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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들췄더니 우박처럼 쏟아진 투기 의혹…어떻게 발본색원?

문 대통령 "이해충돌방지법이면 투기 자체 봉쇄 가능"
전문가들 "공적정보 이용 탐욕 상상도 할 수 없게 해야"

 

참여연대·민변의 LH 직원 투기 의혹 폭로 이후 전국에서 비슷한 사례가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다.

 

공기업, 국회의원 가족, 자치단체 의회 의원, 지방 공무원들이 개발정보를 미리 빼내 투기를 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신도시 등 개발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국민 분노 지수는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공기업 직원이나 공직자가 관련 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신뢰를 바닥으로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정부 조사와 수사의 대규모화, 장기화는 불가피해졌다. 이번 기회에 국가의 모든 조사, 수사 역량을 동원해 공직자의 업무 정보를 이용한 투기를 근원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우박처럼 쏟아지는 공직자 땅 투기 의혹

 

광명시는 10일 자체 조사를 통해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땅을 매입한 소속 공무원 6명을 확인하고, 투기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공무원은 지난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논, 밭, 임야 등을 사들였다. 시흥시도 신도시 예정지 내 토지를 취득한 공무원 8명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공무원과 LH 임직원 12명은 투기 의혹 전수조사를 위한 개인정보 이용 동의에 불응했다. 이들이 떳떳하다면 향후 강제 수사 가능성이 큰데도 정보 이용에 동의하지 않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LH 직원 3∼4명이 신도시 땅 보유를 자진 신고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경기 하남에서는 시의원이 지난 2017년 어머니와 함께 평당 40만원에 매입한 임야가 3기 신도시인 교산지구로 편입되며 매입가의 2배가량을 보상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LH뿐 아니라 한국도로공사에서도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공사 직원의 부동산 투기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의원(국민의힘)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당시 한국도로공사 직원이었던 A씨는 비공개 정보인 새만금∼전주 간 고속도로 설계 도면을 활용해 토지 1천800여㎡를 매입했다가 2018년 파면됐다. 하지만 A씨는 현재까지도 해당 토지를 부인과 지인의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의 어머니는 지난 2019년 3기 신도시 예정지인 광명 가학동 인근 땅을 매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땅은 LH가 개발하는 신도시에 포함되진 않았으나 3기 신도시 예정지 인근이어서 일각에서는 개발정보를 알고 투자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힘 세종시당과 세종지역 4개 시민단체는 9일 감사원에 시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시의회 의원들이 부인또는 어머니 명의로 조치원읍 토지를 매입한 뒤 도로포장 예산을 편성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광명·시흥 외 인천 계양,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다른 5개 3기 신도시 예정지에서는 정부의 신도시 발표 직전 토지 거래량이 2∼4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도시 정보가 사전에 새어나가지 않고는 설명이 안 된다.

 

광명시는 부동산 취득세 과세 자료를 이용해 공무원들의 토지거래 현황을 조사했는데 다른 지자체들도 이런 방식으로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 및 가족을 조사할 경우 투기 의혹이 쏟아질 것으로 보여 대대적인 조사와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지자체나 공기업 개발 담당 공직자들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정보를 미리 빼내 땅 투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만연해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언젠가는 터질 일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 몇 년이 걸리더라도 완전히 뿌리 뽑아야

 

정부와 여당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근본 대책 중 하나가 이해충돌 방지를 제도화하는 것일 수 있다"며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입법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투기 자체를 봉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 정무위에 계류된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안은 직무관련자에 대한 사적 이해관계 신고와 회피, 이해관계자 기피 의무를 부여하고 고위공직자는 임용 전 3년간의 민간부문 업무 활동 내역 제출 및 공개, 취득이익 몰수와 추징, 직무상 비밀을 이용한 재산상 이익 취득 금지 규정 등을 담고 있는 강력한 공직자의 사적 이해 금지 법안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이해충돌방지법, 공직자윤리법, 국회법 등을 포괄하는 정밀한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은 내부자 정보 누설 등을 1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3∼5배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도 형량을 10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같은 법안을 냈다.

 

하지만 우선은 공기업과 중앙 부처, 정치인, 지방의회 의원, 지방 공직자들 사이에 만연한 투기족을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설픈 조사와 수사로 이번 기회에 이들을 발본색원하지 못하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의 투기는 땅값과 보상가를 올려 국민 세금 부담을 가중하고 결국은 무주택자 등 일반 국민에게 모든 비용이 전가된다. 공직자의 투기를 '망국적 부패'라고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공직 사회에 만연한 투기 한탕주의를 도려내지 않고는 국민들이 원하는 깨끗하고 정의로우며 공정한 나라는 요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이번 사건은 공정과 정의라는 시대의 가치를 훼손한 것으로 일회성 수사와 처벌에 그쳐선 안 되며 발본색원해야 한다"면서 "공직자의 이해상충 문제를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는 등 제도 전반을 제대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공직에 대한 감시체계는 고위공직자 위주여서 중하위 공직자나 공기업은 사실상 감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다"면서 "말로만 깨끗하라고 다그칠 게 아니라 법적, 제도적 정비와 함께 강한 윤리의식을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안진걸 소장은 "역대 국회에서 이해충돌이나 공적 정보를 악용한 사적 이익 취득을 전면 금지하는 쪽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걸 소홀히 하는 바람에 이번과 같은 사태가 터졌다"면서 "강력한 이해충돌방지법을 만들고, 공적 정보를 이용한 불법 행위는 사전·사후에 모두 걸려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투기할 경우 이익보다 손해가 몇십 배 혹은 몇백 배 크게 해 패가망신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이번 기회에 공직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 공적 정보를 악용한 사적 탐욕은 아예 머릿속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투명하고 맑은 공직문화를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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