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강남구청이 구립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재단 측에게 수익성을 이유로 사실상 의료진 감원을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심사평가원 기준보다 더 많은 의료진을 채용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요양병원 현실을 간과한 요구라며, 공공성을 보장해야 할 공공요양병원이 자칫 지자체 수익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며 지적하고 있다.
강남구청은 최근 운영주체인 A의료재단 측에 구립 행복요양병원 재위탁 심사를 추진하면서 구청 측이 병원의 인사, 조직권한을 가져가겠다는 내용의 위수탁운영 변경협약서(안)을 제시했다.
공공요양병원은 지자체 재산이지만, 실제 운영은 지자체가 경쟁입찰을 통해 전문의료재단에 맡기는 식으로 이뤄진다. 지자체의 요구수준을 맞추지 못하면, 의료재단은 일감을 따낼 수 없는 구조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협약서안 제13조 제3항을 살펴보면, 구청은 수익성을 위해 병원운영위원회를 통해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재단 측에 의료진 및 운영인원 감원을 요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구청의 사전 승진을 받지 못하면, 병원 의료·운영인력의 전출입 사항을 바꿀 수 없다.
의료재단이 운영주체지만, 구청 허가 없이는 직원 한 명 채용하거나 교체할 수 없는 것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이같은 협약서 조정안에 대해 “아직 확정된 조정안은 아니며, 협의과정에서 강남구청의 입장만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공공요양병원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대한공립요양병원협의회 관계자는 “공립요양병원은 운영기관 선정 권한이 전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라며 “지자체 조례에 의해 위탁기관 선정기준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병원운영을 맡으려는 의료재단 입장에서는 힘없는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돈벌이로 전락한 공공의료
전문가들은 이같은 강남구청의 감원 요구가 자칫 환자들에 대한 공공의료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강남구청 측은 현재 강남구립요양병원 의료진의 수는 1등급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수익성을 위해 일부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등급 병원의 기준은 환자 수 40명 대비 의사 1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요양병원의 실태와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공립요양병원협의회 관계자는 “요양병원에서 치료, 입원하는 환자들은 치매 등 나이가 많은 중증질환 환자가 많다”라며 “노화로 인해 각 의료과목 간 협진은 기본인데, 심평원 기준에 따르면 의사에게 야간 당직 배당하기도 힘들다”라고 전했다.
장애, 노환, 중증질환 환자는 다발성 질환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몸의 전체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인데, 노인의료에는 신경과, 정형외과, 안과, 심장내과 등 각 의료과목간 협진이 사실상 필수다.
또한, 정부가 의료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서벽지 등 의료취약지 치매, 장애인, 거동불편 환자 등 제한적으로나마 의사와 의료인 간 원격협진을 확대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다.
협의회 관계자는 “만일 의료재단이 방만한 운영을 했다면 지자체가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수익성을 이유로 과도한 감원이나 비용감축, 과잉진료를 등을 요구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평원 측도 병원의 각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있지만, 이는 최소 기준선일 뿐 병원의 적정 의료인원은 해당 병원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병원 환자 상태에 따라 의료인원 등이 얼마나 필요한지 검토한 바는 없지만, 수익성을 위해 과도한 인력을 줄일 필요는 있다”라고 답했다.
병원 수익금이 구청 몫?
‘의료법은 어디에’
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과도한 수익성 요구는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병원은 의료법에 의해 비영리로 운영되며 병원수익은 100% 의료기관에 재투자돼야 한다. 만일 개인이나 법인 등이 배당을 받을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
강남구립요양병원 위수탁협약서를 살펴보면 강남구청은 병원에서 흑자가 날 경우 순수익을 모두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종의 배당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이 돈이 구립요양병원을 위해 쓰이는지는 알 수 없다.
경기연구원 이은환 연구위원은 “수익성을 이유로 직원을 감원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관여에 해당할 수 있다”라며 “요양병원이라도 의료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수익 배당금을 의료기관 재투자 외 다른 용도로 썼을 경우 문제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를 막을 법제도는 부실한 상태다.
이 연구위원은 “위수탁 관련된 지침이 법에 정해져 있지 않고, 위탁업체선정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지자체들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협약내용을 정하고 있다”라며 “지자체가 공립요양병원에 대해 회계감사나 방만운영 등 필수적인 부분을 관리감독하는 것은 맞지만, 정상적인 운영에 대해 과도한 관여를 해서는 안 되지만, 관련 법이 없어 지자체와 병원 운영기관 간 잦은 법적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병원 운영에 대해 조정을 할 협의체로서 병원운영위가 있지만, 완전히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위원을 뽑는 권한이 지자체장에게 있고, 위원 중 일부는 지자체 공무원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감안해 올해 12월 13일부로 치매관리법을 개정, 공립요양병원 운영에 대한 사안을 법제도 안에 넣었다.
당국은 하위 법령개정을 통해 공립요양병원 표준계약서를 만들지 검토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치매정책과 관계자는 “치매관리법에 공립요양병원을 넣었지만, 법의 범위가 작아 공립요양병원 관련 잘못된 계약까지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추가적인 법 개정을 위해 정부, 국회, 시민단체와 각 이해당사자 사이에서 공공의료서비스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강남구립요양병원 ‘밖에서는 우수기관, 안에서는 미운 오리새끼’>
강남구청 측이 수익성 요구를 강조하는 이유는 병원운영을 A의료재단 측에 맡기는 동안 병원 수익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남구청 구립요양병원 운영관리 위수탁세부협약서에 따르면, 병원운영을 하고 남은 순수익이 있을 경우 순수익 전액을 구청 측이 가져가도록 되어 있다.
A의료법인은 강남구청에 돈을 지불할 수 없었는데, 이는 개원 이후 줄곧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A의료법인의 운영이 부실했던 탓은 아니었다.
주된 적자 원인은 2014년 초기투입비용으로 인건비, 초기 공실률 등으로 45억원의 적자가 났기 때문인데, 2015년부터는 적자폭이 수억원 단위로 크게 줄어들더니 지난해에는 흑자로 전환했다. 연간 누적적자도 2014년 45억원에서 지난해 40억원까지 감소했다.
덕분에 지난해 의료기관 평가인증원이 강남구립요양병원과 A의료법인을 의료품질과 병원 운영 관련 모범사례로 꼽기도 했다.
공공의료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재단은 지자체로부터 일체의 운영비를 지원받지 못하며, 적자가 날 경우 전액 부담해야 한다. 강남구청이 손실을 볼 여지는 전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강남구청 측의 돈 요구는 계속됐다.
강남구청 측은 2016년부터 A의료재단에 대해 ‘초기투입비용으로 부당하게 돈을 썼다’, ‘거짓인건비를 올려 횡령했다’는 등의 소송을 잇달아 냈지만, 법원은 근거무근이라며 강남구청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의료재단 측 관계자는 “강남구청 측이 수익금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처음 위수탁협약을 맺을 당시 강남구청 측의 요구는 구민들에게 질 좋은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었고, 이를 이행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적자를 전액 의료재단이 떠안기 때문에 의료인을 더 뽑아도 그 부담은 강남구청이 아닌 의료재단의 몫”이라며 “의료서비스 품질이 좋아져야 우수운영기관이 되고, 이것을 발판으로 더 나은 의료인프라 및 위탁계약조건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현실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편, 강남구청 측은 “개원 초기를 제외하고, 병원 경영이 호전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A의료재단 측이 과도한 인력을 쓰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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