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기현 기자) 4대 시중은행 관계자들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금융당국을 직접 방문한 횟수가 600회를 훌쩍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 측의 호출에 따른 방문이 상당수로 추정되는데, 문턱이 닳도록 당국을 드나든 은행원들의 흔적 자체가 '관치 금융'의 한 단면이라는 지적이다.
30일 연합뉴스가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한 출입 기록에 따르면,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관계자들은 올해 1~8월 총 642회에 걸쳐 금융당국을 찾았다.
기관별로는 금융감독원 방문 횟수가 554회로, 금융위원회의 88회보다 6배 정도 많았다.
먼저 월별 금감원 방문 횟수를 보면, 주요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3년 3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한 지난 7월 92회로, 전월(56회)보다 급증했다.
이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배상 협의 초입이었던 지난 5월(85회),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팔랐던 8월(74회), 상생 금융 압박이 거셌던 1월(73회) 등의 순이었다.
은행별 금감원 방문 횟수는 KB국민은행이 221회로 월등히 많았고, 우리은행이 151회, 하나은행이 94회, 신한은행이 88회 등이었다.
이 중 KB국민은행은 H지수 ELS 손실 배상 협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5월이 49회로, 전월(28회)보다 크게 늘어 연중 최다를 기록했다.
우리은행도 1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 7월 35회로, 전월(9회)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어 눈길을 끌었다.
4대 은행 관계자들의 월별 금융위 방문의 경우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있었던 지난 1월 26회로 가장 많았다. 그 무렵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물밑 준비도 한창이었다.
이어 주요 시중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신디케이트론 출범을 전후한 6월이 25회, 5월이 9회, 4월과 8월이 각 8회 등이었다.
은행을 주력 계열사로 둔 금융지주 관계자들의 당국 출입도 드물지 않았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 관계자들은 1~8월 총 108회에 걸쳐 당국을 방문했다. 기관별로 금감원이 82회, 금융위가 26회였다.
금감원 방문 횟수는 1월 24회, 7월 15회, 6월 9회 순으로 많았고, 금융위는 6월 10회, 5월 8회, 1월과 3월 각 4회 등이었다.
은행 관계자들의 빈번한 금융당국 방문은 정책 협의를 위한 노력으로 해석할 여지도 없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거나 행사를 기획할 때 당국에서 현장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묻는다"며 "일방적으로 결정해 하달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다만, 당국이 막강한 규제·감독 권한을 쥐고 사실상 은행 경영에도 깊숙이 개입하는 만큼 호출이나 협의가 일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여러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부서장급 은행원은 "금융위와 금감원은 우리에게 '슈퍼 갑'"이라며 "은행 임원들이 당국에 수시로 불려 가 혼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가계대출 관리 강화로 여·수신 금리조차 은행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지 않나"라며 "관치 금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5일 방송 인터뷰에서 은행권 가계대출과 관련,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당국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라인'을 형성하는 데 공을 들인다. 4대 은행 상임 감사위원이 예외 없이 전직 금감원 간부들로 선임된 것이 단적인 예다.
KB국민은행 김영기·신한은행 유찬우·하나은행 민병진·우리은행 양현근 상임 감사위원 모두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으로, 대부분 현직에서 은행 감독 업무를 경험했다.
다른 관계자는 "시급한 현안이 터지면 전직 금감원 간부가 소방수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은행 입장에서 전관예우를 바라고 보험을 들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주요 시중은행은 금융당국뿐 아니라 국회 접촉도 매우 잦다.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앞둔 요즘은 여의도를 찾아 국회 정무위원회 보좌진이나 전문위원 등과 만나는 은행 관계자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거액의 금융사고 등 내부통제 이슈로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등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큰 회사들이 초비상 상황이라고 한다.
연합뉴스는 국회사무처에도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 관계자들의 올해 국회 의원회관 출입 기록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금융위·금감원과 달리 비공개 결정을 회신받았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과거 출입 기록을 공개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원칙적으로 비공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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