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나랏일을 하려면 세금이 필요하다. 기업 지원, 서민 지원, 국가 운영, 국방력 확충, 외교력 확대 다 돈이 들어가야 한다. 특히 한국은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10년 내 확실한 세입기반을 마련하지 못하면 노인 문제로 국가 운영이 위험해진다. 이 위기의 순간에 정부와 여당은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MBC가 지난 9일 방영한 ‘세수펑크 속 또 ‘부자감세?’ 100분 토론’에서 나왔던 주장들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반박을 담아봤다.
1. 혈연 세습의 우월성, 경영 유전자는 존재하는가
-정부여당은 상속세 감세론은 혈연세습경영이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특별히 우수한 피가 있다는 뜻인데, 특정 혈족에게 경영 유전자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현대 유전학은 유전자 교환으로 인한 적자생존(환경 적응력)을 정론으로 하고 있고, 유전자 다양성이 종의 적응성을 담보한다.
혈연세습이 특정 분야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건 역사적으로도 관측된 바 없으며, 후천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왕의 유전자 따위는 없다. 경영 유전자라는 것도 없다.
피가 우월성을 보장한다는 주장은 제국주의 시대 서양인들, 나치 독일, 우생학 추종자 등 주로 극단주의 추종 세력들에게서 관측된다.
영특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사회적 요인, 즉 권력의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평소 유능한 사람도 정치를 시작하면 상식 외의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회적 문제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충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중산층도 부담이 생겼다고 한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깎아야 하는 이유다.
-이건 논리 오류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상속세 최상단인 초부자들의 문제고, 중산층 상속세는 상속세 하단의 문제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너무 높아서 중산층 부담이 생긴다는 말은 거짓이다. 상속세율은 20~50% 누진 체계이며, 당연하게도 공제라는 게 있다. 상속재산 10억까지는 대체로 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3. 상속세 때문에 기업가가 고용을 줄이고 공장 판다
-경영이 안 좋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원청이 대금을 안 줘서 망했다는 회사 이야기는 나오지만, 세금 때문에 폐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조직학에서 회사의 목적은 세습도 아니고, 돈 버는 것도 아니다. 존속하는 것이 목적이다. 존속을 위해선 고용과 투자가 이뤄지게 마련이고, 상속세는 대주주 변경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미국이 세계 2차 대전 때는 최고소득층 소득세 최고세율이 94%까지 갔었고, 1960년대 초반까지 92%였다. 전쟁 채권도 있었고, 소득세율이 어마어마하게 높았지만, 세금 때문에 부자가 되기를 포기한 부자들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세율이 높으면 세금이 많이 걷힌다?
-이 역시 따져봐야 안다. 세금 공제제도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상속세와는 조금 다른 영역이지만, 미국의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37%인데, 그럼에도 45%인 한국보다 소득세를 더 많이 걷는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전세 세금에서 개인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 42.9%, 한국은 20.4%에 불과하다. 세율이 높아도 덜 걷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5. 유산취득세 도입은 중산층에게 도움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중산층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압도적인 최고 부자 감세다.
유산취득세는 과세표준을 쪼개고 공제를 겹쳐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상속세에서는 10억 공제를 받고 100억을 자녀 넷에게 물려주면 단순 계산으로 45억이 세금으로 나온다. 100억에서 공제 10억을 뺀 90억에 세율 50%를 적용한 숫자다.
유산취득세에서는 25억-10억에 세율 40%를 곱한 6억을 네 자녀가 각각 내면 된다. 그래도 24억이니 유산세보다는 무려 21억이나 감세가 된다.
20억을 10억 공제받고, 자녀 둘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어떨까.
현 체계에서는 20억-10억에 세율 30%가 적용돼 두 자녀가 7000만원이 세금을 부담해야 하지만, 유산취득세에서는 두 자녀 각각 10억-10억을 적용받아 세금 한 푼 없이 손 털고 장례식장을 나가면 된다. 수십억 자산가라도 상속세 한 푼 없이 빠져나갈 수 있다.
위 사례는 실제 사례는 아니다. 실제로 이런저런 공제를 받아 챙기기에 저렇게 내는 사람은 없지만, 비교를 위해 단순 계산했다는 점을 재차 밝힌다.
6. 상위 5%, 7%, 상속세는 누가 내는 세금?
-방송에서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상속세는 상위 7%,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가 내는 세금이라고 말했다.
국세통계와 사망통계를 조합하면 피상속인 기준 상속세 대상은 2022년엔 상위 4.2%, 2023년엔 5.6%였다.
7.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마다 상속세 하단을 조정해야 하나
-그런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다. 소득세가 아주 높은 일부 국가들은 물가를 연동해서 소득세를 조정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전 잠깐 검토하다가 덮은 건인데, 기재부는 그때 세수감소를 이유로 반대했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상속세 하단 부분 감세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것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도 상속세 감세와 관련해선 민주당과 공감대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은 주가가 오르면 대주주 주식 양도세를 빼 줄 생각인지, 물가 오르면 소득세도 빼 줄 생각이 있는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재산세도 빼 줄 건지 같이 답할 필요가 있다.
8. 상속세 감세는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며,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됐다
-상속세 폐지 국가로는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멕시코, 슬로바키아, 체코 등이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상속세를 없애고 있다는 데 상속세율 최상위권 국가 가운데 상속세 폐지를 지지하던 영국 보수당은 2024년 총선에서 대참패했다. 대참패 전 보수당은 무려 14년 장기집권을 기록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우리로 치면 대구경북‧부산영남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트 오브 잉글랜드,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에서 반 이상 졌다. 수도인 그레이터 런던 쪽은 원래 밀리긴 했지만, 20석이었던 의석수가 9석으로 반토막이 났다.
프랑스와 미국은 배우자는 전액 공제하지만, 상속세가 존속한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보고 ‘너희 상속세 폐지 안 해서 주가가 걱정이다’라고 한국이 말하기는 어렵다.
9. 상속세 부담 때문에 주가를 안 올린다
-1조 하던 상속세가 5000억이 됐다. 당신은 기꺼이 상속세를 낼 것인가. ‘그렇다’라고 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거짓말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부자들 입장에서 세금을 억울한 공돈이며, 세율이 얼마든 한 푼이라도 내지 않기 위해 꼼수를 쓸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10. 상속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인가
-21대 국회의원이자 저명한 원로 경제학자이자 최근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된 최운열 회장에 따르면, 국제금융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꼽는다.
▲남북 분단과 지정학적 위치 ▲정치의 불확실성 ▲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 ▲회계 불투명성.
이중 ▲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 ▲회계 불투명성이 대주주의 기업 사유화의 폐단으로 생긴 것이며, 이는 해외 선진국에선 강력히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환경‧사회 영향‧지배구조 영역에서 기업 공시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대주주가 주가를 고의로 억눌렀다면 주가조작 범죄에 해당하며, 실적을 고의로 조작했다면 회계조작 내지 회계사기 범죄다. 모두 자본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며, 자본주의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강력히 처벌받는 범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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