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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한 칼럼] 사상 최저 실업률의 역설

내수가 불황인데 실업률은 역대 최저
질 낮은 일자리가 노동시장 ‘뉴노멀’
비정규직 임금격차는 구조적 내수불황 요인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적정임금제) 도입해야

 

(조세금융신문=송두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지표로 보는 고용시장은 고용 활황임이 분명하다. 올해 8월 고용률은 63.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실업률 지표는 1.9%까지 하락하며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필자가 지난 30여 년간 경제전문가로 활동했지만, 1%대 실업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실업률 1.9%’는 사실상 전국민 고용 시대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완전고용 경제로 평가받는 미국의 실업률도 4.1%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성과가 지표에 반영되고 있다고 자평하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내수불황인데 고용 활황이라는 말로 들린다.

 

실업률 1.9%의 역설은 반값에 노동을 공급하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뉴노멀’로 정착하면서 질 낮은 일자리 증가가 실업률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의미한다. ‘주당 1시간’만 일해도, 아버지 가계 일을 ‘무급’으로 도와줘도 취업자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시장주의 이념에 뿌리내린 노동개혁이 비정규직의 시장 지배력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활동에서 이탈하는 구직단념자가 급증하고, 불완전고용에 노출되는 청년세대가 늘어나고,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가 새로운 표준으로 정착하고 있다. 역대급 최저 실업률 이면에 가려진 구조적 문제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실업률 1.9%’가 가능한 이유

 

실업률 지표는 내수 불황의 역풍을 뚫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1%대 궤도진입에 성공했다. 완전고용을 넘어 실업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전국민이 일하는 초(初) 자연실업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실업률이 유독 경제지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이유를 살펴보자.

 

첫 번째 문제는 ‘주당 1시간’만 일해도 다 취업자가 되는 불합리한 기준을 들 수 있다. 실업자를 실업자로 부르기 어렵게 만드는 엉터리 기준이다. 물론, 한주에 1시간만 일하면 취업자로 간주하는 ILO(국제노동기구)의 권고에 부합하기 때문에, 통계적 오류나 조작으로 볼 수는 없다. 권고는 그저 권고일 뿐인데, 우리나라 노동 환경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격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업자 근로시간 기준을 우리 현실에 맞게 바로 세우는 것이다. 미국도 ILO(국제노동기구) 권고를 따르고 있지만, 실업자 기준을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엄격하게 분류해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 지표가 통화 및 재정 정책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핵심 경제지표로 활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실업률이 높고 낮은 게 아니라, 우리 경제가 처한 실업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내수가 불황인데 고용이 활황이라면, 실업률 지표는 사실상 죽은 지표나 마찬가지다. 올해 2분기 성장률은 –0.2%(전분기대비)로 역성장했고, 가계실질소득은 몇 년간 제로성장의 사선을 넘나들고 있으며, 자영업자 코로나부채는 잠재부실이 현실화되는 구간에 진입했다.

 

또한, ‘부자 뺀 건전재정’의 여파로 나라 곳간이 거덜 나 민생 확대재정 여력이 소진되고,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소비 부진이 내수불황으로 이어지는 민생대란 사태에 직면해 있다. 실업률 지표로는 도저히 지금의 경제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는 이유다.

 

주당 15시간 미만(하루 평균 3시간)인 초단시간 일자리는 사실상 실업자로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실업자 기준을 ‘주당 15시간 미만’(초단시간 근로)으로 엄격하게 규정해 실업률을 재산정해 보자. 올해 7월 기준 초단시간 근로자는 약 180만 명 정도인데, 이 중에서 절반인 90만 명이 일자리가 없어 비자발적으로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실업자는 73만 7000명에서 163만 7000명으로 늘어나고, 실업률은 1.9%에서 5.5%까지 2배 이상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사상 최저 실업률은 전국민 고용이 가능한 ‘주당 1시간 근로’ 기준으로 인해 실업자가 취업자로 분류되는 착시일 뿐이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36시간 미만의 단기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36시간 미만의 단기 근로자 비중(취업자 대비)

: 2022년(28.6%, 803만명) ⟶ 2023년 23.9%(680만) ⟶ 2024년 8월(54.6%, 1,572만)

 

두 번째 문제는 고용 통계상 비임금근로자로 분류되는 ‘무급가족종사자’가 실업률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급가족종사자가 가족이 운영하는 업체나 가계에서 무보수로 ‘주당 18시간’ 이상을 일하게 되면, 취업자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가족 업체에서 일하는 무급 종사자는 엄밀히 따지면 실업자에 가깝다. 올해 8월 기준, 무급가족종사자는 91만 2000명으로 전체 실업자인 56만 4000명보다도 많다. 만약, 무급가족종사자를 실업자로 분류하면, 실업률 수치는 현재 1.9%에서 4.9%로 2배 이상 올라가게 된다.

 

물론, 미국의 BLS(노동통계국)도 무급가족종사자를 취업자로 분류하지만, 이 기준이 실업률 지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은 산업에서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가족 업체든 뭐든 무보수로 일하는 근로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무급으로 일하는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세 번째 문제는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져나가는 ‘구직단념자’가 늘어 실업률이 낮아지는 착시 현상이다. 일할 의사가 없어서 그냥 쉬고 있는 사람들이 실업자 통계에서 빠져나가 버리면, 실업률이 낮아지는 착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역대 최저 수준인 4.1%까지 떨어진 청년실업률이 이에 속한다. 구직을 포기한 청년(15~29세) 취포자는 2023년말 36만 6000명에서 올해 8월 46만 명으로 9만 4000명 증가했다. ‘쉬었음’에서 ‘청년 쉬었음’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15.6%에서 17.9%로 대폭 증가한 상태다. 이처럼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게 되면, 청년실업률이 떨어졌다 해도 다가올 고용 한파를 피하기 어렵다.

 

▲ 청년(15~29세) 쉬었음 및 전체쉬었음 차지 비중

: 2022년(40.6만, 16.4%) ⟶ 2023년(36.6만, 15.6%) ⟶ 2024년 8월(46만명, 17.9%)

 

정리하자면, 내수가 불황인데 실업률이 역대 최저를 찍을 방법은 딱 2가지뿐이다. 질 낮은 불완전고용(under-employment)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거나, 그것도 아니면 노동시장을 떠나는 구직단념자(쉬었음)가 늘어 실업률 공식의 분자가 가벼워지는 경우일 것이다.

 

비정규직 중심으로 시장질서 재편

 

단기 근로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비정규직 임금격차’ 문제가 포스트코로나 경제를 견인할 시대정신으로 부상하고 있다. 윤 정부가 지향하는 노동개혁의 본질은 양질의 노동력을 저가에 공급하는 비정규직 시장을 활성화해 기업 하기 좋은 노동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쌍팔년도 경제학에 나올 법한 ‘주 최대 69시간제’ 도입 시도나 쉬운 해고에 방점을 둔 노동시장 유연화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철 지난 시장주의 이념에 무너진 노동시장이 질 낮은 일자리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질 낮은 일자리는 양질의 노동력을 반값에 공급하는 비정규직 시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인 비정규직 공화국인데, 최근 10년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비정규직 비율은 2014년 32.2%(612만 명)에서 2023년 37%(812만 명)로 증가했으며, 이 중에서도 20대 청년세대의 비정규직 비율은 32%에서 40.3%로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비정규직 시장만 놓고 보면,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일 뿐만 아니라, 성장 속도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2022년 기준, 시간제와 특수 형태를 제외한 비정규직 비율은 우리나라가 27.3%로 네덜란드(27.7%)와 1위를 다투고 있으며, OECD 평균인 11.3%에 견줘도 3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문제는 노동시장이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196만원으로 정규직 임금(362만원)의 54%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몇 년간 수치를 비교해도 2018년 55%, 2020년 53%, 2022년 54% 등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의 시장가격은 대략 정규직의 절반 정도라는 인식이 확고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즉, 시장가격은 노동생산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지만, 비정규직의 노동 가치는 같은 일을 해도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근로 형태에 따른 생산성 격차가 20%, 30%도 아니고 50%라는 평가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친기업 편향에 기울어진 시장 왜곡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임금 비율(임금격차)

: 2019년 55%(144만원) ⟶ 2021년 53%(157만원) ⟶ 2023년 54%(167만원)

 

더 심각한 문제는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 증가가 가계의 소득증대를 억제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실질임금은 2022년 –0.2%, 2023년 –1.1%, 올해 상반기 –0.4% 등으로 사실상 성장이 멈춘 상태다. 가계소득이 감소하면 소비 충격이 발생해 결국 내수불황이 장기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국회가 입법을 통해 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특단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적정임금제) 도입해야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도 지켜지지 않는 계륵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도 비정규직 확장 억제에 실패했고, 윤 정부의 노동정책은 비정규직의 임금 억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비정규직 임금격차를 해소할 유일한 수단은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임금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하고, 그 안에 모든 기업이 비정규직의 임금 하한을 ‘정규직의 70% 이상’으로 규정하는 ‘적정임금제도’를 담아내야 한다. 근로 형태에 따른 노동생산성 격차가 30%를 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 노동의 질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그 차이가 30% 이상이면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통상적 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은 고사하고, 비정규직 임금에 50%의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은 기업에 기울어진 비정규직 시장의 현실을 보여준다.

 

둘째,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는 비정규직 시장의 무분별한 확산을 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유승민 의원이 제안했던 ‘비정규직 사용총량제’도 약탈적 고용구조를 개선하고자 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 ‘비정규직 적정임금제’는 먼저 공공부문부터 시행하고, 정책의 효과성에 따라 민간 부문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면서 일자리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데 비정규직 시장은 세계 1위이고,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가 된다 하니, 불안정고용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장 중심의 노동 개혁을 강조하는 사이, 양질의 일자리가 속도감 있게 사라지고 있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지향점을 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프로필] 송두한

• (현)민주금융포럼 상임대표

• (전)국민대 특임교수

• (전)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 (전)NH금융연구소장(NH금융지주)

• (전)Visiting Assistant Professor

(Otterbein University, Columbus, Oh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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