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두산그룹이 주주총회 일정을 잠정 연기하며 사업구조 재편 작업이 올스톱됐다. 소액주주들은 물론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나서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을 두고 십자포화를 퍼부은 영향이다.
두산그룹은 분할합병은 계획대로 추진하면서, 사업구조 개편 방식을 재검토해 주주와 시장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향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 금융당국도 제동…“주주의견 수렴해야”
먼저 금융당국은 두 회사 간 합병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납득시키는 방안을 토대로 진행될 때까지 계속해서 정정을 요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두산 경영진에서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신설법인 등 각 계열사를 포함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진심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사를 가진 것으로 이해한다”며 “향후 새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수렴된 상태에서 마무리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앞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10일 회사 합병 관련 내달 25일로 예정됐던 주주총회 일정을 잠정 연기하겠다고 공시했고, 결국 이날까지 제출해야 했던 금감원의 3차 정정신고서를 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 일정을 비롯해 분할합병 반대 의사 통지접수 기간(9월10일~9월24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9월25일~10월15일), 채권자 이의 제출 기간(9월25일~10월25일), 합병기일(10월29일) 등 사업구조 재편 일정이 전면 무산됐다. 지난 7월 11일 양사 간 분할합병 계획을 발표한지 약 두 달 만이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은 지난달 29일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이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두산밥캣을 상장폐지,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100% 자회사로 만들 계획이었으나 주주들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결국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100% 소유하는 개편안이 무산된 것이다.
이는 앞서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옮긴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발표되자 각계에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던 것에서 영향을 받아 수정된 안이다. 개편안 공개 직후 시장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쇄도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두산밥캣 방지법’을 대표발의해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을 강화하고 계열사 간 합병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또한 비판에 가세했다.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분할합병‧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위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비율 적정성’을 이유로 들며 정정을 요구했다.
◇ 무늬만 합병철회?…주주 반발 여전
주주들도 거세게 비판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그룹 내 캐시카우로 꼽히는 두산밥캣을 분리해주는데도 이에 대해 적절한 시장가치를 산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두산밥캣 주주들 또한 적자회사인 두산로보틱스와 포괄적 주식교환에서 주가로만 교환 비율을 산정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발했다.
그러자 결국 두산그룹이 당초 계획했던 두산밥캣 상장폐지안을 철회하는 내용의 분할합병 수정안을 발표했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 지분(46.06%)을 분리해 새롭게 만든 신설법인에 넘기고,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하게 된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가 합병해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는 형태다.
그런데 두산그룹이 비판 여론을 의식해 기존 발표했던 지배구조 개편안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포괄적 주식 교환만 철회하고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두산밥캣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에 합병하는 형태는 그대로다.
주주들은 분할합병 계획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이에 두산그룹은 양사의 분할합병이 이뤄질 경우 차입금 감소 등 재무건전성이 강화되고 친환경 중심 에너지 사업 역량 집중 및 경영 효율성 증대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부채로 인해 부담하고 있는 채무 부담을 털어내고, 두산밥캣 분할을 통해 얻게된 1조원을 원전 수주 및 투자 등 주요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주주들은 분할합병 시 두산에너빌리티의 부채 비율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두산밥캣의 부채(두산에너빌리티 전체 부채 총액 중 32%)가 많은 것도 맞지만 자본총액 기여도가 높은 만큼 두산밥캣을 떼어낼 경우 두산에너빌리티의 총 부채비율은 늘어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지배구조 개편이란 명목이지만, 결과적으로 지주사의 지배력이 강화된다는 점도 주주들이 눈여겨 보는 대목이다. 주주들은 해당 개편안이 최대주주이 가치 제고에만 집중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30.39%를 가지고 있고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지분 46.11%를 가지고 있으므로 간접 지분율은 14.1%(30.39% × 46.11%)다.
사업구조 개편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두산그룹이 합병 후 두산로보틱스 지분을 59%까지 보유하게 되고 두산로보틱스가 다시 두산밥캣 지분 46.11%를 가진다. 이에 따라 두산그룹의 두산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은 기존보다 13.1%p 늘어난 27.2%가 된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두산그룹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보호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다. 나아가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두산그룹의 사업재편 시도, 이후 철회를 통해 주주들이 여러 가지 리스크에 노출됐다. 두산밥캣 주주들의 경우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도 입었다. 두산그룹과 금융당국이 제대로 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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