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에 대해 변호사 등 법조 분야에서는 크게 환영하는 반면 세무대리업계는 자칫 세무조정 시장이 잠식될 수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대법원은 지난 20일 대구의 한 법무법인이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세무조정반 지정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2012두 23808)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납세의무에 관한 기본적이고 본질적 사항은 법률로써 규정해야 하며 법률의 위임 없이 명령 또는 규칙 등의 행정입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외부세무조정제도는 납세의무자에게 스스로의 책임 하에 할 수 있는 납세신고에 앞서 외부세무조정을 거치도록 하는 추가적 의무를 지우는 것이므로 그에 관한 기본적 내용은 법률로 규정해야 하지만 현행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에서는 이를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대법원은 “해당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의 형식과 내용, 체계 및 취지에 비춰 볼 때 시행령에 정해질 내용은 세무조정계산서의 형식 및 그 실질적 내용 등에 관한 것이라고 예상될 뿐 세무조정계산서의 작성 주체를 제한하는 내용까지 규정될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따라서 이 사건의 시행령 및 시행규칙 조항은 모법 조항의 위임 없이 규정된 것이거나 모법 조항의 위임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뮤효”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특히 법인세법 제 60조와 소득세법 제70조에서 납세의무의 이행을 위한 신고 과정에서 신고서에 세무조정계산서를 첨부하도록 한 것과 관련해 ▲이를 첨부하지 않을 경우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사실 ▲세무조정계산서를 납세자 스스로 직접 작성하는 것을 금지하고 대신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도록 강제한 점 등을 지적하면서 “세무조정계산서를 외부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고, 납세의무자 스스로 세무조정계산서를 작성한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므로 재산권 및 계약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나 실현과도 관련된 중요한 사항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 외부세무조정제도에서 세무조정계산서 작성을 전담할 외부 전문가의 범위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세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지고 세무대리 업무를 할 수 있는 직역은 세무사 이외에도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이 있다”며 “외부자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 각 전문 직역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대립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결정 여하에 따라 국민이 부담하게 되는 비용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만큼 사전에 당사자들의 비판과 참여가능성이 보장된 공개적 토론과정을 토해 상충하는 이익간의 공정한 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큰 변화 없을 것" 긍정론과 "세무사 피해 클 것" 우려 혼재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외부세무조정제도처럼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국민의 기본 의무를 확장하려면 반드시 법률에 뚜렷한 근거가 있어야 함을 선언한 것”이라며 “특히 법률상 명확한 근거가 없이 국민의 권익을 제한하는 세무행정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앞으로 국회에서 외부세무조정제도의 도입 여부나 변호사와 세무ㄷ사 등 전문직역의 이해관계 충돌 문제 등이 심도있게 논의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번 판결로 인해 지난 2011년 이후 세무조정계산서 작성 업무를 할 수 없게 됐던 변호사와 법무법인들이 이를 다시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 2010년 개정된 구 법인세법 시행규칙 제50조의3 제1항으로 인해 2011년부터는 변호사와 법무법인들이 세무조정계산서 작성 업무를 전면 할 수 없게 했던 관련 규정들이 무효가 됐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세정가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상황이 달라지는 변호사들은 극히 일부분이며, 실제로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변호사들이 세무조정 업무를 얼마나 할지는 의문이라며 실제 세무사들에게 큰 영향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반면 늘어나는 변호사들의 숫자를 생각할 때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들이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더 나아가 변호사와 세무사, 공인회계사 등 전문자격사 단체들 간의 업무영역 다툼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한 세무사는 “현재 변호사들 중에서 세무 업무에 관심을 갖거나 실제로 세무 업무를 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폭증하는 변호사의 숫자와 변호사 업계의 극심한 불황 등을 감안할 때 이 업무에도 관심을 갖는 변호사들이 많아질 것으로 본다”며 “그 경우 세무사들의 피해는 불보듯 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무사회는 이 판결로 인한 우려를 일찌감치 차단하는 한편 차제에 이번 판결을 계기로 외부세무조정제도를 법률로 규정하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세무사회는 판결이 나온 20일 회원들에게 공문을 통해 “외부세무조정제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를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아니라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에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외부세무조정제도의 입법적 보완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기획재정부 세제실과 협의하면서 국세청에 대해서도 법률 개정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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