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6 (수)

  • 맑음동두천 23.6℃
  • 구름조금강릉 26.3℃
  • 맑음서울 23.8℃
  • 구름많음대전 23.5℃
  • 구름많음대구 24.6℃
  • 구름많음울산 23.4℃
  • 구름많음광주 23.4℃
  • 구름많음부산 24.8℃
  • 구름많음고창 21.9℃
  • 흐림제주 22.8℃
  • 맑음강화 24.0℃
  • 구름많음보은 21.7℃
  • 구름많음금산 22.4℃
  • 구름많음강진군 22.9℃
  • 구름많음경주시 24.5℃
  • 구름많음거제 24.0℃
기상청 제공

결혼 · 부음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별세...향년 78세

 

(조세금융신문=박청하 기자) 쌍용그룹을 한때 재계 6위 규모로 키웠으나 자동차 사업 투자 실패로 그룹 해체의 비운을 겪은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성곡언론문화재단은 김 전 회장이 이날 새벽 3시께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연합뉴스를 통해 알렸다.

 

대구 출신인 고인은 서울고 졸업 후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에서 유학하다 부친인 성곡(省谷)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1975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30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회사를 이끌게 된 고인은 세간의 우려와 달리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소규모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모태로 출발, 방직업과 시멘트업을 하던 쌍용그룹은 김 전 회장의 지휘하에 정유, 중화학, 금융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빠른 사업 성장과 과감한 인수 합병에 힘입어 쌍용그룹은 쌍용자동차, 쌍용중공업, 쌍용건설, 쌍용정유, 쌍용화재, 쌍용양회, 쌍용투자증권 등을 거느린 재계 6위 규모의 재벌로 성장했다.

 

고인은 1974년 용평 스키장을 만들어 리조트로 개발하는 등의 시대를 앞선 사업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에 당시 고인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삼미그룹 김현철 회장 등 다른 젊은 후계자들과 묶여 '재계의 3김'으로 불리면서 주목받았다.

 

10여년간 성장세를 이어가던 쌍용그룹은 그러나 자동차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

 

'자동차 애호가'였던 고인은 1986년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동아자동차 인수전에서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 삼성을 제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 일로 1조원에 가까운 부채를 더 안게 된 쌍용자동차는 코란도, 무쏘, 체어맨, 렉스턴 등을 출시하면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사업 자체는 적자가 계속됐으며 그룹 내에서는 자동차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말도 나왔으나 고인은 사업을 계속했다.

 

이런 가운데 고인은 1996년 정계에 진출했고, 그룹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매각설 등이 나오던 쌍용차는 1997년 12월 IMF 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대우자동차로 매각하기로 결정됐으며 쌍용그룹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달성군 후보로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던 김 전 회장은 그룹이 경영 위기에 빠지자 1998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경영에 복귀했으나 결국 그룹의 해체 수순을 지켜봐야 했다.

쌍용그룹은 1998년 채권단에 의해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고인의 경영권도 박탈됐다. 이어 쌍용그룹은 2000년에 쌍용양회의 대주주에서 2대 주주가 되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고인은 청소년, 언론, 교육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스키 불모지였던 국내에 용평스키장을 만들어 동계스포츠와 레저산업의 발전에 초석을 마련했다. 이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토대가 됐다는 평가다.

 

또 1982년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에 선출됐으며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일조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개최된 세계청소년캠프 본부장을 맡아 청소년 국제교류에도 기여했으며 2000년부터 3년간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의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와 함께 부친이 세운 국내 최초 언론문화재단인 성곡언론문화재단과 국민대학교를 운영하는 국민재단에 대한 지원도 계속했다.

 

고인은 뉴스통신사인 동양통신사 사장을 지냈으며, 한미경제협의회 부의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기도 했다.

 

유가족에는 부인 박문순씨, 아들 김지용(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김지명(JJ푸드 시스템 대표)·김지태(태아산업㈜ 부사장)씨가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특1호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 20분. 장지는 강원도 용평 선영이다. ☎ 02-2227-7550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데스크칼럼] ‘양극화’ 못막은 칸막이 행정으로 ‘저출생’ 난제를 풀겠다고?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정부가 저출생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가칭 ‘저출생대응기획부’를 부총리급 부처로 새로 만든다는 구상을 밝혔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이 많아진다. 교육·노동·복지는 물론이고 사실상 모든 행정부처와 무관치 않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처간 칸막이’부터 부숴야 한다. 부처끼리 서로 협력해도 모자를 판에 부처 신설로 풀겠다니. 공동체의 난제를 풀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걸 솔직히 인정한 셈이다. 그래서 더 착잡한 것이다. 한편으로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나라 행정의 실타래를 풀 엄두가 나지 않으니 오죽했으면 저런 방향을 잡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없지 않다. 하지만 수십조원을 투입하고도 저출생 가속화를 막지못한 지난 정부들 아닌가. 부처신설 발상을 접하고 정책실패의 ‘기시감’부터 드는 것은 비단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부처 신설보다 “다른 정부 부처와 협력을 잘 한 공무원들이 더 높은 인사고과를 받도록 하면 된다”는 ‘뿌리규칙(Ground rules)’을 공고히 해야 한다. 물론 조선시대이래 이어져온 ‘이호예병형공’의 카르텔을 깨는 게 쉽겠는가. 하지만 그걸 깬 효과가 나와야 실제 출생률이 바닥을 찍고 반등할 수 있다. 그게 핵심이다.
[인터뷰] “삶의 질, 신뢰, 젊음이 성장 비결”…경정청구 ‘프로’ 김진형 회계사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인적소득공제에서 본인 및 부양가족 1인당 150만원 기본공제액은 20년 전 정한 그대로입니다. 20년동안 자장면 값이 3배 올랐어요. 그러니까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부양가족공제액을 3분의 1로 축소한 셈이죠.” 지난 10일 서울 지하철 9호선 흑석역 인근 대형 아파트 단지 상가동에 자리 잡은 진형세무회계 김진형 대표(공인회계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김 대표는 “출생률을 높이려면 물가가 오른 만큼 인적소득공제 등 부양가족 인센티브를 올리는 게 필수적”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눈이 동그래진 기자가 무릎을 탁 치며 좀 더 설명을 구하자 김 대표는 “세제 정책 전문가도 아닌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자신의 필살기인 ‘이슈발굴’, 이를 주특기로 승화시킨 ‘경정청구’ 전문성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세제 전문가가 따로 있나. 김진형 대표는 지난해에도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정부 세제개편안의 문제점을 찾아냈다고 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KICPA)가 매년 회원들로부터 수렴하는 세제개편 의견으로 제출, 세법 시행령에 기어이 반영시켰다. 그래서 그 얘기부터 캐물었다. 물론 김진형 회계사의 필살기와 주특기, 그의 인간미를 짐작케 하는 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