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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응답하라 1994', 촌놈들의 전성시대...관전 포인트는?

 

(조세금융신문=고은선 기자) '응답하라 1994'가 tvN을 통해 재방영되며 누리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응답하라 1994'는 전국팔도에서 올라온 지방학생들이 서울 신촌 하숙집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서울 상경기를 그린다.

 

경상남도 마산 출신이자 농구스타 이상민의 빠순이 성나 역을 맡은 고아라, 나정이와 허구한 날 지지고 볶으며 싸우는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경상도 남자 쓰레기 역의 정우, 7명의 주인공 중 유일하게 서울 출신이자 여심을 사로잡는 야구선수인 칠봉이 역의 유연석이 출연했다.

 

또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올라온 감성 가득한 삼천포 역의 김성균, 전라남도 순천에서 최초로 오렌지족 소리를 들었을 만큼 유행에 민감한 해태 역의 손호준, 충북 괴산 출신의 빙그레 미소가 잘 어울리는 바른 생활 사나이 빙그레 역의 바로, 전남 여수 출신이자 평소엔 조용하지만 한방이 있는 서태지 빠순이 조윤진 역의 민도희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2012년 여름 전 국민을 '응칠앓이'에 빠뜨린 '응답하라 1997'에 이은 속편인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시리즈 2탄으로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 등 '응답하라 1997' 제작진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응답하라 1994'는 94학번 새내기들의 캠퍼스 생활로 풋풋했던 감성을 자극하고, 농구대잔치, 서태지와 아이들 등 1994년 신드롬을 일으킨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추억을 자극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해당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10.4%(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지난 2013년 10월부터 12월까지 21부작을 방송 한 바 있다.

 

이후 인기에 힘입어 응답하라 시리즈 3탄인 '응답하라 1988'이 2015년 방송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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