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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삼성 이재용은 危機를 넘길 준비가 아직 안됐다...만찬의 흥겨움을 깨는 苦言

(조세금융신문=조창용 기자)  삼성그룹은 연초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생일을 기념해 사장단 신년 만찬 및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수상자 축하연을 열어왔다. 지난해부터는 임원 만찬과 사장단 만찬이 함께 열렸고 와병 중인 이 회장을 대신해 이재용 부회장이 행사를 주재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삼성그룹 오너 삼남매가 나란히 참석해 화제가 됐으나 올해는 이 부회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만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18일 만찬에서 건배사를 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신임 임원들을 보면 내가 더 힘이 난다”면서 “그 때문에 임원 만찬은 내가 새해 들어 참석하는 첫 행사”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 위기상황 돌파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자”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례적인 단축행사로 간소하게 마무리된 행사에서 위기를 언급한 이 부회장의 행보는 자신감에 찬 삼성 후계자의 모습과는 동떨어졌던게 사실. 최근 연이은 중국에서의 스마트폰 사업의 추락과 가전부문의 GE사업인수 실패에 따른 경영능력 재평가의 따가운 시선을 떨치려 언론을 피하는 모습 등 '약한'이미지의 삼성 후계자를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동생 이부진 사장의 이혼등으로 어수선 한 가족 분위기를 애써 피하려 이서현 사장과 함께 참석한 만찬이지만 이미 이건희 회장의 삼성 시절과는 다른 위축된 모습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부진 사장을 부축해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동생의 허망한 마음도 챙기고 그룹의 동반 임원들의 마음도 챙기는 일석이조 일텐데.
 
이건희 회장의 삼성 후계자 데뷔 시절을 떠 올리는 버릇을 가진 인사들은 뭔가 불안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사회 시스템과 경제 상황의 판이한 구조를 감안 하더라도 내심 카리스마로 대변되던 과거 대한민국 재벌의 상징 '삼성'의 오너의 모습은 쉽사리 찿기 힘든게 사실이다. 삼성은 삼성 다와야한다. 국가가 못해주는 샐러리맨들의 희망을 삼성은 채워줄 수 있다. 창조경제를 외치며 창업을 권하는 박근혜이코노미와는 달리 현실적인 봉급생활자들의 현실을 자랑스럽게 인정해주는 삼성의 이미지를 이재용 부회장은 창조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이재용  카리스마를 뿜어내길 바라는 수 밖에. 베일에 싸인 삼성 이미지도 녹여낼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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