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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4 (금)

[초대석] 윤문구 이안세무법인 대표 “기부는 똑바로 걷기 위한 삶”

어려움 겪으며 더 단단해진 기부의 뜻
한 번의 위로가 10번의 아픔 이기게 해
“가장 중요한 건,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우리가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 조금이라도 이런 공감대가 이뤄져 기부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합니다.”

우리는 도움 속에서 산다. 도움을 받기도, 도움을 주기도, 그러한 행위에는 우리가 함께 산다는 ‘공감’이 있다. 그동안 약 3천만원 정도를 서울시립대에 교육발전기금으로 기부하였던 윤문구 이안세무법인 대표는 1천만원을 추가로 기부하면서 동시에 사후 유산의 10% 상당액을 교육발전에 쓰도록 서울시립대와 유산기부 약정을 맺었다. 한창 활발히 활동하는 시기에, ‘사후’를 생각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윤문구 대표에게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기부는 삶이자, 기도이며, 소망이기 때문이다. 기부를 통해 윤문구 대표가 전하고자 하는 공감에 대해 들어봤다.

 

1960~70년은 격동의 시기였다. 굶주림과 추위가 흔한 시기이기도 했다. 살기 위한 발버둥 외 다른 온기는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윤문구 대표의 꿈은 공학자였다고 한다. 기계 작동원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집안 형편은 너무나 어려웠다.

 

윤문구 대표는 고교 학업을 위해 어깨를 파고드는 봇짐을 메고, 새벽 4시 신문배달에 나섰다. 하지만 우골탑이란 말처럼, 대학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 때는 전액 학비가 지원되는 국립세무대학이 개교한 지 막 2년째가 되던 시기였다. 굶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었다.

 

가난한 삶 중에도 윤문구 대표는 꾸준히 나누었다. 부모가 없는 돌봄 아동, 아프리카의 어떤 아이, 장애아동 등에 대한 기부도 이어갔다. 하지만 그들과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

 

 

“공무원 때부터 시작해서 20년 정도 후원했던 아이가 있었어요. 돌봄아동은 성년이 되면 보육원을 나와야 해요. 그 아이가 어디 대학에 들어갔다고, 꼭 보고 싶다고 편지가 왔더라고요. ‘아니다’, 그랬더니 돌봄기관에서 ‘간곡히 요청합니다, 외로운 아이입니다’ 그러더군요. 그래서 ‘그렇구나’하고 딱 한 번 봤어요.”

 

“(기자) 그 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난 너에게 은인으로 남고 싶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움을 주고, 그 누군가가 또 누군가를 위해서 도움을 준다. 나한테 고마워하는 대신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 달라고. 그리고 이후로 제가 만난 사람은 없었어요.”

 

이번 서울시립대 기부는 큰 기부이긴 하지만,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고 전했다.

 

“사실 이런 게 알려지는 건 좀 부끄럽죠. 고민하고 한 일도 아니에요. 기회가 있어서 잘됐다며 그냥 한 거예요. 큰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한 건 아니에요.”

 

그렇다 해도 유산기부 약정은 일반적인 기부와는 의미가 약간 다르다. 유산기부는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한 행위다. 그러나 윤문구 대표는 아직 60대 초반이며, 매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00세 시대라는 요즘, 사후를 생각하는 건 조금 이른 건 아닌지 물었다.

 

“세무는 전문서비스업이니까 대외활동이 중요하죠. 그렇지만 60세부터 사회 속에서 나의 삶의 일부였던 골프, 술을 끊었어요. 왜냐하면 새로운 목표에 대한 도전의 준비과정이었지요. 중증장애인 딸을 일찍 보내면서 그 딸에게 약속한 75세 때까지의 헌신하는 삶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어요. 누군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또 다른 누군가한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좋은 겁니까?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보실 수도 있지만, 언제 떠날지는 누구도 몰라요. 내일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미리 하나하나 놓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윤문구 대표는 자신 역시 도움을 받아오며 살았다고 전했다.

 

“고등학교 때 학비를 벌려고, 새벽 4시에 신문배달을 했는데, 겨울이 되면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정도 돼요. 그때는 두어 시간 발로 뛰어다니며 배달했었죠. 어느 날 준비 마치고 배달하러 가려고 했는데, 영업소장님이 부르시더라고요.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혹시 누가 신문 끊는다고 했나 싶었죠.”

 

(당시에는 신문구독이 거절되면 배달원에게 책임을 묻는 그런 분위기가 일부 있었다.)

 

“그런데 영업소장님이 선물이라며 상자를 하나 주시더라고요.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까 양말 두 켤레가 있더라고요. 그때는 그게 금 덩어리 같더라고요. 밥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시대였으니까요. 마음이 그렇게 훈훈해질 수 없었어요.”

 

하지만 형편 좋게 돌아가지 않는 게 세상살이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던 자신에게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충격이었고, 네 명의 동생과 홀어머니의 부양에 대한 부담은 견디기 힘들었다. 술을 마시다 쓰러지고, 다시 술 마시고를 반복하던 때도 있었다.

 

“둘째 아이인 딸이 5번 염색체 이상으로 중증장애인으로 태어났고, 이는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죽을 위기를 한번 겪었어요. 늦은 밤에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1주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적십자병원 이었어요. 이웃이 우리 아이를 맡아주고, 천만다행으로 수술받고 다시 살 수 있었죠. 그때부터 저는 많은 변화를 배우게 되었어요.”

 

 

(윤문구 대표와 이안세무법인은 적십자회의 후원자이자 봉사자이기도 하다. 2021년 10월 대한적십자사는 이안세무법인에 적십자회원유공장 은장을 전달했다.)

 

“살다 보면 기쁜 날도 있죠. 그런데 사실 가슴 아픈 날이 더 많아요. 시험에 실패하거나, 세상살이에 실패하거나, 가까운 사람들한테 아픔을 겪는 일도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버틸까. 누군가 무심히 던진 돌에 맞을 때가 많죠. 대부분 위로는 못 받지만, 우리는 다 공감해요. 모르는 사람이어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시간들이 분명히 있어요. 많지는 않죠. 그렇지만 한 번의 위로가 10번의 아픔을 이기게 하는 거 같더라고요. 사람의 여정이 그런 것 같아요.”

 

사랑의 복지관은 온기가 또 다른 온기로 전달되는 곳이다. 윤문구 대표와 이안세무법인은 2015년부터 11년간, 17번의 장학금을 전달했고, 지난 4월 기준 이안세무법인의 도움을 받은 장학생들은 160명에 달한다.

 

 

또한, 매년 연말이 되면, 윤문구 대표와 이안세무법인 구성원들은 2015년 12월부터 매년 해오는 저소득 가구 연탄 나눔 봉사활동이다. 땀과 탄가루가 엉겨 붙고, 뽀얀 입김 속 숨이 가쁘지만, 구성원들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봉사를 할 때마다 매번 묘한 뿌듯함으로 가득찬다고 전한다.

 

도움을 받은 이들 중에는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는 교회음악학으로, 누구는 사회복지학으로, 방식은 달라도 마음은 같았다. 과거 윤문구 대표가 어려운 형편에도 누군가를 도왔듯, 그들도 나눔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윤문구 대표에게도 그를 돕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다. 바로 가족들이다. 배우자도 자신의 전공인 간호학을 살려, 사회복지사로, 보건교사로 장애인 단체 등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부부는 장애인 딸을 떠나 보내면서 장기기증도 마쳤다.

 

그의 아들은 의사가 됐다. 의사로서 동생과 같은 장애인들을 돕고 싶다는 소망이 의대에 진학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그 때문인지 유산기부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 아내와 아들은 아버지의 결심을 반겼다고 한다.

 

“아내하고 아들이 칭찬을 해주더라고요. 우리는 그런 농담을 해요. 아들한테 ‘넌 의료 봉사도 할 수 있겠네, 아빠는 하고 싶어도 못 해’, 그러면 아들은 ‘없긴요, 전화라도 받아주세요’, 늘 든든하죠. 우리 가족들은 모두 그런 공감대가 있어요.”

 

기부하고 싶은 데 결심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술 먹고 놀기 좋아하던 때가 있었죠.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세상도 크게 원망하다가 큰 병을 얻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병원에서 생명을 얻고, 배우자와 자녀, 우리 가족이라는 큰 축복을 받았죠. 훗날에 저와 아내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손녀에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도움을 줄 때는 여운을 남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기부금이 장학금이 될 수도 있고, 의료지원이 될 수도 있어요. 누구는 나쁜 곳에 쓰면 어떡하지 그래요. 그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잘해야 하는 일이에요. 개인은 도움을 주느냐, 아니냐, 그것만 마음 먹으면 돼요.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공감대를 형성해서 기부 문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에는 여운이 없어야 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에게 이번 기부는 지나간 이정표에 불과했다. 그의 계획에는 앞으로의 이정표가 많았다.

 

윤문구 대표는 구체적으로 누굴 도와줬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장애 등 가장 관심받기 어려운 사람들을 계속 돕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는 개인사처럼 치부되지만, 사실 사회적 관심이 매우 절실한 분야다.

 

지난해 9월 국민권익위원회는 ‘2024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를 발간하면서, 2024년 기준 장애인 학대 관련 신고 건수는 6031건에 달하며, 이 중 학대의심사례는 3033건(50.3%)에 달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학대 피해자 10명 중 7명(71.1%)은 지적·자폐성 등 발달장애인이었고, 학대 행위자는 지인 22.6%,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15.7%, 부친 10.4% 순이었다.

 

말하거나,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학대에 더 노출돼 있는 것이다.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있고, 언제나 도움을 줄 손길도 있다. 윤문구 대표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될 수 있다. 관건은 우리 자신의 결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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