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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법률]이성로의 이자 이야기, 이자제한법

  • 등록 2014.10.19 21:36:22
(조세금융신문)금전 대차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시되어 있고 현재 민법상으로도 특별한 이자 약정이 없더라도 5%의 이율에 의한 이자의 지급을 의무화 하고 있다(민법 제379조).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자의 지급이 처음부터 정당화되어 있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귀족사회에서 고리대금업이 성행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도 거대한 사전을 소유한 귀족이나 불교사원에서 고리대를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사적인 고리대 외에도 국가에서 시행한 환곡제도가 민중을 수탈하는 고리대와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서양에서는 역사적으로 이자를 받는 것은 터부시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은 새끼를 낳지만 돈은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즉 돈은 단순한 지불수단 내지 가치저장 수단이라고만 보았다. 중세에는 크리스트교 사상이 지배하면서 더욱 이자지급이 제한되었다. 이렇게 이자지급이 제한되는 근본이유는 이자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아닌 불로소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의 축적이나 이자의 요구가 정당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근세 산업혁명을 거치면서부터였다. 산업혁명에 뒤이어 나타난 중상중의와 제국주의에 대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상적인 배경이 필요하였다. 막스베버에 의하면 당시 라이프니찌히의 예정조화설에 바탕을 둔 종교개혁자 캘빈의 사상이 이러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언뜻 예정조화설을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살든 이미 정해져 있으니 되는대로 살자고 하는 방탕 아니면 방임의 생활태도로 나타 날 수도 있으나 반대로, 내가 어떻게 될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고 내가 열심히 살아서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얻고 하여 결과적으로 잘 살게 되면 하느님의 은총이 나에게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므로 더욱 열심히 살자는 주장도 가능한데 바로 캘빈의 경우 이러한 주장을 함으로써 부의 축적도 죄악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행위로 간주되게 되었다. 
  
이러한 캘비니즘의 뒷받침을 받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돈을 꾸어서 무역 등을 통하여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자가 발생하였고, 이때부터 돈을 빌리고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동일한 크리스트교가 이자지급을 제한하는 이념과 이론을 제공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자지급을 정당화하는 이념과 이론을 제공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자지급이 정당하다면, 이자는 어떠한 수준에서 결정되는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는 아담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주장한 가격결정기구인 금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금전에 대한 수요는 주로 투자에서 발생하고 금전의 공급은 소득의 증대에 따른 저축에서 발생하는데 이 수요와 공급이 일치되는 점에서 이자율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에 대해서 케인즈는 금전에 대한 수요가 현실적인 투자를 위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의 유리한 투자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 금전에 대한 수요를 가지게 된다는 유동성선호이론을 주장하면서 이자율이 높으면 금전(유동성)을 소유하는데 과다한 기회비용을 지불해야하므로 수요가 줄어들고 이자율이 낮으면 금전소유에 대한 기회비용이 줄어들어 수요가 늘어난다고 하면서 이자율의 변동에 영향을 주는 국가의 통화정책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어쨌든 우리가 사는 시대에 금전대차시 이자의 지급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소득증대, 경기활성화, 유동성선호, 통화량 등에 따라 이자율이 결정되기만 하면 그것은 항상 정당한가? 다시 말하면 이자지급에 대한 한계는 없는가? 하는 점도 고려해 볼 문제이다. 역사적으로 금전대차시 받는 이자는 가진 자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의 서민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자제한법'을 두어서 이자의 상한을 제한하고 있다.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자제한법의 적용대상은 오직 개인간 금전소비대차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대부업을 하는 기관으로부터의 금전 대차시에는 ‘대부업등의등록및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이자제한법상의 이율의 적용은 그동안 많은 변천이 있어 왔다. 높을 때는 연40%의 이율에 의한 이자도 허용되기도 하고 그 유명한 IMF 시절에는 무제한의 이율도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딱 두 가지로 정리되었다. 2014년 1월 14일 이자제한법을 개정하면서 종전의 연30%에서 연25%로 이율의 제한을 변경하였다. 단 이번 개정에 있어서는 소급규정을 두지 않아 연25%의 제한을 적용을 받는 것은 오직 2014년 7월 25일 이후에 이루어진 금전소비대차 계약에 한정되며 그 이전에 이루어진 금전소비대차계약에 적용되는 이율은 연30%의 제한을 적용받게 된다.

아무리 사인간의 계약자유가 있다 하여도 일정한 범위에서는 국가가 법으로 사인간의 행위를 강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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