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지한 상무이사/편집위원) 지난해 10월 이른바 빌라왕 사건 이후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는 어느 한 곳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속수무책으로 터지고 있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은 물론 광주, 전남, 부산 등에서 전세 사기로 인한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경매 중단이나 유예를 지시하자 국토교통부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과 함께 전세사기 피해지원 범부처 TF를 가동하고 피해 세대에 대한 주택 경매를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는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제도를 도입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I), 한국주택금융공사(HF)를 통해 일명 ‘전세보증금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잔액은 100조를 돌파했다.
최근 1년간 20조원이 늘었다. 현행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르면 HUG는 전체 보증 규모가 자기자본의 60배를 넘겨선 안 된다. 지난해 말에 이미 HUG의 보증 배수는 54.4배로 증가했다.
HUG의 전세보증 대위변제 증가로 인해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자기자본이 축소되면 올해 말에 보증 규모가 자기자본의 60배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곧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못하게 되
는 상황을 빚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가 HUG를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 평균 55.75일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사기 등으로 전세금 반환신청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HUG의 약관에는 전세금을 30일 이내에 돌려주게 되어 있지만 실상은 두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HUG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이행을 단축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주택과 상가에 대해서는 민사특별법(주택임대차보호법,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으로 임차인을 보호하고 있다. 주택이나 상가를 임대차 계약한 후 이를 인도받고 주민등록(상가는 사업자등록)을 마치면 다음 날부터 새로운 임대인과 제3자에게 ‘계약 기간 계속 거주’를 주장하며 대항할 수 있다(대항력).
대항요건과 함께 확정일자를 부여받았다면, 후 순위 담보권자나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다(우선변제권). 또한, 주택임대차의 경우 임차인은 보증금 중 일정액을 순위에 상관없이 다른 담보물권자보다 가장 먼저 변제받을 권리가 있다(소액 임차인 최우선변제권). 그 밖에도 법정갱신과 계약갱신요구권 등을 통해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항력과 확정일자를 통해 후순위 담보권보다 전세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수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국세기본법과 지방세기본법에는 경매나 공매가 개시되면 해당 주택에 부과된 국세나 지방세는 설정일자와 관계없이 담보물권이나 채권보다 먼저 징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당해세 우선 징수).
세입자가 거주하는 주택에 경·공매가 실행되면 해당 주택에 부과된 재산세, 지역자원시설세 등의 지방세와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증여세 등의 국세가 우선 징수되기 때문에 세입자에게 돌아올 배당금은 그만큼 적어진다. 임대인의 세금 체납으로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도 생길 수도 있다.
정부는 당해세 우선 징수를 손보기로 했다. 국세기본법 개정이 먼저 마무리되었다. 지방세법 개정은 의원입법을 통해 추후 이뤄질 예정이다.
개정 국세기본법은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권에 의하여 담보된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또는 주거용 건물에 설정된 전세권에 의하여 담보된 채권은 해당 임차권 또는 전세권이 설정된 재산이 국세의 강제징수 또는 경매 절차 를 통하여 매각되어 그 매각대금에서 국세를 징수하는 경우 그 확정일자 또는 설정일보다 법정기일이 늦은 해당 재산에 부과된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의 우선 징수 순서에 대신하여 변제될 수 있다.”라고 개정되었다.
당해세 법정기일이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권이나 전세권보다 늦다면 경매 시 당해세를 먼저 징수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확정일자나 담보 설정일보다 법정기일(신고일 또는 고지서 발송일)이 우선하는 당해세는 여전히 임차권과 전세권에 의해 담보된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나 전세권에 의해 담보된 채권보다 우선 징수하게 된다.
그래서 실제 해당 재산에 대해 국세나 지방세의 법정기일이 개시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임차인으로서는 이를 알 방법이 없다.
그나마 ‘전세사기피해자특별법’에서 임대인의 조세채권을 임대인이 소유한 모든 부동산에 안분하기로 해 특정 부동산에 세금징수가 집중되는 것을 방지한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방안으로 보인다.
정부는 임대인 동의 없이 임대인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미납국세열람 제도를 지난 4월부터 도입했다. 하지만 임차인이 임대인의 체납 여부를 확인하려면 임대차 계약을 마친 이후 계약서를 첨부해야 한다.
실제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을 확인하였다고 해도 이미 임대차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계약 해지를 하려면 위약금을 지급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세나 지방세의 법정기일 개시는 체납 이전에 이뤄지므로 임대인의 체납 여부를 확인한다고 해도 경매 시 배당 우선순위를 가 늠해 보기도 어렵다.
소액 임차인에게 최소한의 생활자금을 가장 먼저 배당해 주는 최우선변제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현재 서울특별시는 임차보증금 1억 6500만원 이하(소액임차인)일 경우 5500만원을 최우선변제 받을 수 있다. 인천이나 경기도 등과 밀억제권역은 임차보증금 1억 4500만원 이하라면 4800만원을 최우선 변제하도록 하고 있다.
서울에서 임차보증금이 1억 6500만원을 초과한다면 최우선변제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올해 2월부터 임차보증금 상한과 변제 금액을 일부 상향 조정했으나 높아진 전세가로 인해 소액임차인 기준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실제 최근 인천 미추 홀구의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대책위에 가입한 셋 중 한 곳은 경매에서 최우선변제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임차인이 존재하는 다가구 주택에서는 후순위 임차인의 최우선변제권으로 인해 먼저 입주한 임차인의 경매 배당금이 적어지거나 아예 없어지는 상황도 빚어질 수 있다.
정부에서는 LH, 지방공사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공공 매입 형태로 최우선 매입하기로 했다. 이 경우 기존 세입자는 퇴거당하지 않고 살던 집에서 계속 거주할 길이 열리게 된다. 피해 임차인은 경매에 나온 주택을 우선 매수하거나, LH 등에서 공공 매입한 이후 임차인으로 계속 거주할 수 있다. 하지만 LH와 지방공사가 경매에 나온 피해 주택을 공공 매입 형태로 우선 매수하려면 관련 법규가 개정되어야 한다.
또 어떤 주택이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그동안 손 놓고 있던 정부의 사후 약방문에 본격 시동이 걸렸다. 전세 사기 문제는 결코 방관할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 제도를 월세 형태로 전환하는 장기 계획도 세워야 한다. 이런 전세 피해자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분명한 피해 방지 대책을 통해 세입자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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