 개발, 구축하고 다른 일부는 이들 두 나라로부터 그린수소를 수입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알라나 맥티어난(Alannah MacTiernan) 서호주 에너지장관은 9월 초순 “한국이 발전량의 2.3%를 그린수소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고, 한국기업들이 적극 호주 그린수소 기업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한국에 그린수소를 대량으로 팔겠다고 나선 캐나다와 호주는 둘 다 영국 연방국가들이다. 영 연방 국가들과의 사업은 여러모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게 경험자들의 충고다. 호주에서 10여년 사업을 한 경험이 있는 한 해외사업가는 “호주나 캐나다의 경우 국가 주도 사업도 주정부가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나중에 중앙정부가 문제를 제기해 불리한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 부를 수 있는 에너지…생각을 하면서 달려야

이 사업가는 특히 “한국 정부나 공공기관들은 5년 단임제 정권 아래서 아주 급하게 에너지정책 등을 입안, 아무리 늦어도 1~2년 내에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면서 “영연방국가들은 한국의 이런 실정을 잘 알기 때문에, 한국과 협상은 협상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자기쪽에 유리하게 세팅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포스코가 인도에서 추진하던 현지 제철소 건립 시도를 예로 들었다. 당시도 똑 같이 인도 지방정부와 계약을 맺었고, 호주나 캐나다와는 다른 양상이지만 결국 포스코가 엄청난 돈만 허비하고 실패했다. 인도도 영연방 국가다. 사실 이런 디테일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에너지 문제는 사실 전쟁을 불사할 만큼 모든 지정학과 지경학의 근간이다. 그래서 아주 신중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한우 에너지공단 수소경제추진단장은 지난 8월 국회 세미나에서 “에너지 문제는 국제질서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만큼 전쟁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또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평야를 전력질주 하다가 말에서 내려 한참 서 있는 이유는 자기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줘야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특정 이해관계에 휘둘려 졸속으로 추진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 것이다.

 

무턱대고 수요만 높게 잡다보니 하필 블루수소

한국은 아쉽게도 이 단장의 말을 따르지 못했다. 기업들은 잇속이 큰 다각화 차원에서, 학자들은 연구개발 예산 확보가 유리한 쪽으로 수소 담론을 만들어 냈다. 정치인과 관료사회가 이런 개별기업의 이해관계를 종합적이고 공익적이며, 거시・장기적으로 풀어내야 할 책무를 지는 게 당연하지만, 공부가 부족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수소에너지 전환 담론은 ‘블루수소’에 이해관계가 있는 지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수소차량 등에서 신선한 여론을 일으키고 있는 수소 에너지를 일단 발전용 연료전지 분야로 환기시킨 점까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생산돼야 할 수소 수요와 속도를 너무 높게 잡은 정황이 뚜렷하다. 이를 위해 천연가스 수입을 크게 늘려야 하는 ‘블루수소’, 신재생에너지 여건이 좋지 않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그린수소’ 모두 해외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에너지 자립’의 관점을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지난 2월24일 이후 확연하게 드러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지역 특별군사작전 이후 러시아 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유럽의 경우 천연가스 가격이 최고 20배까지 올랐다. 유럽만큼은 아니더라도 한국이 수입하는 천연가스 가격도 크게 올랐다. 천연가스(메탄, CH4)에서 탄소에서 떼어내(개질, reforming) 수소를 만드는 ‘블루수소’는 한국의 전체 수소 수요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오른 10월 하순 현재 한국에서 수소 얘기를 꺼내기가 민망한 이유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깨진 유럽의 에너지 평화

더 심각한 것은 신냉전 구도를 만들고 있는 국제사회의 지정학 속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성큼성큼 들어가고 있는 점이다. 박만기 전 산자부 차관은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화 하면서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 구체적으로 서방국가들과의 협력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수소는 천연가스를 포함한 탄화수소와 달리 국제사회 협력이 꼭 필요한 분야로 특정 국가가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국경을 초월하는 협력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시각이다. 러시아는 못 믿지만 서방국가들은 무조건 믿을 수 있다는 편협한 시각이다. 

 

국회에서 가장 오래 수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노력으로 수수경제 전환을 이끌어왔다고 자부하는 이원욱 국회의원도 “국경없이 다가온 기후변화는 극복도 국경없이 협력해야 가능하다”면서 “수소에너지 협력은 정부간 대화도 필요하고 국경을 초월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소에 관한 한, 국제사회는 아주 잘 협력할 것이라는, 에너지 자립 관점이 눈에 띄게 부족한 시각이다.

 

하지만 러시아와 유럽 간의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통한 지역 안정이 순식간에 깨지는 것을 보면, 현실에서 국제협력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는 프랑스와 독일, 미국 등 4자 협의체를 통해 나토의 동진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유럽 전역에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천연가스를 값싸게 공급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조지아(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추진했고, 올해도 갑자기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에너지 평화가 여지없이 깨졌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낮은 원가로 유럽에 공급하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 세력이 누구인지, 국제사회가 그 세력을 찾아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에너지 자립 관점에서 모든 수소 기술개발에 투자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수소 정책을 논하면서 “탈탄소화를 달성하고 에너지 안보를 보장해야 하는 긴급한 필요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술적으로는 현실에 발을 딛고 차근차근 목표를 달성해 나가려는 용의주도함이 엿보인다.

 

부생(그레이)수소와 개질(블루)수소, 각종 그린수소 기술에 골고루 투자하면서도 현재 전력 공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화력발전을 차츰 축소하는 개념의 시간계획을 잡고 있다.

 

화력발전소를 천연가스 발전소로 전환하고, 가스발전터빈에 천연가스와 수소를 섞어 돌리는 기술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기계연구원 김민국 박사는 지난 8월 국회 세미나에서 “석탄발전을 가스발전으로 전환하면 60%의 탄소저감 효과가 있다”면서 “천연가스 터빈에 수소를 섞어 전소시키면 탄소배출량 제로(0)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소는 운송, 보관에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바로바로 써주는 게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해양국가인 일본은 영하 253도로 저장, 운송해야 하는 수소를 액화해서 운송하는 운송선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개발, 실증을 마쳤다.

 

수소 기술도 내로남불?…협력・조정 총괄할 구심 시급

반면 한국은 수소 생산과 운송・저장, 활용의 고른 기술개발을 위해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연료전지 전문가들은 수소자동차에 국가 지원이 집중돼 있다며 볼멘소리다. 수소를 섞는 천연가스발전 전문가들과 바이오가스 전문가들은 “전기분해 기술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비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구개발비 따 먹는 경쟁 뿐, 진정한 수소 에너지 대계와 거버넌스를 고민하는 전문가는 없다”고 비판한다.

 

지난 9월 열릴 것 같았던 국무총리 수소경제위원회는 10월이 다 가도록 열릴 기미조차 안 보인다. 지난 8월 국회 세미나에서 수소경제위 기능의 한계를 지적했던 민주당 정태호 의원은 “수소경제 국가거버넌스 구축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고 했지만, 공론화를 위한 세미나 개최 제안에는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수소 얘기를 하면서 ‘에너지 자립’ 관점이 부족한지 되돌아 봐야 할 때다. 또 내가 잘 아는 기술 아니면 죄다 당장 시급하지 않다고 강변하는 전문가들의 독선적 태도도 버려야 한다. 모든 수소 관련 기술을 장려하되, 시나리오별로 기술개발 우선 순위를 선택과 집중할 수 있는 국가 거버넌스가 시급하다. 금융회사들은 멀리보고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국민 피해 최소화 하는 수소 에너지 비전 강구해야

외교안보 환경의 역동성을 고려해 모든 색깔의 수소 생산 기술과 운송・저장, 활용 기술에 고루 투자해야 한다. 늦게 가더라도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황상규 전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전국의 음식쓰레기와 하수도 슬러지, 축분 등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에서 수소를 뽑아내면 원자력발전소 1기 정도의 발전량을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에 수상 녹조 등을 이용하면 탄소중립과 에너지자립을 모두 충족하는 수소생산을 늘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환경 측면에서만 수소 경제를 바라보면 곤란하다. 국제사회의 온실가스감축의무가 이행강제 단계에 들어갈 때까지는 다양한 수소 생산과 그린수소 운송・저장, 수입도 배제하면 안 된다.

 

현대사회는 시나리오 경영의 시대다. 어떤 악조건이 닥치더라도 국민들이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수소에너지 전환 설계를 해야 한다. 특정 기업이나 전문가 그룹의 사적 이해관계를 공동체의 보편적 경로로 관철시키려는 탐욕을 버리고, 공동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수소에너지 전환에 본격 착수할 때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지난 2월 세계 최초 수소운반선 진수식에서 “우리 에너지의 구조적 전환을 완수, 미래 일본의 기초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지도자가 나서서 전쟁을 부를 수 있는 에너지의 중요성, 전환, 거버넌스의 시급함을 강변할 때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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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기자 dipsey@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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