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경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2025년, 세계 경제는 다시 한번 보호무역주의라는 거센 파고를 마주한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화하며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관세 장벽을 높이 쌓으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등 자국법을 근거로 주요 교역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최근 미국은 당초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 25%의 상호 관세율을 제안했으나, 우선 10%의 기본 관세를 유지하되 상호관세 부과는 90일간 유예(2025년 4월 10일 결정)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 90일이라는 유예 기간 동안 미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영국, 호주, 인도 등 우선협상 대상국들과 개별적으로 관세를 포함한 포괄적인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 재무장관은 각국의 방위비 분담금 수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맞춤형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중국 제품에 대해서는 145%라는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125%의 보복관세로 맞서는 등 미-중 무역 갈등은 격화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은 단순히 특정 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본 컬럼에서는 최근 미국의 관세 부과 동향과 그 배경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우리 경제와 산업에 미칠 파급 효과를 진단하며, 나아가 우리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어떤 전략적 카드를 가지고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미국의 관세 칼날, 한국 주요 산업에 치명타를 줄 수도 미국의 관세 부과 움직임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으며, 그 범위 또한 확대될 조짐을 보인다. 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권에 들어와 있다. 철강 및 알루미늄 산업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협상을 통해 연간 263만 톤의 수출 쿼터(할당량)를 확보하여 관세를 면제받아 왔다. 하지만 이 쿼터 제도는 2025년 3월 12일부로 종료되었고, 그 결과 우리 철강 제품에는 다시 25%의 고율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미국은 철강 및 알루미늄을 사용한 파생 제품으로까지 관세 부과 범위를 넓힐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어, 국내 철강 및 관련 산업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25% 철강 관세가 재부과될 때 대미 철강 수출액은 약 11.47%(약 4억 9,860만 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 철강 생산업체의 수익성 악화는 물론, 연관 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산업 자동차 산업 역시 미국의 주요 타겟 중 하나다. 미국은 2025년 4월 3일부터 수입 승용차, 경트럭 및 특정 자동차 부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특히 경트럭의 경우, 기존의 최혜국 대우(MFN) 관세율 25%에 추가로 25%가 더해져 최대 50%에 달하는 엄청난 관세율이 적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사실상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다. 25%의 자동차 관세가 부과될 경우, 대미 자동차 수출이 18.59%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히 수출 감소에 그치지 않고, 국내 자동차 생산량 감소와 고용 불안으로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더욱이 멕시코나 캐나다에 생산 기지를 둔 우리 기업들조차도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비용 상승과 공급망 차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으로의 확산 가능성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철강, 자동차 외에도 반도체, 의약품 등 다른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만약 반도체에 25%의 관세가 부과된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의 매출이 4.3%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더욱 심각한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국이 향후 국가별 상호관세율 개념을 적용하여 베트남에서 생산된 부속품에 46%, 인도 생산 부속품에 26% 등의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면,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가진 우리 기업들의 간접적인 피해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거시경제적 충격 미국의 관세 정책은 특정 산업의 피해를 넘어 한국 경제 전체의 펀더멘털을 흔들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GDP 성장률 하락 수출은 한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한 주력 품목의 수출 감소는 곧바로 우리 경제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여 2025년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6%로 0.4%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는 수출 감소뿐만 아니라,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 증대가 국내 투자 및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고려한 결과다. 물가 상승 압력 관세 부과는 수입품 가격 상승을 유발하여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특히 원자재나 중간재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국내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져 최종 소비재 가격 인상을 부추길 수 있다. 이는 가계의 실질 구매력 감소로 이어져 소비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무역 갈등 심화로 인한 원/달러 환율 상승 가능성 역시 수입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투자 위축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는 기업들의 투자 결정을 망설이게 만든다. 특히 미국의 관세 부과는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들의 투자 매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일부 국내 기업들이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미국 내 직접 투자를 늘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반대로 국내 투자 감소와 자본 유출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우려를 낳는다. 고용 불안 심화 수출 감소는 필연적으로 국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철강, 자동차 등 주요 수출 산업의 고용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단기적인 충격을 넘어 관세 부과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구조적인 고용 감소는 불가피할 수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 그 배경과 의도는? (미란 보고서 분석) 미국이 이처럼 공격적인 관세 정책을 추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주목받는 스티븐 미란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의 보고서(일명 '미란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정책 기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강달러 문제와 미국 제조업 부활 보고서는 달러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수요가 높아 달러 가치가 강세를 유지했고, 이로 인해 미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은 약화된 반면 수입품 가격은 저렴해져 미국 제조업이 쇠퇴했다고 진단한다. 즉, 미국이 기축통화국 지위로 인해 지속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트리핀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외환시장 개입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낮추고(약달러 유도), 저금리 및 유동성 확대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여 무역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세의 전략적 활용과 '안보-교역 연계 보고서는 관세를 단순한 보호 수단이 아니라,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적 무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강, 반도체, 에너지 등 핵심 산업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협상 카드로 삼아 교역 상대국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미국이 동맹국에 제공하는 군사적 보호(안보)를 교역 협상과 연계하여 더 많은 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까지 제시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군사 보호를 받는 대가로 관세 혜택을 얻으려면 미국의 통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식의 조건을 내걸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미국 경제가 감당 가능한 적정 관세율 수준으로 20%를 제시하기도 했다. 새로운 국제 질서 구상: '마러라고 협정'과 양자주의 보고서는 현재의 다자주의 무역 체제(WTO 시스템)를 비판하며, 미국 중심의 양자 협상 체계를 통해 새로운 교역 규범을 구축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특히 동맹국들과 비용 분담을 통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마러라고 협정'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는 동맹국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100년 만기 무이자 영구채로 전환하도록 요구하는 등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은 이자 부담 없이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미국의 막대한 금 보유량을 시장 가치로 재평가하여 확보한 자금을 미국 산업 재건과 경제 방어에 활용하자는 제안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미국의 최근 통상 정책은 단순한 무역적자 해소를 넘어, 달러 패권 유지, 제조업 부흥, 동맹국 대상 비용 분담 강화, 그리고 미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 구축이라는 복합적인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한국의 현명한 협상 대응 전략 다가오는 미국과의 시한부 협상은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치밀하고 다각적인 협상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필자는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투자의 힘'을 강조하라: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 미국은 우리나라를 9번째 무역적자국(2024년 기준 660억 달러 적자)으로 지목하며 관세 압박의 근거로 삼으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단면만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 미국에게 얼마나 중요한 '투자 파트너'인지를 적극적으로 부각해야 한다. 2024년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액은 221억 달러에 달하는 반면, 미국의 대한국 직접투자액은 17억 달러에 불과하다. 즉, 한국의 대미 '순' 직접투자액은 204억 달러로, 이는 미국이 주장하는 대한국 무역적자액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규모다. 현대(기아)차, LG에너지솔루션, 삼성전자, 삼성SDI, 한화오션 등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과 GDP 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전략 산업 육성 및 공급망 재편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한국 수입 증가는 상당 부분 이들 미국 투자 기업들이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를 한국에서 조달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강조해야 한다. 만약 한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면, 이는 결국 미국 내 생산 비용 상승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미국의 생산 및 고용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적극 펼쳐야 한다. 따라서 미국이 단순 무역적자 수치에만 근거하여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오히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저해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유도하는 것이 미국에게도 이익임을 설득해야 한다. 한미 FTA의 기본 정신 '상호주의' 존중을 요구하라 한국과 미국은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동맹국이다. 새로운 관세 협상 역시 기존 한미 FTA의 틀을 존중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FTA의 기본 정신인 '상호주의 원칙'이 이번 협상에서도 반드시 존중되어야 함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이는 일방적인 요구가 아닌, 양국 간의 공정하고 균형 잡힌 협상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FTA 틀 내에서의 논의는 우리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품목에 대해 관세 인하 시점을 늦추거나 인하 폭을 조절하는 등 유연성을 발휘하여 국내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협력의 지평을 넓혀라: 에너지·방위산업 협력 카드 활용 관세 문제에만 매몰되지 않고,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에너지 분야에서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공동 개발 및 수입 확대, 차세대 원전(SMR) 개발 협력, 신재생에너지 기술 협력 등을 제안하여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양국의 공동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또한,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공동 연구개발 확대, 군수품 상호 구매 등을 통해 양국 간 안보 협력을 더욱 심화하고, 미국의 방위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 패키지' 제안은 관세 부과에 대한 미국의 압박을 완화하고 협상의 공간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론: 슬기로운 대응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관세 압박은 분명 한국 경제에 큰 위협이다. 하지만 위기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가 가진 강점과 논리를 바탕으로 당당하고 전략적으로 임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오히려 양국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정부는 통상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민관 협력 체계를 강화하여 산업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미국 행정부 및 의회와의 다각적인 소통 채널을 가동하여 우리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또한,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출 시장 다변화 노력과 함께,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와 혁신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앞으로 남은 80일 정도의 협상 기한은 한국 통상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냉철한 분석과 치밀한 전략, 그리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협상 자세를 통해 이 거센 파고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때다. [프로필] 이경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교수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졸업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미국 버클리 대학 경영학석사/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경제학박사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한국조정위원(2009년)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세무사회 한국조세연구소 운영위원 ·법무법인(유) 율촌 비상임고문 ※ 저서 ·국제조세 이해와 실무 (개정 8판, 2024.6) ·국제조세 강의노트 – The Core (2024.3)> ·이전가격과 디지털세 Guide Book , 2023.8)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