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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르포] 의료대란, 응급실에서는 신음조차 숨을 죽였다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지난 2월 1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발표 이후 9주째 병원들이 침묵에 빠졌다.

 

아프지 말아야겠다. 다짐도 하고 운동도 했건만, 모친의 급환은 막을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급통과 동시에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의 식은땀. 미약한 호흡.

 

14일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119 구급차가 신속히 도착했지만, 정작 119구급차는 교차로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병원을 찾는 119대원의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다는 낙담이 묻어났다.

 

“선생님, 지금 응급환자 가는데, 진료 시간 얼마나 걸리나요. 두 시간 반…. 예예, 보호자 분, XX병원에서 진료까지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데 XX병원으로 갈까요.” (119구급대원의 말)

 

다른 병원 상황을 알아볼 것을 요청했지만, 마찬가지고 두세 시간 대기가 불가피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환자의 신음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어느 병원에 가야 하나.’

 

 

응급환자는 신속한 진료가 필요하지만, 의사 파업 이전에도 응급실은 항상 열악했다.

 

돈이 되지 않고, 힘들다는 이유로 홀대받기가 쉽고, 밀려드는 환자와 부족한 응급의료진과 병상…. 한국 응급의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 같았다.

 

파업 이전에도 대기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짤막한 침묵을 깬 건 신음하던 모친의 목소리였다.

 

“AA병원에 가. 내가 평소 가는….”

 

 

AA병원 응급실에 들어서자 이미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일곱 명가량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TV 소리조차 묵음으로 느껴지는 고요함 속에서

 

모친의 신음소리가 끊어지질 않았다.

 

주변을 오가는 병원 사람들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관심이 없었다.

 

나 역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모친의 손을 애타게 쓰다듬는 것 외에.

 

 

거의 두 시간 반 들어선 응급실에서 의사 대신 맞이해준 건 간호사들이었다.

 

십여 명 안팎의 간호사들이 분주히 다니며, 환자 상황을 확인하고, 혈관을 통해 수액이나 약물을 주입하는 동안 의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의사 파업 후 한국 의료는 즉각 붕괴했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응급의료는 간호인력을 갈아서 막고 있다는 셈이 된다.

 

모친에게 곧 수액과 진정제가 투여됐지만,

 

응급실 안에 들어오고 나서도 금세 진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만이 아니었다.

 

 

‘어디 아파요? 언제부터 아팠어요?’

 

20초 남짓한 의사의 짤막한 질문을 듣기 위해

 

응급실에 있던 모든 환자들은 묵묵히 수 시간을 기다렸다.

 

항의나 요청은커녕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친이 신음이 1초도 끊이지 않았음에도

 

응급실은 숨막힐 듯 평온했다.

 

“선생님, 저희 모친께서 한 시간 반 전에 진정제를 맞았거든요. 그런데도 급통 발생 이후 4시간 이상 같은 진통이 계속되고 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모친의 CT 촬영이 개시됐다.

 

얼마간의 기다림 후 원인이 발견됐고, 후속 조치도 이뤄졌다.

 

다만, 근본적인 조치는 의사가 없는 관계로 미뤄졌다.

 

레지던트 의사가 일단 투약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3일 내 수술을 상의하자고 알려왔다.

 

 

급통 발생 후 6~7시간 만에 응급상황이 종료됐다.

 

하지만 얼마간 멍한 통증이 머리를 계속 두드렸다.

 

과거 월례행사처럼 주야로 응급실에 간 경험이 있었지만,

 

이날의 응급실은

 

의료진에게 말 거는 것조차 머뭇거리게 했다.

 

이것은 환자부터 보호자, 119구급대, 간호사, 의사 등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상황이 그냥 이렇게 된 것이고,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순응한 것뿐이다.

 

 

하지만 통증은 순응할 수 없다.

 


피검사, 소변검사, 활력 징후에 이상이 없다고 해도

 

세 시간 이상 통증이 발생했다면,

 

어딘가에 해소되지 않은 증상이 있다는 뜻이다.

 

고통은 조치가 이뤄지기 전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환자의 신음이 수 시간 동안 멎질 않았음에도

 

의사 없는 응급실은 아무 관심도 없었다.

 

 

지난 4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일부에서는 일시에 2000명을 늘리는 것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정부가 주먹구구식,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의사에게는 일방적인 결정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한국의 응급의료는 이전부터 열악했고, 의사 파업 후 더욱 열악한 구조가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의 근거와 명분이 올바르다고 한들

 

어떤 명분 어떤 사유에서 의사파업이 발생했든

 

오늘도 응급실의 통증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응급실에선

 

신음조차 숨을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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