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종태 기자) 국민계정 통계 기준연도 개편으로 국민총생산(GDP) 등의 지표가 크게 개선됐으나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여전히 세계 주요국 중 1위였고, 기업부채 비율도 세계 4위에서 5위로 한 계단 하락에 그쳤다.
다른 나라들도 저마다 5~10년에 한 번씩 기준 연도를 개편하기 때문에 이 같은 최상위권의 순위는 국내 부채 규모가 획기적으로 축소되지 않는 한 빠르게 바뀌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9일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기준 연도를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변경한 데 따라 100.4%에서 93.5%로 6.9%포인트(p) 낮아졌고, 기업부채 비율 역시 122.3%에서 113.9%로 8.4%p 떨어졌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규모가 그대로이지만, '분모'인 지난해 명목 GDP 규모가 2천236조원에서 2천401조원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결과인데, GDP가 크게 늘어난 뒤로도 각 부채 비율은 다른 나라들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도 작년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34개국(유로권은 단일 통계) 중 가장 높았다. 2위인 홍콩(93.3%)과 격차가 7.1%p에서 0.2%p로 축소됐으나, 한국 제외 33개국 평균치(34.2%)를 크게 웃돌고, 태국(91.6%), 영국(78.5%), 미국(72.8%) 등 5위권 국가들과 차이도 컸다.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의 경우 한국의 순위가 세계 4위에서 5위로 한 계단 하락했는데, 일본이 114.5%로 종전 5위에서 4위로 올라서며 한국과 자리를 바꿨다. 홍콩이 258.0%로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높은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중국(166.5%), 싱가포르(130.6%) 등 아시아 국가들이 뒤를 이었다.
한은과 기재부는 옛 기준 연도에 따른 지난해 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비율을 각각 100.4%와 122.3%로 추산한 데 비해 IIF는 이를 100.1%와 125.2%로 조금씩 다르게 제시한 차이가 있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번 주께 지난해 말 기준 각국의 부채 비율을 공개할 예정인데, 당장 한국의 기준 연도 개편 결과를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번 기준 연도 개편에 따라 100% 선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게 됐다.
새 기준에 의하면 지난 2021년 말 기준 98.7%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이후 2022년 말 97.3%, 2023년 말 93.5% 등으로 하락세를 나타냈다는 것이 한은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준 연도 개편 전의 종전 최고치는 2021년 말의 105.4%였다.
그동안 100% 선은 가계부채 관리의 '기준점'으로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10월 2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00%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같은 달 17일 국감에서 "내년과 후년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00% 이하로 내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100% 하회라는 당초 정책 목표가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가 아닌 기준 연도 개편에 따른 명목 GDP 증가로 뜻밖에 달성된 모양새다.
그러나 당국은 거시 건전성 관련 정책을 변경할 사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부채 수준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높기 때문에 GDP 대비 비율을 추세적으로 하향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수치상 큰 폭으로 개선됐지만, 가계부채 리스크 자체에 대한 경계감이 실질적으로 완화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기업부채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나타냈다. 다른 관계자는 "기업부채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이 아닌 생산활동에 쓰이는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 그대로"라고 했다.
한은은 이달 하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기준 연도가 적용된 각종 지표를 토대로 건전성 관리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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