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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이슈체크]'극한 대립'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되나

보험업법 개정안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상정 전망
보험업계 "전폭 지지" VS 의료업계 "결사 저지"
겉으론 소비자 권익 내세우지만 속내는 '수익'

(조세금융신문=방영석 기자) 10년을 끌어온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를 놓고 보험업계와 의료업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국회가 정상화되면서 계류 중이던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이 조만간 소위원회 안건으로 회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양 업계가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선 것.

 

이번 회기에도 개정안 통과가 무산될 경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도 수년간 진척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양 업계의 압박 역시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갈등 다시 ‘도마 위’

12일 보험업계 및 금융당국에 따르면 석 달여 만에 국회가 정상화되면서 수면아래에 있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갈등이 수면위로 재부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6∼17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정무위에 계류 중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 2건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소비자는 실손보험금을 받기 위해선 의료기관을 통해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보험사에 따로 전달해야 했다. 보험금 지급까지 절차가 복잡했기에 소액 보험금의 경우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에서 작년 상반기 64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직전 1년간 통원치료비 실손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경우가 전체의 67.9%를 차지했다.

 

소비자 10명 중 7명이 실손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것으로, 미청구 이유는 보험금이 소액이라는 답변이 65.6%에 달했다. 1만원 수준의 보험금을 청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아까웠다는 결론이 나온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셈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고용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 같은 문제 인식아래 나온 대안이다.

 

국내 성인인구 3명 중 2명이 가입할 정도로 보편화 된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소비자가 손쉽게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취지다.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청구 서류의 발급 및 전달을 소비자가 아닌 의료기관이 직접 담당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제2의 건강보험으로 위상이 높아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이미 10년 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문제다.

 

표면적으로 소비자의 보험금 청구를 돕는 ‘착한 정책’이 현재까지 표류한 이유는 보험업계와 의료업계의 뚜렷한 입장차이 때문이었다. 그 문제는 소위원회 개최를 눈앞에 둔 현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법안 통과‧저지 양측 모두 '소비자' 내세워

과거엔 보험업계와 의료업계 모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해 ‘반대’ 입장이었다. 불필요한 업무가 가중되고 보험사와 의료기관의 재정 부담이 커질 것이란 이유였다.

 

그러나 최근 양 업계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보험업계가 ‘대승적 차원’에서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섰기 때문.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정책이 시행될 경우 소비자가 청구하지 않았던 소액 보험금 지급 부담이 커질 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청구 대행사를 선정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 역시 보험사가 부담할 의사를 보이며 보험업법 개정을 밀어 붙이고 있는 상태다.

 

보험사들은 이 같은 입장이 소비자의 권익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조하고 있다. 금전적인 부담이 커지더라도 소비자들이 보다 손쉽게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험업법 개정을 결사반대하고 있는 의료업계 또한 소비자 보호를 근거로 삼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인해 보험사가 소비자들의 민감한 의료 정보를 직접 수집‧분석할 경우 장기적으로 이를 악용해 병력에 따른 보험 가입 거절이나 보험금 축소‧미지급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주장이다.

 

양 업계는 소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개정안 통과와 저지를 위해 본격적인 세력 규합에 나섰다. 법안 통과가 국회에 넘어간 상황에서 국민의 여론을 어느 쪽이 사로잡느냐에 따라 제도 도입 유무가 결정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제로 손해보험협회는 11일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의 성명서를 배포하며 제도 도입에 따른 소비자 편익 증진 효과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의료업계 역시 대언론 활동을 강화했다. 대한의사협회는 7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실손보험사와 법적 관계가 없는 의료기관이 민감 질병 정보를 보험사에 전송해야 하는 당위성이 없다”며 “국민편익 증진이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앞세워 의료의 상업화를 꾀하는 보험사 위주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폐기하라”고 보험업계를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보험‧의료업계 갈등 핵심은 ‘이익’

소비자를 내세운 보험‧의료업계의 대립 내막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 도입 여부에 따라 요동치는 양 업권의 이익이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 권익이 갈등의 명분이라면 이에 따른 수익은 실리인 셈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보험사는 제도 도입에 따라 장기적으로 인건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으며 질병정보의 빅 데이터화가 가능하다.

 

현재 보험사는 소비자가 제출하는 청구 서류를 전산화하고 이를 심사하는데 막대한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청구 절차가 짧아지면 이를 위해 고용했던 다수의 인력과 손해사정사들의 인건비를 타 분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가구당 보험 가입률이 90%를 넘어서는 등 국내 보험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면서 보험사는 신규 계약 유치 못지않게 보험금 지급‧심사 업무가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보험사의 경영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고객에게 보험료를 받는지 보다도 이를 정확하게 심사해 ‘지급할 보험금만 지급하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수천만 가입자의 진료 정보가 자동으로 전달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빅 데이터에 목마른 보험사에게 매력적인 ‘당근’일 수밖에 없다. 보험사가 스스로 소비자의 미청구 보험금을 찾아주는 단기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청구 간소화에 목을 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료업계 입장에선 실손보험, 특히 고액 비급여 진료는 인상이 어려운 건강보험 수가를 대신하는 주요 수입원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엄격한 관리를 받는 급여항목과 비교해 민영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거리낌 없이 받았던 비급여 진료는 의료기관의 운영에 필요한 수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비급여 진료를 악용한 의료기관이 꾸준히 적발되고 이에 대한 보험업계의 반감이 높아졌음에도 보건복지부와 금융당국이 비급여 문제를 현재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다.

 

의료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통해 집계되는 비급여 진료가 표준화되고 보험금 지급이 건강보험 수준으로 엄격해지는 사태다. 적정 수가를 놓고 정부와 매년 날선 대립을 벌이고 있는 의료업계 입장에선 비급여 수입을 급감시킬 가능성이 큰 보험업법 개정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법제화 무산되면 '다음 정부서 논의' 전망

보험업계와 의료업계는 이번 국회회기에서 실손보험 간소화가 법제화되는지에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 업권의 주장처럼 제도 도입에 따른 소비자 편익 증진 효과는 명확하나 이에 따른 부작용과 형평성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는 계류된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을 검토한 이후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소비자 편익이 증진될 것으로 기대함과 동시에, 의료정보 유출 및 상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업계는 건강보험과 달리 계약자와 보험사의 사적 계약에 불과한 실손보험 업무를 의료기관이 부담할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제도 도입을 저지의 강력한 논리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상태다.

 

금융당국과 보건복지부는 물론 국회 스스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문제를 업권별 이해관계 조율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시한 상황에서, 개정안 통과 여부를 누구도 예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여론은 어느 때보다 뜨거우나 지난 10년과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다음 국회가 구성될 때까지 최소 4년간은 제도 도입을 논의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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