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 이레피아노학원 원장) 광화문과 서초동 일대를 꽉 채우던 촛불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는 중요한 한 페이지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사상은 ‘자유’입니다. 그 ‘자유’라는 것의 지지를 받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합디다마는, 사람이 10명이면 10명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모두 다르다 보니 자연히 충돌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가족이나 동료 등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이에서도 정치를 비롯한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언쟁이 일어나면 급긴장 태세로 돌아가기 십상이니 말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여기저기 울려나오는 불협화음에 대한 ‘화합’의 길이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불협화음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 1891~1953)는 불협화음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낸 작곡가입니다. 프로코피예프가 공부하던 당시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제국의 수도로서 갖가지 유행이 앞서가던 곳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원에서 배우는 고전주의의 형식과 악기편성, 조성구조를 기본 근간으로 하여 새로운 독창적인 리듬, 화성, 현대적 감각을 얹어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갔습니다.
전통적인 화성을 기본베이스로 깔고, 당시의 앞서가던 음악가들의 신경향을 따라 프로코피예프 또한 다양한 화성들을 구사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가 학습한 ‘불협화음’을 음악에 자주 사용한 것이지요.
그의 이러한 시도들은 어떤 이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주로 보수적인 음악을 하던 교수들과 동료들에게서는 학업을 계속 지속해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끊임없는 악평세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의 음악이 가져다주는 극과 극의 평으로 인해 ‘앙팡 테러블’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였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는 불협화음에서 나오는 긴장과 반목을 잘 융화하여 그만이 지닌 음악적 우아함을 너무도 잘 표현해냈습니다. 그의 음악은 결코 귀에 거슬리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프로코피예프의 특징인 아름다운 멜로디와 기동성 있는 리듬을 적절히 사용하여 ‘신선함’이라는 매력으로 점점 대중들에게 어필되었습니다. 특히 본토에서보다는 망명생활을 했던 미국에서 더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어떤 면에서 수학과 비슷합니다. 엄격한 화성법칙과 공식이 있고, 그 틀 안에서 음악은 작곡되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대로 법칙만 따른다면 재미가 없잖아요. 이 소리도 나오고 저 리듬도 나오고, 이색적인 뭔가가 튀어나와 주어야 음악 듣는 맛이 있을 겁니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불협화음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면, 그의 음악은 한 번 들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전교향곡 ‘Classical’
프로코피예프가 27세이던 1917년에 작곡되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하이든의 음악을 모델로 하여 알레그로, 라르게토, 가보트, 비바체의 4악장의 구조로 전통적인 화성을 베이스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리듬과 화성을 융합하여 현대적 감각으로 작곡한 것이지요. 그러한 이유로 그는 이 곡과 함께 ‘신고전주의의 문을 열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현대음악이긴 하지만 초창기작품이어선지 화성이 그리 난해하지 않고 비교적 편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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