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 배가 고픈데 '사단칠정'이 진정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대구지방국세청에서 온 한 통의 전화, 수많은 워크숍을 지켜봤지만 이번 워크숍은 기획 의도부터 결이 달랐어요. 안동 도산서원에 이어 광주 월봉서원 워크숍. 시대를 초월한 공직자의 기본자세와 철학을 찾고자 하는 대구국세청관리자들의 진지함이 인상깊었습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소속 백옥연 문화재활용팀장이 대구국세청의 지난 10~11일 광주 월봉서원 워크숍 준비를 도와준 기억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대구국세청은 워크숍 1주일이 지난 17일 “지난해 12월 안동 도산서원에 이어 10∼11일 광주 월봉서원을 찾아 지방청 국장, 14개 세무서장 등 고위 관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청렴워크숍을 가졌다”며 이 같이 밝혔다.
광주 월봉서원은 조선 유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고봉 기대승 선생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 선생의 신뢰와 존중을 상징하는 곳.
영호남의 대표 유학자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선생의 다름을 넘어 ‘상호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배워 세정현장에서 갈등해소의 지혜를 얻기 위함이었다는 게 기획 의도였다.
경북 안동 출신 퇴계는 58세에 요즘으로 치면 서울대 총장 쯤에 해당하는 성균관 대사성 벼슬을 지냈는데, 그 시절 26살 어린 호남 출신 과거급제생인 32세의 고봉을 만나 13년간 학문과 철학을 교감했다. 첫 만남의 감회에서부터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처세의 어려움, 시에 대한 감상, 관직과 벼슬에 대한 생각, 질병과 운명, 귀향과 죽음 등 온갖 주제에 대해 서로의 심중을 털어놓는다. 태극의 개념, 상례와 제례, 기타 왕실의 전례 등을 논하기도 했다.
인간의 네 가지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사단, 四端)’이나 일곱가지 감정(칠정,七情)을 가리키는 ‘사단칠정(四端七情)’은 토론의 핵심내용이었다.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 등 인간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마음을 가리킨다. 각각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측은), 불의를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수오),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사양),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시비)이다. 7정은 기쁨(희, 喜)·화남(노, 怒)·슬픔(애, 哀)·두려움(구, 懼)·사랑(애, 愛)·미움(오, 惡)·욕심(욕, 欲)이다.
워크숍 첫째날인 10일에는 도산·월봉서원 김병일 원장이 ‘살며 생각하며, 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은?’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원장은 일상속에서 나눔과 베풂을 실천한 ‘어른 김장하 선생’을 소개했다. 경남 진주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경영하며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 여러 지역사회 운동을 지원한 김장하 선생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낮 시간에는 전남대 김경호 교수가 ‘다름을 수용하는 통합의 지혜’를 주제로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선생간 장거리 사귐과 학습토론에 대해 강의했다. 대구국세청 간부들은 이를 통해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경청, 傾聽), 마음을 비워 남의 선을 따르는(허심종선, 虛心從善) 즐거움, 공감과 곧음(정, 貞)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묘미를 배웠다.
16가지 성격 및 행동심리학 유형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MBTI 테스트를 통해 남녀노소, 신구장단의 ’다름’을 인정하는 리더십 수업도 받았다. 이를 통해 대구국세청을 채울 인재들을 그려보며 조직의 가치와 미래를 논하는 시간도 가졌다. 정 청장은 토론이 자정까지 이어지자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일단 마무리했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녹록치 않은 일정이 이어졌다. 이른 아침 원효사에서 출발, 서석대~입석대~장불재를 지나는 5시간 코스 산행이다. 등급을 매길 수 없는 고귀한 산(무등)에 내린 눈을 보며 산행하는 시간동안 간부들은 격의없이 소통하고 단합했다고 한다.
대구국세청 A국장은 “코로나19로 부재했던 관리자들간 소통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관리자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철우 청장은 “세대와 지역, 철학의 차이를 극복한 예 선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상호 존중하는 대구지방국세청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규동 운영지원과장은 본지 통화에서 “간부들은 녹록찮은 주제의 강연과 5시간의 설산 산행에 처음에 잔뜩 긴장했지만, 막상 마친 뒤 ‘보람찬 워크숍’이었다고 입을 모았다”면서 “함께 근무하면서 이런 체험을 하는 경우가 드문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도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강연 때 누가 졸았냐”고 묻는 기자에게 “저만 졸았어요”라는 '살신성인'적 답변으로 취재 의지를 꺾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