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수)

  • 흐림동두천 -14.0℃
  • 맑음강릉 -6.3℃
  • 맑음서울 -11.8℃
  • 대전 -8.7℃
  • 구름조금대구 -6.3℃
  • 흐림울산 -4.7℃
  • 맑음광주 -6.3℃
  • 구름많음부산 -2.7℃
  • 흐림고창 -6.5℃
  • 흐림제주 2.0℃
  • 맑음강화 -11.8℃
  • 흐림보은 -9.3℃
  • 맑음금산 -8.3℃
  • 흐림강진군 -4.0℃
  • 흐림경주시 -6.0℃
  • -거제 -2.2℃
기상청 제공

은행

DGB금융지주, 박인규 회장 제외한 모든 등기임원 해임

노성석 DGB금융지주 부사장과 임환오·성무용 대구은행 부행장 대상 '보복 인사' 논란

(조세금융신문=박소현 기자) DGB금융지주가 박인규 회장(대구은행장 겸임)을 제외한 모든 등기임원을 퇴진시켰다.

 

26DGB금융지주 임원 인사위원회는 박인규 회장을 제외한 등기임원 3명을 퇴진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노성석 DGB금융지주 부사장과 임환오·성무용 대구은행 부행장이 물러나게 됐다.

 

일각에서는 DGB금융지주 등기임원을 전원 해임된 것이 '보복 인사'란 견해도 있다. 현재 비자금 조성 등 혐의를 받는 박인규 회장이 자신을 제외한 모든 등기임원을 사실상 정리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사내 갈등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DGB금융지주 인사위원회는 이날 임원 18명에 대한 승진과 자회사 대표이사 4명에 대한 유임안도 함께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경룡(전략경영본부장 겸 DGB경제연구소장) 부사장보는 부사장, DGB대구은행 김남태(준법감시인) 상무는 DGB금융지주 부사장보로 승진했다.

 

DGB대구은행은 박명흠(마케팅본부장 겸 서울본부장) 부행장보는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또한 김윤희(자금시장본부장) 오동수(IT본부장) 황병욱(정보보호최고책임자) 김영탁(준법감시인) 여민동(공공금융본부장) 김윤국(리스크관리본부장) 상무들은 부행장보로 승진했다.

 

그 외 서정동(여신본부장) 박대면(영업지원본부장) 임장호(부울경본부장) 김태종(미래금융본부장) 문현재(경북서부본부장) 권장오(대구본부장) 김상근(경북동부본부장) 본부장들은 상무로 승진했다. 다만, 이준걸(경영기획본부장) 부행장보는 유임됐다.

 

이에 따라 DGB대구은행은 부행장 8, 상무 7명 체제를 갖추게 됐다.

 

DGB금융지주 자회사인 DGB캐피탈 이재영 대표이사 DGB유페이 박동관 대표이사 DGB데이터시스템 이성룡 대표이사 DGB신용정보 정찬우 대표이사는 모두 유임됐다.

 

박 행장은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금융환경 속에서 조직 안정을 유지하며 새로운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