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회사 지배주주 일가끼리 증여한 주식을 회사가 매입해 소각한 행위는 세금 회피한 것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 재판 결과가 대법원 확정까지 유지된다면, 소득세법 17조 2항 1호는 조건부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기에 추후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배우자 증여, 6억원 한도).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나진이 부장판사)는 최근 A씨가 잠실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20년 11월 배우자 B씨에게 완구업체의 주식 1000주를 증여했다.
B씨는 이 업체 대표이사이며, A와 B는 이 회사의 지배주주다.
증여 주식의 시가는 배우자 공제한도 6억원에 달하는 6억400만원이었고, 배우자는 6억원을 제외한 400만원에 대한 증여세 38만8000원을 납부했다.
B씨는 2020년 12월 증여 주식 1000주를 완구업체에 6억1000만원에 팔았다.
같은 날 회사는 이 주식을 소각했다. 주식을 소각하면 주식가치가 높아진다.
회사는 2021년 1~2월 B씨에게 주식 양도대금 대부분을 줬고, B씨는 자신의 펀드 계좌에 5억9000만원을 입금했다.
국세청은 이 거래가 A가 소득세 누진세율을 회피하기 위해 배우자 증여를 끼워 넣었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주식을 소각하면 소각한 주식만큼 주주에게 배당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소득세법 17조 2항 1호에서는 이를 사실상 배당(의제배당)이라고 보아 과세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매지만, 배당인 셈이다.
이 거래의 실질은 A가 가진 주식이 현금화되어 배우자의 돈이 됐다는 것이다.
A가 직접 주식을 회사에 매각→소각→B에 현금증여했다면, 소득세법상 사실상 배당에 해당해 A가 소득세 누진세율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 A가 B에 주식 증여→증여 주식 매각→소각을 하면, 세금 한 푼 없이 B의 이름으로 배당이익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크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배우자 증여 금액이 6억원일 것 ▲회사에 주식소각을 지시할 수 있는 지배주주 세력일 것 ▲배우자가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대상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만일 60억원을 증여하면 배우자 공제 6억원을 제외한 54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내야 한다. 양도세 때문에 세금 이익을 얻을 게 없다. 딱 6억원 정도만 증여해야 한다.
주식소각을 하려면 회사 지배주주에 해당해야 한다.
A는 이 모든 경우에 해당했다.
여기에 추가로 조건이 붙는다면 비상장사여야 한다. 상장사라면 매각 이익을 가지고 배임 혐의 고발이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주주로 있으면, 소각할 때 소각 이익이 흩어진다.
국세청은 이러한 이유에서 A가 현금배당으로 회삿돈을 빼가기 위해 배우자 증여를 이용했고, 배우자 명의 지갑에 현금배당한 돈을 숨겨 놓은 것이라고 보고 6억원어치 회사현금배당에 대한 종합소득세 2억4000만원을 과세했다.
A는 증여, 배우자의 주식 매각, 회사 주식 소각은 모두 관계없는 행위로 A, B, 회사 다 각자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세청은 A와 B는 회사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위치에 있고, A와 B는 부부 관계인데 마치 서로 남남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맞지 않으며, 거래 실질상 해당 행위는 현금배당에 배우자 증여를 끼워 넣어 소득세를 회피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증여 후 매매, 소각까지 2개월 이내에 이뤄진 점을 보아 각각의 거래가 독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법원은 A의 주장을 받아줬다.
A와 B 간 거래를 각각 독립적인 거래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주식양도대금은 B씨에게 지급돼 B씨가 이를 자신의 펀드 계좌에 이체함으로써 B씨에게 귀속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주식양도대금이 A씨에게 귀속됐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라고 전했다.
국세청은 A씨 사건 외에도 6억원 주식 배우자 증여-증여 후 회사가 매입-매입 후 소각 수법에 대해 꾸준히 의제배당으로 과세를 걸어왔다. 행정심판도 국세청 의제배당을 받아줬다.
하급심 판결 하나로 국세청 과세 방침이 바뀌진 않겠지만, 2심이나 대법원 확정까지 이어질 경우 정부는 법을 바꾸어 틈을 보완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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