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서울 아파트값이 6‧27 가계부채 관리 강화 대책 이후 한 달간 안정세를 보이다가 8월 첫째 주 들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대출 규제가 효과를 내는 듯했지만, 시장 기대심리가 빠르게 반등하자 정부와 여당은 즉각 공급 카드로 맞섰다.
대통령실은 관계 부처에 “필요하다면 주택공급을 포함한 고강도 대책을 사전에 준비하라”고 주문했고, 국토교통부는 8월 말~9월 초 공급 패키지 발표를 공식화했다. 단기 규제 효과와 공급 속도전, 그리고 공시가격 논란까지 맞물리며 이재명 정부의 첫 부동산 시험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 같은 대응은 정부의 복합적 고민을 반영한다. 한편으로는 대출 억제와 가계부채 관리가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잠깐의 반등 신호만으로도 시장 심리가 다시 과열될 수 있다는 불안이 깔려 있다. 결국 정부는 ‘수요 억제에서 공급 가속으로’ 정책의 균형추를 옮기려는 기류를 드러내고 있다.
◇ 6‧27 대책 이후 나타난 변화
지난 6월 말 시행된 가계부채 관리 방안은 시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줬다.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목표를 계획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정책대출도 25% 감축했다. 수도권‧규제지역의 주택구입 목적 주담대는 최대 6억원까지만 허용하고 6개월 내 전입 의무를 부과했으며, 다주택자의 신규 주담대는 사실상 금지됐다.
여기에 더해 전세대출 보증비율도 90%에서 80%로 축소(7월 21일 시행)되면서 실수요자의 레버리지가 제한됐다. 이로 인해 강남과 마용성 같은 핵심 지역에서도 매매 상승률이 절반 가까이 줄며 거래 열기가 확연히 꺾였다.
하지만 안정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8월 들어 서울 아파트값은 다시 오름세로 전환했고,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의 상승이 시장 전체를 견인했다. 정부가 가격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 같은 반등이 단순한 일시적 변동이 아니라 ‘시장 기대심리의 재점화’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대출 규제의 효과는 길어야 6개월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거래량과 상승률은 잠시 둔화될 수 있지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긴 어렵다”며 “대출 규제만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은 시장의 적응력을 간과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하늘이 무너져도 구멍은 있다’는 속담처럼 시장은 규제에 적응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입주 의무를 강화하면 입주를 하고, 다주택 규제를 강화하면 1주택자로 전환하며, 대출을 막으면 전세를 끼고 갭투자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전세가격은 더 오르고, 전세대출까지 제한된다면 월세 가격까지 자극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공급대책의 윤곽 ―신규보다 속도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국토교통부는 공급대책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윤덕 장관은 국회 발언에서 “공급대책이 나와야 6‧27 대책이 완결된다”며 빠르면 8월, 늦어도 9월 초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여당 또한 “새로운 택지를 발굴하기보다 기존 3기 신도시의 집행 속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고양 창릉, 부천 대장, 인천 계양 등 3기 신도시는 이미 지구지정과 계획 수립이 진행 중이어서 당장 속도를 낼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다만 토지 보상, 주민 이주, 광역교통망 확충, 송전선로 이설 등 걸림돌은 여전하다. 이번 대책은 이러한 병목을 어떻게 풀어내고, 어느 정도의 구체적 일정표를 제시할지가 관건이다.
공급대책은 도심 내 공급 수단과도 맞물린다. 공공청사 복합개발, 유휴부지 주거 전환, 용적률 상향, 인허가 단축 같은 규제 합리화가 검토 대상이다. 분양가상한제 개편까지 포함된다면 공급 확대와 시장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 ‘세금으로 잡지 않겠다’ 공약, 다시 흔들리나
정책 기조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공시가격 인상 논란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 안팎에서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향 기조가 재가동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실제로 2025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3.65% 상승으로 확정‧공시됐다.
공시가격은 단순히 보유세와 재산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건강보험료, 복지수급 자격 등 사회 전반의 부담 기준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인상은 자가 보유자뿐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영향을 미쳐 서민층과 중산층의 체감 부담을 높인다. 이미 대출 규제와 공급 압박이 겹친 상황에서 세부담까지 강화된다면 실수요층은 이중‧삼중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책 당국은 “공시가격 현실화는 조세 정의의 문제”라고 설명하지만, 시장에서는 “대통령의 공약과 현실이 충돌한다”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세수 확대 효과와 서민 부담 심화라는 부작용이 동시에 존재하는 만큼, 공시가격 문제는 향후 정국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 시장에 미칠 파장
이번 공급대책은 지역‧계층별로 상반된 파장을 낳을 수 있다. 강남3구와 마용성 등 고가 주택 밀집 지역은 여전히 수요가 견조해 규제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수도권 외곽과 지방은 미분양 부담이 이어지며, 공급 확대 신호가 오히려 가격 하방 압력을 키울 수 있다.
청년층과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는 금융 규제와 공시가격 인상이 겹쳐 ‘내 집 마련’ 문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세대출 규제 강화는 월세 전환 가속화를 불러 임대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정책 효과와 동시에 새로운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공급 속도를 좌우할 금융‧PF 여건도 중요하다. 고금리와 PF 차환 문제는 여전히 시행 속도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정부가 공공금융 지원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발표’와 ‘실행’ 사이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대책을 통해 정책 무게중심을 수요 억제에서 공급 가속으로 옮기려 한다. 그러나 공급에는 필연적으로 시차가 존재하고, 공시가격 논란처럼 정책 신뢰를 흔드는 변수도 남아 있다.
결국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급 일정과 실수요자 부담 완화라는 실행력이다. 공약과 현실의 괴리를 줄이고 장기적 공급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이번 대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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