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신원기 참여연대 간사) 요즘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는 통계다. 사실 조세나 재정분야는 거의 매일 들여다보기 때문에 방향성이 다소 다른 문학이나 미술 등에 관심을 가질 법도 하지만 통계라니. 어찌보면 숫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양새라 서글프긴 하지만 실생활과 연결시켜 생각을 해보면 나름 색다른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과 내가 한 판의 도박을 벌이는 상황을 한 번 떠올려보자. 웬 도박이냐고 불편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상상하고 떠올리는 건 죄가 아니며, 도박에서 필자만한 하수를 찾기도 힘드니 안심해도 괜찮다. 도박의 룰은 아래와 같다. 보시다시피 매우 간단하다.
1. 동전을 던져서 앞면(1000원 획득/ 게임지속), 뒷면이 나오면 게임종료.
2. 다시 던져 앞면이면(2000원 획득/ 게임지속), 뒷면이 나오면 게임종료.
3. 또 던져 앞면이 나오면 (4000원 획득/ 게임지속), 뒷면이 나오면 게임종료.
4. 따라서 앞면이 N번 나오면 1000ⁿ⁻¹의 상금을 얻을 수 있다.
참가비, 판돈을 설정해야 하니까. 얼마를 책정해야 할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게임의 기댓값을 계산해봐야 한다. 지면상 수식을 기재하지 않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게임의 기댓값은 무한대다. 이론적으로 기댓값이 무한대라는 의미는 당신이 참가비로 얼마를 내든지 참가만 한다면 이익이라는 의미다. 내가 판 돈으로 단돈 만 원을 책정한다면 당신을 포함한 참가자들이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들어야 정상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5천 원으로 낮춰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지하경제에 대한 기댓값과 판단의 오류
앞서 제시한 가정은 니콜라이 베르누이가 제기했던 페테르부르크 역설의 초기 문제를 살짝 바꾼 것으로 논리적으로 정확한 수학적 계산에 의해 나오는 기댓값의 결과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다. 안타깝게도 참가자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던 이유는 산출된 기댓값이 게임에 참가할 때 지불해야 할 ‘수학적으로만 공정한’ 비용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 게임에서 참가자가 참가비 보다 더 많은 돈을 딸 확률은 1/512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수학적으로 산출된 기댓값과 현실적인 기댓값의 격차가 발생하면 대부분 후자가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하지만 간혹 산출된 기댓값이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할 때 판단의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박근혜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처럼 말이다.
지하경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통상 세무행정력의 한계로 세원 포착이 어렵거나 조세 회피 및 탈세 등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불법거래를 총칭하여 지하경제라고 표현한다. 최근 한 민간연구원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지하경제가 GDP의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연구기관마다 기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 15%~최대 25% 가량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대략 우리 경제에서 1/5 가량의 경제활동이 지하에 숨어 있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여기에 재원마련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도출된 결과를 기댓값으로 변모시킨다. 기댓값의 변모 여부는 박근혜정부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3대 세수확대 방안 중 하나로 정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댓값의 크기는 비교적 상세히 제시한 연도별 목표치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보고서가 공통적으로 ‘측정’이 아닌 ‘추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설정한 기댓값이 현실적인가는 생각해볼 문제다.
지하경제의 의미는 명확해 보이지만 실제 지하경제를 어떻게 추정하느냐의 관점에 따라 정의내리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지하경제 정의 자체도 불명확한데다가 통계로도 나타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다양한 방법으로 규모를 추정할 수는 있으나 추정된 결과에 대한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도 쉽게 간과되고는 한다. 입증되지 않는 수치나 내용을 신뢰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정책의 근거로 삼는 건 더더욱 위험하다.
부드럽고 우아하길 바랬건만
기댓값이 과도하다고 해서 지하경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사안의 특성상 각 경제주체들의 활동에 대한 투명성 강화를 통해 그 실제적 규모를 파악함과 동시에 축소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하는 것이 옳았었다는 의미다. 어디서 생성되었으며 어디로 흘러가서 어느 정도 만들어졌는지 조차 불분명한 실체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함께 정책을 남발하는 것을 경계해야 했어야하지만, 이미 세수확보가 목적이었던 만큼 FIU 정보 활용과 세무조사 강화와 같은 직접적이고 다소 거친 방법이 동원되었다.
FIU 정보 활용문제는 물반 고기반이라 외치고 배는 띄웠지만 기대만큼 고기가 많지는 않은 모양새다. FIU정보는 국민 모두의 금융거래 현황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돋보기’에 가깝다. 이전에도 현금 2000만원 이상 거래와 탈세 등이 의심되는 1000만원 이상 거래가 FIU에 보고되었고, 이 중 FIU에서 탈세 가능성이 높은 금융거래내역을 다시 선별하여 국세청에 통보했었다. 법 개정으로 세무조사와 체납자에 대한 징수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금융거래 정보가 늘어나면 연간 4조 5000억원 추가세수증가가 가능하다 큰소리쳤지만, 해당 데이터를 활용하여 지난해 기준으로 추징한 세수는 총 2조 4228억원으로 예상한 수치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개인정보 관리부실 이슈 역시 향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객관성과 투명성이 결여된 세무조사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게 일었다. 잠재적 납세비용까지 고려했을 때, 세무조사는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추가로 거둘 수 있는 세수가 많지 않아 가장 비싼 납세방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것은 강력한 탈세처벌에 놀란 납세자가 자진 납세하도록 유도하는 ‘알카포네 효과’를 내심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주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여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납세자에게 한 번 각인되면 그 효과가 자연히 반감되는 만큼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아이템이다. 실제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경제활성화 촉진을 이유로 세무조사 유예방침을 밝혔는데 ‘약발’의 측면에서 오락가락하는 잣대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한편 지하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5만원권의 환수율을 보면, 2012년 61.8%에서 2013년 48.7%, 지난해에는 25.5%까지 급락했다. 환수금액도 2012년 11조원에서 2013년 7조 5천억원, 2014년 3조 9천억원으로 1/3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는 경제 주체들이 현금거래를 선호하거나 현금을 쌓아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지하경제가 곧 현금경제라고도 불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쉬이 넘어갈 대목이 아니다. 5만원권 품귀현상과 함께 급격히 커지는 비과세 자산시장 규모, 급증하는 개인금고 판매량 등도 지하경제가 커지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키우는 징후다.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부작용이 한 발 빠른 모양이다.
숫자는 같지만 의미는 다른 1%
지하경제야 원래 불투명하다지만, 해결책까지 불투명하면 곤란하다. 전반적인 불확실성하에서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선택에 수반되는 고민의 크기부터 줄여나가는 게 중요하다. 통계 같지만 심리학에 가까운 행동·신경경제학 사례 하나만 더 보자.
GAME 1 (알파벳 옆에 기재된 숫자는 선택에 소요된 시간)
•A(19초) : 100만원을 딸 확률 100%
•B(31초) : 100만원을 딸 확률 89% / 500만원을 딸 확률 10% / 잃을 확률 1%
GAME 2 (알파벳 옆에 기재된 숫자는 선택에 소요된 시간)
•C(34초) : 100만원을 딸 확률 11% / 잃을 확률 89%
•D(49초) : 500만원을 딸 확률 10% / 잃을 확률 90%
자세히 보면 게임 A와 B에서 100만원을 딸 확률인 89%를 각각 빼낸 것이 게임 C와 D다. 이론상으로 A를 선택한 참가자는 C를 선택해야 일관성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 1에서 A를 선택하는 이유는 1%라도 돈을 잃을 확률이 싫어 선택하는 반면, 게임 2에서는 같은 1%지만 500만원이라는 돈이 커서 D를 선택한다. 결정에 걸린 시간 역시 무척 흥미롭다. 수학적으로는 같은 89%를 제거한 것에 불과했지만, 게임 2로 가면서 100%라는 조건이 사라진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에 따르는 확실성은 선택에 따르는 고민의 양을 줄여주고 동시에 결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재원마련이라는 절실함과 맞물린 기댓값의 오류, 그리고 양적목표에 따른 거칠고 서투른 방법론으로 요약되는 박근혜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에, ‘같지만 서로 다른’ 1%의 의미는 중요한 시사점을 안긴다.
먼저 잃지 않을 1%를 위해서는 산술적 기댓값이 안겨주는 치명적 매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체크기로만 공개하는 추가세수실적을 개별항목별로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기존에 해오던 기획세무조사에 의한 세수실적인지, 정말 체계적으로 실시한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에 의한 효과인지 구별한다면 기댓값의 크기를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경제주체들의 활동에 대한 파악력을 높여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상승의 개념으로 지하경제에 대한 실질기댓값을 설정하는 것이 잃지 않을 1%의 확률을 가져오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판단된다.
현실적 범주에서 추구해야 할 또 다른 1%는 지하경제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이자 동시에 새로운 재원에 대한 조심스런 접근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임대소득이나 종교인과 종교법인을 포함한 비영리법인의 활동에 대한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가려져 있던 만큼 양성화와 동시에 과세 공평성 제고와 재원마련이라는 부가적 효과도 확실히 노려볼 수 있는 장점도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같지만 서로 다른 1%만큼 변화, 박근혜정부의 후반기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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