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최주현 기자) "(또 '빅스텝'을 단행한 것은) 특정 수준 환율을 방어하려 하지는 않지만 급격한 환율변동이 가져올 수 있는 자본유출 압력 증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G) 합동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5일(현지시간) 싱크탱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서,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해 강연하면서 지난 7월 이후 석 달 만에 금융통화위원회가 다시 '빅 스텝'을 단행한 것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다시 한번 '빅 스텝'을 결정한 것은 7∼8월에 언급했던 포워드가이던스(사전예고 지침) 전제조건이 변했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성장률 하락 전망으로 성장 하방 리스크가 커졌고, 예상 밖 환율 상승으로 5∼6%대 물가 수준이 지속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율의 빠른 평가절하는 한은 통화정책 결정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AFC·Asian Financial Crisis) 때 아픔을 기억하고 있어 급격한 환율 상승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한국의 금융·경제 여건은 두 차례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및 2008년 때와 크게 다르고, 현재의 환율 평가절하 역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요 나라에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 총재는 "신축적인 환율이 강달러 추세의 충격을 흡수하도록 하는 한편, 급격한 환율변동이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도록 여타 정책과 통화정책의 적절한 조합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빅 스텝' 후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5∼6%대 수준의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되는 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임을 명확히 하면서도, 지난 7월과 달리 인상 폭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준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11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결정,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움직임, 중국 당대회 후 제로 코로나 정책의 변화 가능성, 엔화와 위안화의 변동성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은은 이러한 대외여건 변화가 국내 물가와 성장, 금융 및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점검하면서 향후 금리 인상 폭과 그 이후의 인상경로를 결정해 나갈 예정"이라고 피력했다.
한은 총재로 일하며 두 가지 교훈을 배웠다는 그는 "수개월 간 금리를 결정할 때 다른 정책변수들을 어떻게 조합하는 것이 최적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서 "최적의 정책조합(optimal policy mix)을 찾는 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실행하기 복잡한 일인지 깨달았다"고 밝혔다.
전략적 모호성을 가하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당분간 금리를 '베이비 스텝'(0.25%p만 인상)으로 인상해 나가겠다는 포워드가이던스를 제시했지만 9월 들어 원화 가치가 급락하자, 금리 인상 폭을 미리 제시해 환율 절하를 심화시켰다는 비난이 거셌다며, 한은 총재로서 포워드가이던스 이행을 소통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도 토로했다.
이 총재는 "포워드가이던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지난 베이스라인 시나리오를 조건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서약이나 약속으로 여기는 것 같다"면서 "미래 금리 경로에 대해 가급적 언급 회피를 미덕으로 여겨왔던 오랜 방식에서 벗어나기에는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애로가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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