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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근 칼럼] 고환율 고착화 현상의 근본 원인

(조세금융신문=이경근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위기의 징후, 대증요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84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잇단 구두개입과 실제 환율개입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마저 "원화 약세가 한국의 강력한 경제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으며, 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례적인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구조적 원화 약세 압력은 지속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규모 확대, 한미 금리차, 엔화 약세 동조화 등을 복합적 요인으로 제시하지만,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공통된 견해는 최근의 고환율 현상이 경상수지 흑자 1,018억 달러(2025년 1~11월 누적)라는 견조한 기초체력에도 불구하고 발생한다는 점에서, 과거 외환부족으로 겪은 외환위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과도한 해외투자를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자본수지 구조의 근본적 변화

 

고환율 현상의 이면에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환율 결정 메커니즘이 과거 경상수지 중심에서 자본수지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다. 과거에는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면서 원화 가치를 끌어올렸지만, 이제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미래 사용을 대비해 달러로 보유하려는 경향이 확실히 높아졌다.

 

실제로 한국의 해외투자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2020년 20%대에서 2021년 36.3%, 2023년에는 43%로 급증했다. 이는 1988년 이후 최고치다. 국내 상위 10대 그룹의 미국 내 생산법인 자산은 지난 8년간 7배 이상 증가했으며,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2024년 105억 달러에서 2025년 326억 달러로 3배 이상 폭증했다.

 

달리 표현하면, 기업들이 한국보다는 외국, 특히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거나 아예 이주하려는 현상이 강해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국내 사업 여건의 악화로 해외투자를 확대하거나 사업 기반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기업과 투자자가 과거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국가경쟁력 하락이 보내는 경고

 

한국의 국가경쟁력 지표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IMD)이 발표한 2025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69개국 중 27위로, 역대 최고였던 2024년 20위에서 단 1년 만에 7계단이나 하락했다. 특히 기업효율성은 23위에서 44위로 21계단, 인프라는 11위에서 21위로 10계단 하락했다. 세부 항목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노동시장은 31위에서 53위로 22계단, 경영관행은 28위에서 55위로 27계단 급락했다. 기본인프라는 14위에서 35위로, 기술인프라는 16위에서 39위로 하락했다. 이러한 전방위적 경쟁력 하락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다.

 

규제 과잉이 초래한 경쟁력 약화

 

필자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국가경쟁력 하락이 남발되는 행정규제 및 경직적인 사업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규제완화가 주된 정책방향 중 하나였다. 당시 정부는 '규제총량제'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마다 규제심사를 철저히 하여 기존 규제를 그만큼 폐지하도록 하는 제도를 2003년 도입·운영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부의 규제 관리는 사실상 방치 수준이다. 2024년 한 해에만 신설·강화된 규제가 842건에 달했으며, 규제개혁위원회가 개선을 권고한 건수도 95건으로 전년 65건 대비 46% 증가했다. 국회에서 쏟아지는 규제 입법을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규제의 구조다. 한국은 자산 총액, 매출, 종업원 수 등 정량적 기준으로 기업을 분류하고 규모가 커질수록 새로운 규제와 의무가 단계적으로 부과되는 '계단식 규제' 343개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하면 혜택이 늘어나야 하지만, 현실은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와 의무가 급격히 증가하여 성장을 통해 얻는 과실보다 규제와 리스크가 더 커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세금 부담 또한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한국의 법인세 유효세율은 25.9%로 OECD 38개국 중 9위에 해당하며, 총조세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3.6%로 캐나다(20.6%), 프랑스(6.2%), 영국(8.5%), 독일(6.5%) 등 주요국보다 훨씬 높다. 2026년부터 법인세율이 전 구간에서 1%포인트 인상되면서 향후 5년간 기업들은 약 20조 원의 추가 세 부담을 지게 된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역시 심각하다. 한국은 정규직 고용보호에서 OECD 회원국 중 포르투갈에 이어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직성이 높으며,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2.9달러로 미국의 57% 수준에 불과하다.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의 노동시장 유연성 순위는 2000년 58위에서 2012년 133위로 추락했다.

 

환경규제도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제조기업의 76%가 환경규제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으며, 화학물질 관리(18.4%), 대기총량규제(16.1%), 폐기물 관리 등이 주요 애로사항으로 지적됐다. 최근에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규제 법안이 발의되어 관련시장 획정 없이 지배적 플랫폼을 사전 지정하고 매출액의 8% 이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추진되고 있다.

 

유럽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규제 만능주의 사고가 가져오는 문제의 심각성은 최근 유럽의 경제 현실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각종 규제로 인해 많은 기업인과 인재가 미국으로 떠났다. 유럽 과학자만 연간 8만 명이 해외로 이동하고 있으며, Klarna의 CEO는 "유럽 테크기업의 최대 위협은 미국으로 탈출하는 유럽 인재"라고 토로했다.

 

유럽의 문제는 규제 확대에 비해 성장, 투자, 기술혁신을 뒷받침하는 시장 통합과 집행 역량이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GDPR 같은 규제는 글로벌 빅테크보다 오히려 유럽 스타트업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해 벤처투자가 약 26% 감소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 결과 유럽 테크기업의 생산성은 2005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다.

 

반면 미국은 높은 연봉과 낮은 세금, 창업에 유리한 자본시장과 약한 규제로 전 세계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 규모는 이제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합친 것보다 크며, IT기업 생산성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유럽은 첨단 반도체, AI기술 등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장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제권으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도 유럽처럼 규제를 남발하고 기업하기 어려운 생태계를 만들면 우리의 미래도 유럽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12년 3.8%에서 2025년 2.0%, 2026년 1.88%로 전망되며 14년째 연속 하락하고 있다. 규제환경 개선과 구조개혁 없이는 이러한 하락세를 반전시킬 수 없다.

구조적 처방만이 진정한 해법이다

 

최근 우리 경제의 고환율 현상은 우리 몸의 두통과 같은 특정 증상으로 비유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처방은 그 근본원인을 정확히 밝히기보다는 진통제와 같은 대증요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외환 건전성 부담금 면제, 외화 지급준비금 이자 지급, 국민연금 환헤지 활용 등의 조치는 단기적 증상 완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업과 자본이 한국을 떠나려는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우리나라 기업가와 투자가가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주하려는 이유를 정책당국자와 정치인들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고환율 추세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원화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방안과 일치한다.

 

우리나라를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려면, 우리나라에서 사업하기 좋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더 나아가 관련 법령(세법 포함)을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하게 바꾸어야 한다. 국제 기준에 비해 규제가 강한 노사정책, 환경정책, 공정거래, 세법 등 모든 분야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실증연구들은 규제의 질과 경제성장 간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규제완화는 총요소생산성 향상을 통한 직접효과뿐 아니라 투자촉진을 통한 간접효과까지 고려할 때 경제성장률을 약 0.07%포인트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규제로 증가한 시장 경쟁력은 투자와 고용을 동시에 증가시키며, 창업비용을 낮추는 진입규제 완화는 장기적 경제성장을 유도한다.

 

만약 규제 완화와 구조개혁을 서둘러 추진하지 않는다면, 어느덧 우리나라의 투자자, 자본, 인재는 해외로 떠나고 우리나라에 남은 사람들만 불행하게 살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진짜 중병이 찾아오기 전에 우리 경제가 보내는 이상 신호를 조기에 중요하게 받아들여 경제 생태계의 체질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안이하게 대증요법만 반복하며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치유할 수 없는 중병 상태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고환율은 단순히 환율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경쟁력 약화가 시장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규제 개혁과 구조적 체질 개선을 통해 기업과 자본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대증요법에 안주하며 유럽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프로필] 이경근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국제조세투자센터 공동센터장)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졸업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미국 버클리 대학 경영학석사/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경제학박사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한국조정위원(2009년)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세무사회 한국조세연구소 운영위원

•법무법인(유) 율촌 비상임고문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 저서 : 국제조세 이해와 실무 (개정 8판, 2024.6)/국제조세 강의노트 – The Core (2024.3)/이전가격과 디지털세 Guide Book , 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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