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제조업강국 일본은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프로그램에 대응하기 위해 2050년까지 수소 에너지 전환을 핵심 수단으로 골랐다.
해양국가의 명성에 걸맞게 영하 253도에서 가능한 액화 수소를 해외에서 싣고 들여오는 수소 수송선을 세계 최초로 만들어 지난 2월 실증까지 마쳤다.
미국의 군사안보동맹국인 일본은 외교안보적 이해관계를 직접 경제통상정책에도 반영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보다 앞선 수소 기술 수준을 갖춘 주요 선진7개국(G7)국가이기 때문에, 수소 에너지 전환의 일정이나 수순, 국민적 합의 등에 있어 한국과 똑같은 경로로 갈 수는 없다.
2022년 10월 현재 일본의 수소 경제는 국민들에게 여전히 막연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
지구촌 수소 리더 역할
일본 정부는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핵심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수소 활용 로드맵을 작성하고 2017년 세계 최초로 국가 수소전략을 수립했다.
2022년 2월 세계 최초의 액화 수소 운반선의 해상운송 실증시험을 성공리에 수행했다. 호주에서 생산된 수소를 이 선박에 싣고 바다를 통해 일본으로 다시 운송했다. 일본 정부가 수소 도시로 지정한 고베항으로 귀환, 화물을 하역해 첫 시운전을 마쳤다.
당시 일본 정부는 “재생가능한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면서 해상운송인프라가 잘 결합된 호주에서 저렴한 비용으로대량으로 수소를 생산, 국제 수소 공급망을 상업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5월24일에는 도쿄에서 쿼드(QUAD)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쿼드의 주요 의제 중 하나인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패키지(QCHAMP)를 논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회원국인 미국과 호주, 인도, 일본 고위 외교관들은 그린수소와 그린 암모니아, 저탄소 천연가스, 탄소 포집・활용・격리(CCUS)와 탄소재활용 등에 대한 지식을 공유,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화・강화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갔다.
지난 7월8일 하야시 요시마사(HAYASHI Yoshimasa) 외무상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선진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 혼 날레디 판도르(Hon. Dr. Naledi PANDOR) 남아프리카공화국 외교장관과 만나 25분간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판도르 장관은 자국내 일본 기업의 앞선 수소기술 등 청정에너지 협력을 요청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10월22일(한국시간) 호주 서부 퍼스에서 앤소니 알바니지 호주 연방 총리와 만나 정상회담을 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안전보장과 방위협력,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을 향한 연계 차원에서 자원·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을 협의했다.
중국의 해외에너지 기지 서호주 공략에 나선 일본
호주는 일본에 있어서 액화천연가스(LNG)나 석탄 등 에너지의 최대 공급국이다. 기시다 총리는 호주를 ‘특별한 전략적 파트너’로 부른다.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수입에 의존하는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등 에너지와 광물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재확인했다. 또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소 생산 시설을 둘러봤다.
일본 정부는 당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호주 중에서도 서호주는 일본의 에너지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자원과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양국간 협력 진전은 탈탄소 분야, 그 중에서도 수소, 암모니아, 중요 광물 관련 프로젝트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호주 퍼스 공항은 지난 10여년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호주 방문의 관문이었다. 에너지와 주요 광물 개발을 위한 대규모 산업단지가 중국의 제조업의 근간이 돼 왔다. 그러나 중국과 전략경제에 나선 미국이 동맹국들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쿼드, 정보기관협의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등을 구성,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과 군사동맹관계인 일본은 여행수지 등 중국의 해외소비에 적잖게 의존하고 있지만, 미국의 장기전략구도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일석이조’인 호주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이 호주와 에너지, 중요 광물 등 중국의 주된 교역 분야에서 비중을 늘린다면, 호주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에 대한 공급을 줄여 중국을 옥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큰 그림에는 물론 한국도 포함돼 있다. 한국은 서호주 에너지부와 각종 에너지 협력을 서두르고 있다.
수소 기초교육, 수소차 활용 긴급전기사용법 등 대국민 홍보
일본은 2월1일을 ‘도쿄 수소의 날’로 지정했다. 수소의 분자량이 2개라서, 수소 원자 2개가 모여 수소 분자 1개가 된다는 의미로 이날이 ‘도쿄 수소의 날’이 된 것이다.
본지 취재진이 일본 도쿄 미나토구 소재 도쿄타워 인근 수소차충전소를 찾은 것은 지난 10월25일. 가스제품 및 에너지 대기업인 이와타니사가 운영하는 수소충전소는 도요타 전기자동차 미라이의 차량 전시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고, 전시관 관리인이 수소충전소 관리를 겸하고 있었다.
수소가격은 킬로그램당 1220엔으로 한국(880엔, 8800원)보다 비쌌다. 취재진이 2시간여 충전소 주변을 멤돌며 관찰했지만, 충전소를 찾는 수소차량은 단 한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충전소 입구에는 "수소로 세계를 움직인다”는 이와타니의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10월26일 방문한 수소박물관(스이소미르)은 도쿄도 산하 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일종의 수소 교육시설이다. 수소에너지의 일반적 개념과 내용, 도쿄올림픽 선수촌 수소단지 조성계획 등이 포함된 전시관이다.
고정식 자전거 페달을 밟아 생산된 전기로 즉석에서 물을 전기분해, 소량의 수소를 제조, 이를 산소와 융합해 조그만 장남감을 구동하는 실험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도요타가 만든 1세대 수소차 미라이에 장착된 연료전지로 전기를 생산해 다양한 전기 접속 프로토콜을 통해 연결돈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전시장도 눈에 띈다. 혼다사의 전기공급장치는 수소 5킬로그램 충전으로 4인 가족이 1주일간 긴급 비상용 전력 9000킬로와트시(KWh)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미라이 수소차에서 생산한 직류 전기를 혼다의 전기공급기에 연결, 교류 전기로 바꿔 다양한 플러그와 소켓을 통해 가정용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식이다. 지진 등 천재지변시 비상전기공급장치로 사용 가능하고, 캠핑용으로 매우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보일러 전문기업 린나이는 최근 세계 최초로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하지 않는 가정용 수소 급탕기를 개발했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중 물을 끓이기 위해 배출하는 량은 전체 중 무려 30~40%에 이른다.
나이토 히로야스 사장은 현지 인터뷰에서 “11월부터 호주에서 실제 모델하우스를 만들어 사람이 거주하면서 우리 수소 온수기를 실증한다”면서 “실제 거주생활로 문제가 없으면 1~2년 더 검증해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수 슬러지 가스화, 고순도 수소 생산…이동식 수소충전소도
일본도 바이오가스를 활용한 수소 생산 연구가 한창이다. 사실 석탄부터 석유, 메탄, 에탄올, 메탄올등 수소(H)가 탄소와 다른 방식으로 결합된 모든 탄화수소를 가스화, 수소를 추출하는 기술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상용화 해서 발전시켜온 기술이다.
도쿄도 하수도국이 운영하는 국가시설인 스나마치 물재생센터에는 건설회사 재팬블루에너지(JBEC)가 도쿄도정부, 토다 상사, 도큐건설, 도쿄 이과대(Tokyo university of science) 등과 합작으로 하수 슬러지를 활용한 수소 생산시설이 있다. JBEC 도와키 나오키(堂脇 直城) 대표이사 사장은 자사의 수소 생산 시설을 소개하면서 “바이오 슬러지에 열을 가해 가스화, 고순도 수소를 생산한다”면서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수소로 연료전지를 가동, 이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가스화에 재사용하는 식으로 앞서 소각해오던 하수 슬러지를 수소 연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진이 10월27일 치요다 구 야스쿠니 신사 인근 니모히스(Nimohyss) 이동식 수소충전소를 찾았을 때는 마침 한 사업가가 자신의 벤츠 수소차에 수소를 충전하고 있었다. 도요타 자동차 자회사인 니모히스는 도쿄에 같은 방식으로 회사가 운영하는 이동식 충전소를 3개 더 운영하고 있다.
큰 수요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대형 충전시스템이 장착된 트럭으로 충전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 등록 후 예약,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갑자기 수소차 충전고객이 급증할 것에 대비해 만든 이동식 수소충전소는 그러나 지금껏 실제 이동충전을 해본 적은 없다고 현장 관리인이 취재진에 밝혔다.
현장 관리인은 “장기투자 관점으로, 적자를 보고 있지만 정부보조를 받아 조금이라도 수익이 나는 사태를 유지, 마이너스는 면하고 있다”면서 “단골 고객 중 현대자동차 넥소 렌터카를 타는 5명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동식 수소 충전시설은 5년 주기로 교체하는데, 설치된 시설은 2020년 3월 교체후 2025년 2월28일까지 사용가능한 시설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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