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영끌' '빚투' 열풍을 타고 치솟아 오르던 국내 자산시장이 최근 들어 확연한 조정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직 내리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판단하긴 이르지만, 증시와 부동산 모두 상승 탄력을 잃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경기회복과 인플레이션 기대로 미국 국채 금리가 뛰자 글로벌 시장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더 나아가 자본유출을 우려한 일부 신흥국이 기준금리 인상에까지 나서면서 유동성 파티에 대한 기대감도 사그라지고 있다
◇ 상승탄력 잃은 부동산·증시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의하면 이달 셋째 주(15일 기준) 전국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0.23% 올라 전주(0.24%)보다 오름폭이 약간 줄었다. 시장 불안의 진앙인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0.06% 상승해 전주(0.07%)보다 매수세가 떨어졌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체감 온도는 이보다 더 낮게 느껴진다.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실거래 정보에 따르면 2·4 공급대책 발표 이후 서울에서는 직전 거래 대비 가격 하락세가 완연하다.
직전 거래보다 가격이 하락한 거래 건수는 1월 18%(전체 2천441건 중 493건)에 머물렀으나 2월 24.9%(1천669건 중 415건), 3월(1∼17일 기준) 38.8%(281건 중 109건)로 증가 추세다.
2·4 대책에 따른 공급 확대 기대감에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세금 부담 가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매수 심리를 억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패닝바잉 진정과 전세난 완화, 주택공급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매수 탄력은 약화했으나 하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거나 급랭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급등세가 진정된 숨 고르기 장세로 보인다"고 했다.
증시 역시 맥빠진 분위기다. 3,200선을 넘었던 연초의 폭발적 모멘텀은 사라지고 3,000선에서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동학개미들이 시장을 떠받치고 있으나 기관과 외국인은 매도를 지속하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5거래일 중 10일간 매도 우위를 보이며 국내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이 강(强)달러를 의식해 국내 증시에서 이탈하고 있고, 연기금도 3,000선 위에서 매도를 지속하고 있으나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들어오면서 지수의 하방경직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폭증한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강력한 대책을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어서 부동산 시장이나 증시에서 작년과 같은 '영끌' '빚투'의 유동성 홍수가 재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미국발 금리 불안…유동성 파티에 찬물
슬금슬금 오르는 글로벌 시장 금리도 국내 자산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조율사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의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2023년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강하게 재확인했으나 시장은 믿지 않고 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FOMC 다음날인 18일 약 14개월 만에 1.7%를 뚫고 올라갔다가 22일엔 1.6%대 후반으로 내려왔지만, 연준이 경기회복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용인할 것으로 보여 시장금리 불안은 이어질 전망이다.
문제는 미국 이외의 국가다. 미국은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높일 정도로 경기가 살아난다는 확신 때문에 금리가 오르고 있지만 다른 경제권은 중국을 제외하면 경기회복 속도가 더딘 와중에 달러화 강세로 금리가 오르고 통화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달러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자 최근 러시아, 브라질, 터키 등 신흥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올렸다.
김학균 리서치센터장은 "달러 가치가 강해질 때 미국 밖의 나라들이 평온했던 적은 없다"면서 "경기회복 속도의 격차로 강달러가 지속하면 신흥국 등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취약한 국가부터 불똥을 맞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경기회복이 빨라지면서 금리가 오른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별문제가 없지만, 지금은 국내 경기회복은 느린데 미국의 경기회복으로 시장 금리가 올라가는 것이어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자체가 당장 우려된다거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움직여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미 국채금리 상승세가 진정되지 않을 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당장 국내에서 인플레이션 이슈가 있다고는 보지 않지만, 금리 상승에 대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정부 입장에서는 우리 경제의 부담인 가계부채 관리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개인 입장에서는 자산 투자가 원리금 상환 부담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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