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수)

  • 맑음동두천 -11.4℃
  • 맑음강릉 -3.6℃
  • 맑음서울 -8.9℃
  • 맑음대전 -8.0℃
  • 맑음대구 -2.5℃
  • 구름조금울산 -1.5℃
  • 구름많음광주 -4.9℃
  • 맑음부산 -0.4℃
  • 흐림고창 -4.9℃
  • 구름많음제주 1.7℃
  • 맑음강화 -10.0℃
  • 맑음보은 -9.2℃
  • 맑음금산 -7.8℃
  • 흐림강진군 -3.1℃
  • 맑음경주시 -2.9℃
  • -거제 0.2℃
기상청 제공

“법리가 도도히 흐르는 세상 만들고파"

국세청 출신 ‘조세 전문 변호사’ 고성춘

interview.jpg

 

‘법리와 실무를 겸비한 조세 전문 변호사’
고성춘 변호사는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변호사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눔으로써 법리가 도도하게 흐르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국세청에서 퇴직하자마자 변호사 개 업 보다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조세법 사례연구 시리즈를 완성시키조자 혼신의 힘을 다했던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제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때만 해도 세법 과목이 없었습니다. 세법도 법이냐는 식으로 무시를 당한 분야이죠. 법무과장으로서 5년 근무하면서 실제 불복사건에 참조할만한 조세법 책이 없다 는 것에 놀랐습니다. 예규모음집이나 개괄서는 있어도 조세불복사건에 직접 참조할만한 제대로 된 법서가 없다는 게 늘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사명 감으로 했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인정받고 있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가 쓴 책만 해도 10권이 넘는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세금의 중요성을 알리는『세금으로 보는 세상 이야기』와 『고성춘 변호사 의 세금 이야기』와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 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쓴 『값진 실패, 소중한 발 견』, 『찾지 않아도 있는 것』등 뿐만 아니라 사례 연구 시리즈 중 『국세기본법 사례연구』와 『상속 세 및 증여세법 사례연구』 그리고 교과서인 『조 세법上』『조세법下』 조세법의 대미를 장식하는 『조세형사법』 등 깊이있는 조세 전문 서적을 출간하였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지금도 세계일보에 고정적으로 주 1회 칼럼을 통해 세금에 관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공직생활에서 법리의 중요성 실감
이처럼 책을 쓰는데 적잖은 시간을 보낸 이유는 뭘까. 고 변호사는 “어느 누가 봐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심 없는 투명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생각에서였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런 그의 생각은 남다른 이력에서 자연 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감사원 과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으로서 수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무엇보다 ‘법리’의 중요성을 실감 했다.

특히 고 변호사는 공직생활에서 수많은 사 례를 보며 사람에 따라 법리가 달라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한다.

과세관청의 경우 일단 과세한 후 알아서 불복하라는 식이라면 납세자 는 3~7년이라는 시간을 불복으로 마음고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억울하다고 호소한 것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감사에 걸리니 일하단 기각하고 보자는 식의 행정은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성춘 변호사가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 으로 근무할 당시 인용률은 30%가 넘었다.현재 이런 인용율을 보이는 관서가 없다. 그만큼 청장들이 모두 그를 신뢰했다.

"사실 그 때가 가장 편했다. 불복제도개선이나 금지금 사건, 물납제도 개선 등 많은 일을 했다”는 고 변호사는 “무엇보다 세정 현실에서 법리가 도도하게 흘러야 한다”는 믿음을 항상 갖 고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저서와 남다른 조세실무 경험 때문에 조세 전문 변호사로 많이 알려졌음에도 정작 세정행정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조세 전문 변호사들이 상당히 많지만 정작 실무를 경험한 이는 많지 않다. 더구나 법무과장으로서 5년 동안 수많은 직원들과 동고동락한 경험은 더 이상 나오기 힘들 것이다.

현재 그의 책은 조세전문가들 사이에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세 전문가는 의욕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특히 단순히 짜깁기 성격으로는 조세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훈련 과정 또한 쉽지 않습니다. 국세청 안에서 5년, 밖에서 5년 최소 10년 정도 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균형감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교육 관련 모기업 회장 등 처음과 다른 얼굴을 보이는 야비한 의뢰인들은 고 변호사를 종종 안 타깝게 했다. 물론 고 변호사도 이 모든 게 인생 공부라고 치부해 버리고 있지만 한때는 진지하게 폐업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상처를 입기도 했 다.

“사실 이런 저런 마음고생으로 집필만 하고 싶었는데, 세상이 다시 불복사건을 하도록 이끌 었습니다. 이후 서울대학교 발전기금 과세사건 과 F기업 회장에 대한 과세사건을 맡아 해결하 면서 다시금 힘을 냈죠.”

‘조세 전문 변호사하면 고성춘’ 인식 만들 것
고성춘 변호사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조세전 문법인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조세불복, 세무사건 수임도 다 법리입니다. 법리가 도도하게 흐르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길목이 아닌 말에 속아넘어가는 경 우가 많은데 길목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게 바로 법리입니다. 법리대로 하지 않을 때 그 결과와 책임을 납세자가 돈으로 물어야 하는게 바로 세 무 문제인 만큼 세무 사건의 경우 더더욱 법리가 중요합니다."

이처럼 법리를 중시하는 고성춘 변호사의 진가는 최근 인정받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무엇보 다 서울대 고문변호사로 위촉된 데 이어 세계일 보의 고문변호사로도 위촉받았다.

고성춘 변호사는 앞으로 ‘조세 전문 변호사하 면 고성춘’이라는 인식이 모든 사업자 및 납세자에게 인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를 위해 좀더 본격적인 활동을 하면 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생 각이다.

“뜻있는 이들이 모이면 동참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옆에서 도와줄 이들이 많아질 것 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길목을 지키는 이들이 많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조세 및 금융 전문 포럼을 만드 는 것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역시 사통오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무의 모든 것을 해결 된다는 믿음을 주고, 세무 관련 모든 것을 다 맡 기고 해결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포럼을 만들고 싶다는 고성춘 변호사. 그는 한발 더 나 가 “세계적으로 거주하는 750만 명의 교포를 생 각해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 구축에도 노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조세전문가를 꿈꾸며 공부하는 젊은층에게도 적극적인 멘토 역 할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꿈을 위해 그는 지난 3월 서초동에 좀더 넓은 사무실을 마련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