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지탱하고 견디기 위해서는 힘들지만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단란한 가족이 있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희생하는 ‘어떤 이’가 있어야 한다.
누구의 양보도, 아무런 희생도 없다면 단란한 가족도 없다. 아흔이 넘는 부모를 모시면서 그 뜻을 받들고, 아침, 저녁으로 같이 운동장을 거니는 형제가 있어야 나머지 형제들은 단란하다. 부양 의무를 헌신적으로 다하는 그 누가 있어야 가족은 유지된다.
아들의, 딸의 마음 속에 아버지의 공간을 만들어라
서울 양천구에 사는 어느 부인의 이야기다. 그 부인의 남편은 건설회사 직원으로 평생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는 현장관리자다. 현장 관리자로 나가기 전에는 부인에게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했고, 아이들(딸과 아들)은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폭력 트라우마’로 시달렸다. 그러다 건설현장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나머지 가족들은 남편이, 아버지가 같은 공간에 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남편은 가끔 집에 왔는데 그러면 아이들이 일부러 밖으로 나가버린다. 남편은, 집에 오면 이방인이 자신들의 공간에 들어오는 것과 같은 불편하고도 어색한 감정을 갖는다. 이제 남편은, 아버지는 돈만 벌어다 주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부천에 거주하면서 평생 철물점과 페인트공으로 일해 왔던 어떤 아저씨의 이야기를 하나 더 들어보자. 아버지는 “나는 너무 가난해! 힘들어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염전에서 소금 만드는 일을 했다. 겨울이면 추워서 오줌으로 손을 녹이면서 일을 했다.
돈을 조금 모아 부천으로 이사를 왔다. 상가 딸린 방 한 칸에 네 식구가 살았고, 그 상가에서 철물점을 해 돈을 모았다. 아이들이 이것을 다 보고 자랐다. 그러니 이 애비의 심정을 이해할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아들을 불러 술 한 잔 같이 하자는데 아들은 익숙하지 않아 거북해 했다.”라고 말한다.
모처럼 마음을 열고 아들과 술 한 잔 하려한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술만 마시고 있는 아들을 보고 만감이 교차해 서운한 소리를 해댄다. 아들은 아버지가 힘들고, 불쌍하게 살았다는 것을 잘 안다. 아들이 인정해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아들의 마음 속에 아버지의 공간은 없다. 그 공간은 풍선에 바람 넣듯이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공간은 수 십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것도 아버지가 만들려고 노력을 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다 큰 아들의 마음에 그런 공간이 들어설 자리는 이제 없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을까. 난 열심히 살아왔고 그 지긋지긋했던 가난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았고, 아이들만큼은 풍족하게 살게 해주었다. 열심히 살아온 내게 잘못이 있는가. 가족도 이해해 주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 왔으되 가족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 아버지, 오늘날 아버지! 늙은 아버지들의 허허로운 모습이다.
가족의 일원이 되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가족들이 아버지와 같이 있는 것이 거북스럽고 불편하다고 느낀 순간, 가정에 당신은 없다. 왜 당신은 당신 스스로 돈 벌어 오는 하숙생을 자처하는가. 당신에게도 언젠가 지금의 짐들이 버겁게 느껴져 그 짐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온다. 가족들이 그 짐을 나눠 부담하길 원하지만 가족들은 이것이 익숙하지 않다.
당신이 가족과 함께 노후를 안락하게 보내고 싶다면 아버지는 돈만 벌어다주면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내가 이 가정의 권력자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행복한 가정은 나 혼자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협동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 순간 당신을 옭아맸던 울타리는 없어지고 가족은 당신을 진정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어색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 어색한 순간을 두려워한다면 벌써 끝났을 그 어색함이 언제 올지 모르며, 당신의 울타리는 더욱 높게 되어 갈 것이고 그러면 당신의 힘든 상황은 길어져 갈 것이다. 그 울타리를 허물자고 가족들이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당신이 세웠으니 당신이 허물어야 한다.
가족이 원하는 것은 따뜻함
심리학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5~10 정도의 중심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뜻함, 영리함, 예민함 등이 그렇다. 이중 다른 사람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심특성이 바로 따뜻함이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진심어린 ‘따뜻함’으로 위로를 받는다. 가족에게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이 따뜻함을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것이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들의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는, 어쩌면 숙명 같은 존재다. 어제까지, 학교 다녀왔다는 아들에게, 딸에게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면, 오늘 바로 이렇게 말해 보자.
“아들, 공부하느라 수고했어!”
비로소 아들 마음 속에 아버지의 공간을 하나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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