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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관세행정관 '11월의 부산세관인' 선정

 

(조세금융신문=김소현 기자) 부산본부세관이 12일 2019년 ‘11월의 부산세관인’으로 이영숙 관세행정관을 선정했다.

 

이 관세행정관은 유럽 등 해외에서 고가의 명품을 구매한 여행객이 검사 회피를 위해 인접국으로 환승하고 동행자를 통해 분산 대리 반입하는 등의 밀수입 수법을 파악했다.

 

이에 이영숙 관세행정관은 고액구매자에 대해 최초 출발지와 편명을 비교·분석하는 등 적극적 업무수행으로 고가시계 등 3억 원 대의 명품 밀수입을 적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한 업무 분야별로 우수성과를 낸 한정호 관세행정관, 류지연 관세행정관, 조태호 관세행정관, 조세웅 관세행정관도 함께 시상했다.

 

한정호 관세행정관은 ‘통관분야’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 관세행정관은 폐기물 불법 통관 예방을 위해 중소수출입기업과 신고인을 대상으로 폐기물 신고절차를 안내하고 위반사례를 전파했다. 7~8월 폐기물 집중단속을 실시해 폐전선 등 총 371t 규모, 7건의 불법 수출을 적발했다.

 

‘심사분야’의 류지연 관세행정관은 제 3자 명의로 변경한 체납자의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압류·추심하고 해외도피 체납자의 국내거주 가족을 설득해 장기 악성 체납액 2억 2000만 원을 정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조사분야’ 조태호 관세행정관은 식품포장재임에도 식품위생법에 따라 수입요건을 받지 않고 일본산 티백용 여과지 25t(시가 7억 원)을 부정수입한 업체 적발 공로를 인정받았다.

 

조세웅 관세행정관은 ‘감시분야’ 성과를 인정받았다. 조 관세행정관은 선박·선원 위주 항만감시에서 화물까지 감시하는 항만·화물 통합감시체계 구축에 따라 부산항 특성을 반영한 감시대상화물 업무매뉴얼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수입요건 구비를 회피하려한 식품용 고무장갑 11만 9000켤레를 적발했다.

 

부산본부세관은 “탁월한 업무성과를 창출하거나 세관의 명예를 드높인 직원들을 지속해서 발굴·포상해 열심히 일하는 조직문화 조성에 노력할 것”이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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