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 이레피아노학원 원장) “어느 날 아침에 그레고르 잠자가 이상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속에서 자신이 한 마리의 기괴한 벌레로 변신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체코 프라하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카프카의 소설 <변신-Die Verwandlung>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한 집안의 아들로서 부모와 17세 된 여동생을 부양하는 실질적인 가장인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하게 됩니다. 원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일어난 황당한 사건.
혼자서 가정의 생계를 이끌어 가던 경제적 공급자였는데, 이제는 직장을 다니기는커녕, 제 한 몸 단속조차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지요. 가족을 먹여 살리던 든든한 가장에서 고통을 가져다주는 하찮은 짐 덩어리같은 존재로 전락한 것입니다.
과거의 화려했던 생활이 기억날수록 가족들은 생활고에 힘들어하게 되고 벌레로 변한 잠자를 구박하더니 급기야 내쫓으려 합니다. 기괴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능력을 상실한 그를 가족들은 학대하며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결국 그레고르 잠자는 자책과 절망감에 스스로 외롭게 죽어갑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는 인간이 ‘도구’로 사용되지 못했을 때 생기는 ‘가족들로부터의 소외와 단절’이라는 인간성 상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이란 의미를 되새겨보는 5월입니다. 질병과 고독으로 울고 있는 잠자의 모습이 단지 ‘도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인생의 겨울을 나고 있는 가족의 얼굴이 오버랩되진 않습니까.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외로움과 고통 속에 겨울을 나며 탄생한 음악이 있습니다.
이 곡을 작곡하던 당시 슈베르트는 가난과 질병의 최고 정점에서 무척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빌헬름 뮐러의 이 시를 접하고는 바로 시에 곡을 붙이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연가곡에서 주인공은 화려했고, 사랑했고, 행복했던 모든 기억을 뒤로 하고 쓸쓸히 죽음으로 향하는 방랑자입니다. 슈베르트는 모든 것을 다 떠나보내고 쓸쓸히 겨울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의 아픔을 투영시킨 듯합니다. 결국 그는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이 곡을 완성(1827년)한 이듬해에 31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제1곡에서의 서두는 잠든 연인에게 ‘Gute Nacht’, ‘Good Bye’ 작별을 고하며 시작합니다. 그에게 아픔을 가져다 준 사랑이지만 결코 미워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헤어짐이 고통스러우나 여전히 사랑하기에 잠든 연인이 혹여 깰까 혼자만의 안녕을 독백으로 읊조리며 길을 떠납니다.
소개해드리는 곡은 24곡의 연가곡 중에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보리수(Der Lindenbaum)’입니다. 5번째 곡인데 이전에는 단조로 조용히 흘러가던 노래가 잠시 장조로 바뀌며 따스한 빛깔을 지닙니다.
현실은 고통일지라도 추억은 빛나는 행복인 것. 행복했던 수많은 추억이 저장되어 있는 보리수나무에 이르러 그는 잠시 회상에 젖습니다. 보리수는 여전히 그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주인공의 마음은 예전의 그것이 아닙니다. 잠시 만감이 교차하다가 이내 다시 헤어나오지 못할 슬픔으로 빠져듭니다.
겨울나그네도, 슈베르트도, 그레고르 잠자도 영원한 겨울의 추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도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외로움과 고독의 겨울을 나고 있는 우리 곁의 가족에게는 따뜻한 사랑의 봄을 선사해야겠습니다. 우리도 머잖아 겨울의 방랑자가 되면 봄이라는 부메랑이 되돌아올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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