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태가 발생한 이후 전·현 공무원이나 선출직 공직자의 투기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지만, 당사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억울하다는 것이다.
"투기가 아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 "개 키울 곳이 마땅치 않아 땅을 샀을 뿐이다", "오히려 투자금을 손해 봤는데 투기라 할 수 있겠느냐" 등 자기방어 논리도 구구절절하다.
투기의 사전적 정의는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는 행위" 또는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기 위한 매매거래"이지만 사실 투자와 투기를 두부 자르듯 경계 짓기란 쉽지 않다. 이익을 바라는 모든 투자는 투기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과 일반 국민의 눈높이인 상식은 있다. 정상적 판단력이 있다면 어떤 거래가 투기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한다.'
◇ 투기 의혹 공직자들의 '억울한(?)' 사연들
세종시 건설을 맡았던 전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 청장 A씨는 재임 전후인 지난 2017년 4월(2천455㎡)과 11월(622㎡) 아내와 본인 명의 등으로 세종시 땅을 사들였는데 이 땅 인근이 2018년 8월 스마트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사전 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아니었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A씨는 "마당에서 기르던 개를 키울 부지를 찾던 중 부동산업자의 권유를 받고 토지를 샀다"고 해명했다. 또 "신도시에 노른자위 땅이 더 많은데 일부러 외곽 지역에 땅을 샀겠느냐"며 "산업단지 선정 업무는 행복도시건설청 소관 업무가 아니어서 해당 사업 구역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고도 했다.
포천시청에서 도시철도 연장사업 업무를 담당했던 간부 공무원 B씨는 40억원을 대출받아 작년 9월 부인과 공동명의로 도시철도 연장 노선의 역사 예정지 인근 2천600여㎡ 땅과 1층짜리 조립식 건물을 사들였다. 이 도시철도 연장사업은 2016년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돼 추진됐으며 현재 주민공청회를 거쳐 기본계획에 대한 국토교통부 승인을 앞두고 있다.
B씨는 "처음에는 공무원 신분이어서 땅을 사지 않으려 했으나 토지소유자의 사정이 있어 부득이 매입하게 됐다"며 "혹시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변호사 자문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는 "공직을 일찍 정리하고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 목적으로 샀을 뿐"이라며 "도시철도 연장사업은 이미 발표된 내용으로 미공개 정보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답답하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공직자가 아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인 2009년 7월 부인이 투기의 전형적 수법인 이른바 지분 쪼개기로 거래된 용인의 임야 393㎡를 5천900만원에 매입한 것과 관련 "개발이익을 노린 투자가 아니다. 아내가 제자의 간곡한 부탁으로 매입했다"고 해 구설에 올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금까지 현역 의원 7명이 본인이나 가족의 투기 의혹에 휩싸였는데 이들의 해명도 다양했다. 임종성 의원은 자신이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이었던 2018년 11월 누나와 사촌, 자신의 보좌관 출신인 이모 경기도의원의 부인 등이 공동으로 경기도 광주 고산2택지지구 인근의 땅에 투기했다는 의혹과 관련 "누나와 사이가 좋지 않아 연락도 잘 안 한다. 땅을 샀다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어머니가 광명·시흥 신도시 인근의 땅 66㎡를 지난 2019년 8월에 지분 쪼개기 형태로 사들여 논란을 빚은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최근 LH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어머니께서 인근에 임야를 소유하고 계신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 "국민의 눈높이 벗어난 공직자 투자는 모두 투기"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일반의 상식을 벗어난 투자는 대부분 투기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옛말에 '외밭에서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 했는데 어쩌면 이게 투기와 투자를 가르는 가장 믿을만한 정의일지도 모른다.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땅 투자에서 지분 쪼개기나 농지를 취득한 후 농업경영계획서대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 투기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내로남불'"이라면서 "공직자의 경우 현직이든 전직이든 일반 국민 입장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투자라면 위법 여부와 관계없이 투기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김완배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일반적 투자라면 적정 이윤 정도를 생각하고 하는 것이다"라면서 "개발될 것이라는 사전 정보를 갖고 투자했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투기다. 여기서 얻은 이익은 모두 환수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에 대한 투자와 투기는 사용 목적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면서 "팔 생각 없이 땅을 애초 사용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것은 투자이지만 차익을 노리고 언제나 팔 생각을 하고 있다면 투기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식적 선에서 투기라 하더라도 일반인과 공직자는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민간인이 여기저기서 정보를 구해 집과 땅을 사들이는 것은 범죄라기보다 비 범죄적 투기라고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공직자가 내부 정보를 이용하거나 지분 쪼개기 등의 수법으로 투자를 하는 것은 명백히 범죄행위로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공직자들이 개발 예정된 민감한 지역의 땅을 매입하고도 투기가 아니라고 항변하며 억울해하는 심리적 기제는 무엇일까. 물론 투기를 인정하면 공직자 또는 정치인으로서의 도덕성이 무너지기에 일단은 오리발을 내미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인지부조화'로 풀어냈다. 인지부조화는 신념과 실제 사이에 불일치가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고 불편해하는 것으로 자기합리화를 통해 이 불일치를 제거하려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심리학 용어다.
곽 교수는 "자기가 한 투자가 투기로 인식되면 죄책감이나 불편함에 시달리게 된다"면서 "이 때문에 처음엔 '내가 한 투자가 잘못된 것인가?' 하다가 점점 '아니냐 투기가 아니야. 남들도 다 하는데 뭘'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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