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행정법원이 미납한 추징금에 세금을 물리는 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앞서 대법에서는 부실한 추징금 법제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추징금 과세를 풀어낸 바 있다.
1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최근 A씨가 세무당국이 부당한 종합소득세를 부과했다는 주장에 대해 패소판결을 내렸다.
A씨는 대출 알선을 해주는 대가로 1억1000만원을 받아 지난 2019년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1억1000만원을 납부하라는 확정판결을 받았다.
A씨는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았고, 2022년 세무당국은 A씨가 받은 뒷돈을 기타소득으로 보고 종합소득세 3670만원을 부과했다. ‘알선수재에 의해 받는 금품’은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에 해당한다.
A씨는 뒷돈을 받은 건 맞지만, 뒷돈 전액에 대해 추징금 확정 판결을 받아 내 돈이 아니게 됐다며 세금 부과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는 추징금 완납 근거를 대진 않았다.
대법 판례에 따르면, A씨 말대로 뒷돈 전액을 추징금으로 완납했다면 세금을 물릴 수 없다.
그렇지만 추징금을 안 내고 버티면, 그동안은 A씨 돈이 되고 이에 세무당국은 세금을 물릴 수 있다. A씨가 앞서 낸 세금을 돌려받으려면 추징금을 다 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이러한 대법 판례가 나온 이유는 한국의 추징금 법 제도가 대단히 허술하기 때문이다.
추징금은 불법소득을 국가가 강제 환수하는 것을 말한다. 불법소득 취득자는 채무자, 국가는 채권자가 되는 셈이다. 주요국들은 연체 이자를 부과하는 등 적극적인 추심이 가능하게 추징금 제도를 설계해놨다.
반면 대통령 등 고위직들의 뇌물이 빈번한 한국 형사제도에서는 추징금에 대해 재산 압류는 가능하게 만들어놨으면서도 아무리 추징금을 연체해도 연체 이자를 물리지는 못하게 만들었다.
추징대상자가 사망하면 소멸하게 만들어 놨다. 통상의 채권 개념을 고의로 뭉갠 것이라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1000억 추징금을 받아도 해외 유령회사를 거쳐 자녀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고 골프 치며 호화생활을 누릴 수 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이러한 허점을 잘 알고 있으나, 말로만 추징금 이자 환수를 말하지 정작 법 개정까지는 추진하지 못했다.
이 탓에 한국 사법체계에서는 추징금으로 형량을 깎고,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몰염치 행각이 빈번히 생겼다.
이에 대법은 판결을 통해 추징금을 미납한 동안에는 그대로 범죄수익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 세금을 물릴 수 있다는 해석을 풀어냄으로써 부실한 법제를 보완하고 있다.
재판부는 “위법소득이 더이상 상실될 가능성이 없는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세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위법하게 소득을 얻은 자를 적법하게 소득을 얻은 자보다 우대하는 셈”이라며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불법행위에 대해 세금이라도 물리지 않으면, 불법행위를 우대하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가 추징금을 모두 납부했다거나 해당 추징금에 대해 국가기관이 집행을 완료했다는 사정을 확인할 수 없다”라며 “사후에 위법소득이 정당한 절차에 의해 환수된 경우에는 납세자가 감액을 청구해 조정하면 된다”라고 전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