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최일혁 기자) 삼표그룹은 현대차그룹의 친족기업으로 유명하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 정지선씨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 부회장이 지난 1995년 화촉을 올리면서 사돈 관계가 됐다.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된 데는 양가의 오랜 친분이 크게 작용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도원 회장이 경복고 6년 선후배 관계인데다 정의선 부회장은 정지선씨의 사촌오빠인 정대우 삼안운수 사장과 구정중·휘문고 동창이다. 이 때문에 정의선 부회장은 유년 시절부터 정지선씨를 알고 지내 자연스럽게 혼담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채이배 의원 “현대차, 현대건설·제철 통해 삼표그룹 계열사 지원”
두 그룹이 사돈지간으로 맺어진 이후 삼표그룹은 현대차그룹의 일감몰아주기로 성장했다는 논란에 줄곧 시달려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지난달 10일 10대 재벌의 친족기업 일감몰아주기 의심 사례를 정리·분석해 발표한 결과를 살펴봐도 현대차그룹은 계열사인 현대건설을 통해 삼표, 삼표산업, 남동레미콘, 삼표피엔씨 등에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나타난다. 또 현대제철을 통해서는 삼표기초소재, 네비엔 등을 지원했다.
삼표, 삼표산업, 남동레미콘, 삼표피앤씨 등은 정도원 회장과 후계자인 장남 정대현 삼표 전무가 지배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에게는 장인과 처남이 된다. 그룹 지주회사 삼표의 지분은 정도현 회장이 81.90%, 정대현 전무가 14.07%를 보유 중이다. 삼표는 삼표산업과 삼표피앤씨 지분을 각각 100%, 65.22% 갖고 있으며, 남동레미콘의 경우 정대현 전무의 지분율이 76.17%다.
채이배 의원은 2011년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이후 골재, 시멘트 및 콘트리트 제조를 주요사업으로 영위하는 삼표, 삼표산업, 남동레미콘, 삼표피앤씨 등에 대한 내부거래가 확대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삼표기초소재는 신대원이 94.3%를 소유하고 있으며, 5.7%는 삼표기초소재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는 정대현 전무가 갖고 있다. 신대원의 최대주주는 77.96%를 정대현 전무이고, 나머지는 정대현 전무의 누나들인 정지선씨와 정지윤씨가 사이좋게 11.02%씩을 나눠 갖고 있다. 정대현 전무의 네비엔 지분율은 70%다.
시멘트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2010년부터 2012년 10월경까지 삼표기초소재에 철광석 정제 부산물인 슬래그 대부분을 몰아줬다. 슬래그란 제철소에서 철광석을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로, 시멘트에 섞으면 더 단단해진다고 해서 혼합재로 사용된 후부터는 시멘트회사에 매도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2011년에 슬래그 240만톤 중 200만톤 가량을 그해 10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부근에 슬래그시멘트 공장을 완공한 삼표기초소재에 납품했다. 전체 물량의 80% 이상을 떠안겨준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당시 삼표기초소재의 연간 생산 능력이 100만톤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삼표기초소재는 현대제철로부터 공급받은 물량의 절반 정도를 자체 소화하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슬래그시멘트 회사에 마진을 붙여 팔아넘겨 이른바 ‘통행세’를 짭짤하게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시멘트업계의 반발이 커지자 현대제철 측은 2012년 10월부터 삼표기초소재로의 공급물량을 100만톤으로 조정하고 남은 물량은 나머지 업체들에 골고루 공급하고 있으나 여전히 사돈기업 밀어주기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네비엔 역시 현대제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철스크랩 사업을 주요사업으로 영위하는 네비엔은 현대제철 없이는 사실상 독자 생존이 어려운 회사다. 현대제철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70~80%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채이배 의원은 “친족기업에 대한 일감몰아주기는 시장에서 경쟁 없이, 단지 친인척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을 향유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성장한 중소·중견업체의 대기업과의 거래를 단절·제한해 경쟁 열위에 놓이게 하는 반면, 해당 친족기업은 별다른 기술이나 노하우 없이도 혈연관계 자체가 경쟁력이 돼 경제적 이익을 얻는 등 시장 질서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어 “이번에 확인된 10대 재벌의 친족기업 일감몰아주기 의심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뿐이며,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사실상 일감몰아주기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행 공정거래법상 ‘독립경영 인정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계열분리가 가능한데, 법령상의 미비점으로 인해 사실상 독립경영을 할 능력이 없는 회사들 상당수도 친족분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9년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 전에는 상호 주식소유, 임원겸임, 채무보증 및 자금대여부 외에도 ‘최근 1년간 회사별 매출입 상호의존도 50% 미만’의 거래요건까지 충족했어야 했지만 이 부분이 삭제된 탓에 친족기업의 경우 공정거래법의 적용 제외가 용이해졌고, 이것이 친족기업 일감몰아주기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채이배 의원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채이배 의원은 “공정위는 규제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독립경영 인정 기준’에 매출액 상호 의존도 요건을 반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장 이전 불응하는 삼표의 버티기, 현대차 GBC 건립과 연관있나
최근 삼표그룹이 풍납동 레미콘공장의 이전을 막기 위해 서울시, 국토교통부, 송파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고 있는 것도 사돈기업인 현대차그룹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삼표산업의 풍납동 공장은 백제 유적지인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의 서성벽 복원 구간에 위치해 있다. 서울시와 송파구는 2003년부터 풍납토성 문화재 발굴 및 복원사업을 위해 풍납동 공장 부지를 순차적으로 취득해 왔다. 이 과정에서 삼표산업은 매년 토지 사용권의 일부 상실에 따른 운영 차질을 우려해 보상완료 시점까지 시 소유 토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서울시는 삼표산업에 403억원을 보상하고 5필지와 공장부지를 제외한 18필지를 매입했다. 그런데 돌연 삼표산업이 보상협의에 불응하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이에 서울시는 시 소유의 토지사용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고 삼표산업 측에 알렸다.
삼표산업은 2014년 10월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 ‘시유재산 사용허가 조건일부취소’ 청구를 제기하는 것으로 맞불을 놨다.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는 이듬해 1월 삼표산업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삼표산업은 계속 보상협의에 나서지 않았고 그러자 서울시는 아직 매입하지 못한 레미콘 공장 부지를 강제수용 하겠다며 초강수를 뒀다.
삼표산업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해 7월과 9월 송파구청장을 상대로 ‘시유(市有)재산 사용허가 연장 불허 취소’ 소송과 ‘행정대집행 계고처분취소’ 소송 등을 제기했으며, 서울시장에게는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소송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는 ‘사업인정고시 집행정지 및 취소’ 소송을 냈다.
법원은 삼표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삼표산업이 송파구청을 상대로 낸 ‘시유재산 사용허가 연장 불허 취소 소송’에서 서울시 소유 부동산의 사용 불허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이후 삼표산업은 서울시장과 송파구청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추가로 제기했다.
시멘트업계에서는 삼표그룹의 이 같은 무차별 소송을 현대차그룹이 내년 초 착공에 들어가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과 연관 짓는 모습이다. GBC는 현대차그룹 통합사옥으로 사용되며 105층 초고층타워와 컨벤션 센터, 전시시설, 호텔, 업부시설 등의 기능을 갖춘 6개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공사비만 약 3조원 가량 투입될 예정이다.
삼표산업이 갑자기 보상 협의에 불응하기 시작한 2014년은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입찰이 진행되던 시기다. 현대차그룹은 삼성그룹을 제치고 그해 9월 10조5000억원에 부지를 낙찰 받는데 성공했다.
풍납동 공장은 삼성동 부지까지 차로 20여분 거리다. 통상 레미콘은 건설 현장에서 60~90분 거리 내에 있는 공장에서 물량을 납품한다. 타설을 90분 안에는 끝마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정대로 GBC 공사가 시작될 경우 지리적 이점을 가진 풍납동 공장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1977년부터 가동된 성수동 공장이 서울시로부터 이전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도 풍납동 공장의 이전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동안 이 공장에서 소음과 미세먼지, 매연이 심하다는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았으며, 최근에는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시멘트 업계 한 관계자는 “대다수 레미콘 공장이 환경문제 때문에 서울시 외곽으로 쫓겨나갔지만 삼표는 여전히 두 곳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서울 시내에 대형공사가 있을 경우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어드벤티지다”라고 말했다.
경제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예전부터 이전 문제로 말이 많았던 성수동 공장은 그렇다 쳐도 삼표가 풍납동 공장 이전을 이처럼 결사적으로 막는 것은 사실상 배후에 현대차가 있다는 얘기”라며 “만약 삼표가 GBC 건설에 참여하게 된다면 현대차는 사돈기업 일감몰아주기라는 의혹에 또 다시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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