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6 (금)

  • 구름많음동두천 -9.7℃
  • 구름많음강릉 -3.3℃
  • 구름많음서울 -7.3℃
  • 구름많음대전 -6.0℃
  • 흐림대구 1.1℃
  • 흐림울산 2.1℃
  • 흐림광주 -2.6℃
  • 흐림부산 4.2℃
  • 흐림고창 -3.4℃
  • 흐림제주 2.5℃
  • 구름많음강화 -9.7℃
  • 구름많음보은 -5.9℃
  • 흐림금산 -4.5℃
  • 흐림강진군 -2.4℃
  • 흐림경주시 0.8℃
  • 흐림거제 4.4℃
기상청 제공

문화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영웅’인 듯 ‘영웅’아닌 나폴레옹을 향한…

symphony No.3 in E-flat Major, Op 55 "Eroica"

(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베토벤,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다네!” “그 녀석도 역시 속물이었군. 그 녀석도 역시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권리를 짓밟고 그 누구보다도 더 지독한 폭군이 되겠지!” 친구 페르디낭의 급보를 전해들은 베토벤은 비통한 심정에 빠졌다.


베토벤이 생존하던 시기의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일대 변혁기였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일어나 절대주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제가 실시된 시기였는데, 이후 나폴레옹 전쟁(1799~1814) 와중에 빈도 프랑스군의 점령으로 왕족과 귀족이 헝가리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베토벤은 빈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베르나 도트와 친해지며 나폴레옹에 대해  듣게 되고 그를 지지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가 신봉해 마지않던 나폴레옹은 일개 포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반란군을 평정하고 최고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오르 게 된 희대의 영웅이었다.


전제군주의 폐해에 깊이 공감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을 하며, 민중의 편에 서서 자유의 정신을 간직한 나폴레옹. 그를 너무나 신봉하던 베토벤이었기에 나폴레옹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작품을 통해 찬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1803에 작곡을 시작해 1804년 봄까지 1년의 기간을 거쳐 작곡을 마친 후 프랑스 대사관을 통해 파리에 보내려고 할 무렵,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빈 거리에 퍼지자 대곡을 그대로 찢어 내팽개치고 말았다.


베토벤은 프랑스 초대 집정관이었던 나폴레옹을 경외하며 이 ‘보나파르트(Bonaparte)’라는 이름 밑에 ‘루드비히 반 베토벤’으로 서명한 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었지만 그도 권력욕에 가득찬 한 정치꾼임을 보고 혼신을 다해 작곡한 이 곡을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던 것이다. (후에 친구 ‘페르디낭’ 에 의해 유일한 복사본을 건졌기에 지금까지도 이런 명곡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베토벤은 장군의 위치에서 인권과 자유주의를 가져다 줄 ‘자유의 구세주’ 나폴레옹을 기대하던 것이지 권력과 결부시켜 한자리 차지할 야욕꾼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를 써놓은 것이 나폴레옹의 황제즉위 2년 전인 1802년임을 볼 때, 베토벤은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을 보며 예술혼을 불태 우고 자살의 유혹을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베토벤의 ‘살아야겠다’는 불굴의 의지력 형성에 나폴레옹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때, 적어도 베토벤 개인에게만큼은 ‘영웅’임이 확실하다.


유달리 병약했던 그는 청각상실이라는 악조건을 견디면서도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고 국가를 일어서게 하는 나폴레옹에게서 창작의 에너지를 받았던 것 같다. 실제로, 유서의 내용 을 보면 “예술만이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 있고, 내 안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때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다” 는 내용도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내적인 동기와 베토벤의 독창적이며 자유로웠던 음악성이 결부되어 ‘영웅’이라는 최고의 작품이 탄생되었다.


이 곡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영웅’이란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제2악장은 ‘장송 행진곡’으로 지어져 있다. 베토벤은 이 곡이 작곡된 이후 그는 나폴레옹에 대해 잊고 사는 듯 했으나 17년 후 그가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되고 쓸쓸 히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나는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미리 결말에 적절한 음악을 써 두었다”라고 했다.
 
시국이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지금, 이 상황을 말끔하 게 정리해 줄 우리시대의 ‘영웅’이라 불릴만한 지도자가 나올까? 결국 나폴레옹에게 헌정되지 못하고 ‘한 사람의 영웅에 대한 추억을 기리기 위하여’란 부제로 초연에 성공한 ‘영웅’ 교향 곡을 감상하며,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대한민국의 영웅을 기대해 본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공정의 사닥다리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
[인터뷰] 뮤지컬 '4번출구' 제작 김소정 대표...청소년 ‘삶의 선택지’ 제시
(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무대 위에서 가장 조용한 숨으로 깊은 소리를 만드는 오보에처럼, 이제는 소외된 아이들의 숨소리를 담아내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보이스트에서 공연 제작자로 변신한 주식회사 스토리움의 김소정 대표가 뮤지컬 〈4번 출구〉를 통해 청소년 생명존중 메시지를 전한다. 2026년 청소년 생명존중 문화 확산 사업 작품으로 선정된 이번 뮤지컬은 김 대표가 연주자의 길을 잠시 멈추고 제작자로서 내딛는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다. 공연 제작자 김소정 스토리움 대표 인터뷰 내용을 통해 '4번출구'에 대해 들어봤다. ■ 완벽을 추구하던 연주자, ‘사람의 삶’에 질문을 던지다 김소정 대표는 오랫동안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해온 오보이스트다. 예민한 악기인 오보에를 다루며 늘 완벽한 소리를 향해 자신을 조율해왔던 그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숨을 쏟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면서 “완벽한 소리를 위해 버텨온 시간이 누군가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개인의 완성을 넘어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무대를 꿈꾸게 됐다”고 제작사 ‘스토리움’의 설립 배경을 밝혔다. ■ 〈4(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