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 우리는 하루가 24시간으로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만 24시간일 뿐 시간에 대한 가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시간은 절대 공평하지 않습니다.
특히 인생에서 하나의 사건을 만나게 되면 시간의 밀도는 달라집니다.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전환되는 것이죠. 즉, 사도 바울이 예수를 만난 것처럼 생에 그러한 사건이 펼쳐지면 시간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목에서 ‘사랑’의 보편성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주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일자(신)는 개인적 율법이 아니라 사건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앎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의 도래였습니다.
사건을 통하여 인생의 주체로 부활하는 것, 그런 다음 인생은 소명을 향해 가는 삶이 됩니다.
도스토에프스키 역시 사형장으로 가는 5분을 어떻게 쓸까 고민합니다. 혁명서클에 가담해 총살형을 선고받았던 그에게 5분은 대단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분은 이별에 쓰고 나머지 3분은 인간이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총살 직전 사형중지로 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는 평생 5분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하루를 마지막 순간처럼 소중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이며 카이로스는 의미 있는 시간을 뜻합니다.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것은 현재에서 영원을 만나는 가치 있는 순간을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카이로스를 갈망하지만 대부분 크로노스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이로스는 소명이나 꿈을 발견한 자기혁명 후부터 가동되기 때문이죠.
인생에서 자기혁명의 시점은 각자 다릅니다. 이르면 이를수록 주체의 도래, 즉 소명을 발견한 삶이 되겠지요.
아직 인생에서 사건을 못 만나셨나요? 아니면 일찍 사건을 만나 소명의 길을 걷고 있나요? 저는 종교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 카이로스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여름, 반도의 땅에 살아가는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기혁명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쉼도 충전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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