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상속세 감세] 부모찬스가 기업경쟁력? 尹대통령이 말하지 않는 점<上>

2024.02.02 16:28:54

혈통경영주의, 어느 학문에서도 인증된 바 없는 속설
독일 가업승계, 혈통세습이 아닌 지역발전 정책…한국은 혈통세습만 강화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토론회에서 상속세 완화를 시사한 후 대통령실이 18일 “현재 따로 상속세 관련 정책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재계와 언론에서는 상속세 완화 필요성에 대한 요구를 봇물터지듯 쏟아내고 있다. 

 

세금은 고여 있는 돈을 꺼내 필요한 곳에 돌리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저축은 미래에 대한 대비지만, 과도하게 고인 돈은 경제를 썩게 한다.

 


한국 대기업들은 역대급 성장의 과실을 축적하고 있으며, 늘어나는 기업 자산은 공급이 수요를 유인한다는 장 바티스트 세의 법칙을 위반한다.

 

회사의 고인 돈을 꺼내는 방법은 투자 그리고 임금과 배당이다. 이명박 정부는 동반성장을 추진했고, 박근혜 정부는 기업소득환류세를 도입했다. 문재인 정부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란 이름으로 제도를 정비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돈이 더욱 고이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를 폐지하려 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이 저지로 무산되자 재계와 더불어 상속세 감세 전선을 전개하고 있다.

 

 

◇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우수 혈통은 존재하는가

 

“소액주주는 회사의 주식이 제대로 평가받아서 주가가 올라가야 자산을 형성할 수 있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오르면 나중에 상속세를 많이 내고 할증세를 내야 한다. 재벌기업·대기업이 아니더라도 가업승계가 불가능해지고, 기업의 기술도 승계발전이 어려워 독일같은 강소기업이 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는 ▲혈통세습이 어려우면 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경영 혈통주의) ▲상속세는 세습을 막는다는 두 가지 뜻이 겹쳐 있다.

 

혈통경영주의자들은 가족경영이 우수하다며 주요국 대기업 중에도 가족경영 기업이 많이 포함돼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혈통이란 특질 하나가 성공을 보장한다는 연구는 없으며, 장래 급속도로 변화하는 다양한 경영환경에 적합한 유전형질이 있다는 연구도 없다.

 

가족경영기업이 많은 것은 창업자의 자연스러운 세습욕구에서 발현되는 현상적 특질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진화생물학 대신 우생학이 생물학계 주류학문이 돼야 할 것이며, 인류를 지배하는 하나의 혈통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대 경영학에서는 혈통적 수직적 조직체계를 권고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맥쿼리 등 해외 유수의 컨설팅 기업들은 국내 대기업들에게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해소하고 네트워크식 수평적 구조로 재편할 것을 자문했다. 정부에서 주사-주사보-서기-서기보, 일부 대기업에서 부장-차장-과장-주임-대리 등 직급 명칭들이 사라진 것이 그 흔적이다.

 

혈통경영주의에서 나아가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체계가 미래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한국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관치금융을 활용해 재벌 중심의 경제계를 구성했다. 장점도 있었지만, 원‧하청구조란 치명적 단점도 있었다. 이는 계층 고착화를 가속했으며,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란 필연적 저주를 낳았다.

 

 

◇ 독일 강소기업은 상속세 감세가 낳지 않았다

 

독일의 가업승계 정책(강소기업 상속세 감세정책)은 혈통세습을 위한 제도가 결단코 아니라 지역 발전정책 및 지역민 고용까지 포괄한 다같이 잘 사는 정책으로 기획됐다.

 

독일의 가업승계제도는 작은 동네 기업에 적용한다. 이 기업에 채용되는 사람들도 주로 경영자 자녀들과 함께 같은 지역에서 사는 동네 사람들이다. 독일은 상속세 감세를 대가로 일정 기간 지역 고용을 의무화한다. 지역민이 해당 지역에서 먹고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독일은 강소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래 전부터 산별노조 체계를 운영해왔다. 동네 기업 종사자와 대기업 종사자가 함께 목소리를 내기에 독일 중소기업은 쉽게 노동자를 착취할 수 없다.

 

같은 시기 독일은 임시직 활용을 늘리는 하르츠 개혁을 추진했지만, 가업승계 제도는 해고를 최대한 억제하는 정책이었고, 독일은 해고가 발생해도 생계를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이 갖추고 있었다.

 

반면 한국의 가업승계 정책(상속세 감세 정책)은 혈통세습에만 집중하고 있다.

 

한국 가업승계 정책은 처음에는 동네 기업에 하다가 정부를 거듭해가며 대형 기업들까지 확대했고, 세금 감면액도 수백억원까지 늘려놨다. 아직 노동자 고용을 의무화하고는 있지만, 이 역시 정부를 거듭해가며 의무 고용기간을 줄여왔다.

 

윤석열 정부는 부정수급을 막는다는 것을 명분으로 실업급여 제도를 위축시켰으며, 상대적으로 한국은 노동권 보호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나라다. 국제노총의 세계 노동권 지수에서 한국은 변함없이 5등급 꼴등 국가다. 반면 독일은 1등급 최우수 노동권 국가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소기업을 말하긴 했지만, 대기업 상속세 감세는 안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상속세율 상한선을 낮추는 방안을 고민 중이며, 고자산가들에게 부여하는 주식 할증과세를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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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주 기자 ksj@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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