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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어느 지사장의 좌충우돌 동행일기 24]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사람들

영업관리자의 능력이 과업수행으로 판가름나던 시절

(조세금융신문=엄명용 유퍼스트 서울지사장) 이번 6월호로 해서 꼭 24, 2년간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다. 꾀가 날 때마다 2년간만 써보자며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럼으로 오늘은 2년간 달려온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의미를 담아 내 맘대로 정한 기념 특집호이다.

 

전직 ‘K후배가 사무실 앞으로 찾아와 오랜만에 과거 함께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저런 대화 끝에 전()직 영업관리자 시절 가장 잊지 못하는 영업에 얽힌 에피소드를 묻기에 본의 아니게 내 경험담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하였다(요즘 과거 이야기를 하면 꼰대가 되는데).

 

내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침소봉대하거나 어줍잖은 자화자찬이 될까 심히 조심스럽지만 어쩌랴. 오늘은 특집호이니까, 강호제군(?)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IMF로 한창 대한민국호가 위기에 처했던 19984,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삼십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인사파괴의 대표주자가 되어 생보사 ‘K외야 지원단장이 되었다. 14개의 영업점포에 400여 명의 보험설계사를 관리하게 된 것이다. 때가 때인지라 각 금융사마다 유동성(현금) 확보가 절체절명의 과제이던 시절이라 영업관리의 제1순위는 기존계약 해약방지와 일시납(거치형)상품 유치, 영업관리자의 능력은 순전히 이 과업을 무리없이 수행하느냐로 판가름하던 시절이었다.

 

가뜩이나 그 당시에는 매월, 아니 매일 유동성 속보를 받는 환경이라 오랫동안의 영업관리에 FP지점장(당시 호칭 영업소장)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이럴 때 들려오는 인접 지원단의 큰 일시납 계약 체결 소식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모든 이의 주목(질시)을 받고 사내(社內) 이슈가 되며 부임한 입장에서 유동성확보, 그러니까 일시납 계약체결은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일시납은 영업관리자 경험이 많은 선배 지원단장들이 대부분 해결(?)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연수원에서 외야 관리자로 갑자기 발탁인사가 나서 기존 고객 풀(Pool)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내 입장으로선 참으로 난감하였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말로만 일시납 속보를 받고, 질책하는 것은 내 양심이 편치 않았다. 회사가 젊은 나를 선택했을 때는 다른 방식의 목표달성과 조직관리를 보여달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의 장점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그래, 솔선수범 해보자!’

 

내 연고(緣故)를 다 끄집어내어 곱씹어 봐도 IMF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거액의 일시납을 맡겨줄 지인을 찾지 못했다. 그 때 당돌한 생각 하나가 머리에 떠올랐다. 가장 잘 아는 대기업 사장님, 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당사 ‘L사장님이 아닌가? 당시 ‘L사장님은 마침 내가 연수원에서 원장님으로 2년간 모신 분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잘 알았고, 그 넉넉한 인품으로 인해 내, 외야 조직원의 신망이 두터운 진정한 리더였다. 사모님 또한 이런 저런 행사시에 사회를 보면서 안면을 익혀왔던 터라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즉시 실행 준비를 하였다. 내 경험상 이런 경우 좌고우면(左顧右眄)하다 보면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골프나 야구 등 스포츠 선수를 보아도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본사 비서실에 근무하는 후배를 통해 주소를 파악하고, 일시금 1, 5, 10억의 기간대별 수익률표를 지참하고 사장님의 분당 자택을 찾게 되었다. 평일의 분당은 한산하였으나, 사모님이 운동을 간 관계로 좀 기다린 후 자택을 방문하여,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일시납 가입을 권유하였다.

 

검소하게 사시는 모습이 한눈에도 느껴지는 사모님은 아무 말 없이 차를 한잔 권하고, 황당하고 무모한 방문객에게 한참이나 말씀이 없으셨다. 차 한 잔을 마시길 기다렸던 사모님이 차분히 말씀하시길, “마침 따님이 증권사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거기도 유동성 때문에 곤란한 지경이다. 그래서 여유도 없지만 지금은 더 가입할 여력이 없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며 미안해 했다.

 

이 방문 며칠 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무선통신사업(인텔 사우디 지사)을 크게 하는 ‘S회장님을 소개받게 되어 매월 적정한 금액의 일시납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IMF기간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L사장님은 분명히 내가 방문한 사실을 알고 계셨을 텐데도 그 후 몇 번 뵐 기회가 있을 때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건강상 문제로 갑자기 퇴직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작고(作故)하였기에 더 이상 인지(認知)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

 

전월 업적마감에 힘들어 하는 K사 후배 장 과장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라고 했던 얘기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결국은 꼰대’(과거팔이 아저씨)의 모습으로 비춰질까 걱정스럽다.

 

장정일 과장! 그거 아닌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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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어린 시절, 여름이면 시골 도랑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맨발로 물살을 가르며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허름한 양동이에 물고기를 담아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는 늘 “고생했다”라며 따뜻한 잡탕을 끓여주셨다. 돌과 수초가 얽힌 물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가 머무는 자리’를 찾던 그 경험은 훗날 관세행정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물가에서는 마음이 늘 편안했다. 장인어른께서 선물해 주신 낚싯대를 들고 개천을 찾으며 업무의 무게를 내려놓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낚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다시 낚싯대를 잡기까지 20년이 흘렀다.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자 시간의 공백은 금세 사라졌다. 물가의 고요함은 여전히 나를 비워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낚시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영하의 겨울에도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고 손난로를 넣은 채 저수지로 향한다. 찬바람이 스쳐도 찌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진다. 몇 해 전에는 붕어 낚시에서 나아가 워킹 배스 낚시를 시작했다. 장비도 간편하고 운동 효과도 좋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걸어 다니며 포인트를 찾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