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두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내년 예산안에 담긴 정부의 재정운영 방향은 긴축 기조를 유지하며 민생재정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639조원으로 편성했는데 이는 올해 본예산보다 5.2% 증가한 수치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5%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긴축 예산안을 편성한 것이다.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법인세를 인하하면, 민생재정 축소로 이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이치다.
가정경제에 비유하면, 월급은 줄었어도 가계 소비만큼은 적극 확대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긴축을 통한 민생예산 확대는 “긴축을 통한 경기부양”과 유사한 수사적 조어에 불과하다.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경제 상황에서 지역화폐 예산은 통으로 날아가고, 공공임대주택이나 노인일자리 예산도 대폭 삭감되었다. 민생위기의 원천인 코로나부채 지원 예산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밑장 빠진 민생예산을 방치하면 결코 지금의 민생위기를 피할 수 없다.
지금은 민생 위기극복을 위한 특단에 특단의 대책을 만들고 이를 민생재정으로 지원해야할 때다. 코로나부채에 대한 보편적 이자감면과 저금리 대환대출, 물가지원금, 지역화폐 법제화 등과 같은 민생물가나 민생부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 경기충격에 대비해 공공 주담대매입후 임대전환 사업과 PF 정상화 뱅크 설립을 즉시 시행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금리정점 예고, 채권매입 대상 및 범위 확대, 기업어음/회사채 직접 매입 등을 통해 부동산 경착륙 위험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 밑장 빠진 민생예산이 중산층과 서민을 집중 타격
건전재정의 기치 아래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한 민생재정 분야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건전재정의 희생양은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정책”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올해 20.7조원에서 15.1조원으로 무려 5.6조원 삭감되었다. 여기에,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지원예산인 다가구매입임대 융자금도 2.6조원 삭감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 5.6조원 삭감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쉽게 와닫지 않는다. 숫자로 확인해 보자.
삭감된 공공임대주택 예산 5.6조원을 원상복귀만 해도 무주택 서민의 주거격차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 돈이면 대한민국 전월세 청년 200만명에게 1년간 매달 23.4만원의 주거급여를 지원할 수 있다. 또는, 전체 미분양 4.6만호의 40%를 매입해 무주택자에게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는 돈이다. 그것도 아니면, 윤석열정부의 역점 사업인 통합공공임대 4만 6천호를 신규로 공급할 수 있다.
주거복지 예산은 긴축이 불가능한 기본 복지예산으로 인식해야 하며, 정부가 재량으로 삭감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유일한 해법은 날려버린 공공임대 예산을 조건 없이 복원하는 것뿐이다. 정부가 예산증액에 동의하지 않아도, 여당이 반대한다 하여도 반드시 관철시켜야할 민생재정 예산인 것이다.
두 번째 긴축 민생재정 타깃은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다. 그동안 지속 가능 사업으로 추진해온 지역화폐 예산이 정부 예산안에서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은 2021년 1조 522억원에서 올해 605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가 내년 예산안에서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이유야 어쨌든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은 내수업종을 지탱해온 버팀목을 빼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지역화폐는 온전한 지역사업”이라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인데, 이게 지역에 국한된 문제인지 짚어보자.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가 대출로 임대료를 돌려막는 사이 자영업자대출이 눈덩이처럼 불러나 2019년 685조원에서 2022년 상반기 994조원으로 증가했다. 즉, 정부의 책임이 있는 코로나대출만 309조원인 셈이다. 정부의 대책이라고 해봤자 5차례에 걸친 이자유예 및 만기연장 조치가 전부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거나 대출금리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자여업자∙소상공인이 짊어진 코로나대출은 사실상 부실채권으로 보는 게 맞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화폐는 매출증대 대책인 동시에 코로나부채 대책이기도 하다. 지역 상권에 국한된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또한, 지역화폐는 물가지원금 형태로 소비를 촉진시키는 고물가대책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미친 금리인상을 단행했지만 잡으란 물가는 못 잡고 대출금리만 폭등시키는 부작용만 초래했다. 초유의 물가대란 사태에 직면한 내수업종은 지역화폐 할인을 통해 물가충격을 흡수하고, 민간은 소비 여력을 높일 수 있는 고물가대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물가대란 사태도 지역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지엽적인 문제란 말인가?
지역화폐 예산의 존치 문제는 기재부가 임의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지역화폐 정책의 경우, 코로나 민생 위기를 겪으면서 정책 수요자이며 주권자인 국민들이 이미 판단을 내린 정책이다. 민주당이 지역화폐 예산을 다시 증액하려고 한다지만, 이것도 엄밀히 따지면 날아간 것을 원상복귀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지역화폐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된 것도 아니다. 향후 별도의 특별회계 설치 등 지역화폐 예산의 지속 가능성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 특단에 특단의 민생대책을 담아낼 민생 위기극복 대책 마련
민생경제는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경제 상황이며 정부의 예산안으로는 결코 지금의 민생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가계부채는 “금리충격”에, 주택가격은 “부동산 경기충격”에, 금융시장은 “자본유출 충격”에 노출된 상태다. 즉, 경제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중산층과 서민의 삶은 이미 금융위기에 봉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산층과 서민을 집중 타격하는 부채충격, 고물가∙고금리 충격에 노출된 내수 업종, 부동산 경기하강에 따른 주거불안 등 총체적 민생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금처럼 민생재정이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와 맞물려 돌아간다면 결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특히, 미친 금리인상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1분기 전후로 부채 디레버리징(자산가격 하락을 수반하는 채무조정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어물쩡거리면 부채발 금융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유례없는 위기에 전례없는 대책으로 대응해야 하며, 총체적 난국에 빠진 민생경제는 금융위기에 준하는 특단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별도의 민생재정 추경안을 만들어서라도 보다 근본적인 민생대책을 마련할 때다.
그렇다면, 민생위기극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첫째, 민생위기의 원천인 코로나부채에 대한 특단의 부채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민생재정 예산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부채를 단순히 자영업자대출로 협소하게 규정해서는 안된다. 2019년 이후에 발생한 코로나부채는 가계대출, 중소기업대출, 자영업자대출 등 민간부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코로나부채 증분만 얼추 800조원 내외로 추산되는데, 자영업자대출이 309조원, 중소기업대출이 209조원, 가계대출이 253조원 정도다. 정부가 죽은 채권의 채무조정을 적극 지원한다 해도 살아 있는 800조원의 코로나대출을 방치하면, 부채발 민생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일례로, 살아 있는 채권에 대한 보편적 “이자감면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면 코로나부채 충격을 덜어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3%에 머물던 은행의 신용대출금리는 불과 1년 사이에 6%대까지 급등했다. 코로나 이전의 균형으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3%의 금리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1.5%에 해당하는 이자를 재정으로 지원하고, 펜데믹 이자폭리를 거둬들인 금융기관들이 1.5%의 금리인하(가산금리 축소, 우대금리 확대)를 통해 추가로 이자부담을 덜어주면 된다. 이에 약 12조원의 재정이 소요된다.
<금융위기에 준하는 특단의 민생대책과 재정 소요>
둘째, 코로나대출 한계차주에 대한 대환대출 여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부실 위험이 급증하는 비상경제 상황임을 가정하면, 한계차주의 부실대출이 전체 코로나대출의 10% 정도인 100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 물론, 금융위기가 발현한다면, 그 수치가 20%까지 확대될 수 있다. 코로나대출 관련 한계차주 비중을 10%로 간주하면, 5조원의 민생재정이 소요된다. 구체적으로, 정부나 한국은행이 신보에 5조원을 출자하고 이를 기초로 100조원의 대환대출 재원(보증배수 20배)을 확보하면 된다. 이 경우 전체 코로나대출의 10% 정도를 초저금리 대환대출을 전환할 수 있다.
셋째, 부동산 경기충격에 대비해 공공의 “주담대매입후 임대전환”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레고랜드 사태가 쏘아올린 PF시장 경색이 이미 “미분양 증가 ∙ 건설사 줄도산 ∙ 주택버블 붕괴”로 이어지는 경착륙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 충격이 가계대출의 절반인 주택담보대출 부실을 타고 넘어오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유일한 대안은 정부가 미분양 주택, 부실 및 부실위험 주담대를 적극 매입해 임대로 전환하거나 재고주택으로 비축한 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담대매입후 임대전환”을 통해 최소한 20~30만호의 부실 주택이나 미분양 주택을 흡수할 수 있어야만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공공의 주택매입에 소요되는 예산은 10조원 정도다. 일례로, 정부나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에 10조원을 출자하고, 주택보증도시공사(HUG)의 보증지원을 받아 100조원(평균 4억 기준 25만호)의 소요 재원을 확보하면 된다.
넷째, 민생재정 추경에 담아야할 가장 시급한 대책은 물가충격에 노출된 국민들에게 한시적으로 물가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물가상승으로 실질 소득이 감소하고, 이로 인한 소비충격이 내수업종 전반에 걸친 매출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민생물가대책이라고 해봤자 보편적 위험을 선별로 타격하는, 실효성 없는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물가지원금’은 소비지출 중에서 5%의 물가상승분을 소득 수준에 따라 차감하는 방식으로 전국민에게 6개월 한시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소득 1분위의 소비지출에 대해 물가상승분 5% 전액인 가구당 35만원을 지원하고, 차상위 소득분위는 2분위 30만원, 3분위 25만원, 4분위 20만원, 5분위 15만원 등으로 차감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 약 5조원의 민생재정 예산이 소요된다. 물론, 전국민 물가지원금은 다양한 형태의 보편이나 선별 지급방식을 고려해 재설계할 수도 있다.
끝으로, 현실로 다가온 미분양 대란 사태에 대비해 특단의 부동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한국은행은 “금리정점”을 예고해 미친 금리인상이 민생과 경제 위기로 전이되는 악순환고리를 차단해야 한다. 더불어, 채권매입 대상 및 범위를 대폭 확대해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채권을 매입해야 한다. 또한, 레고랜드발 PF부실 사태를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직접 매입해 유동성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은법을 개정해서라도 한은의 대응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분양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PF 정상화 뱅크” 설립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PF전문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가 아닌, 부실/미진 사업장의 정상화에 초점을 두고 운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 PF대출의 75%를 차지하는 비은행 PF(보험/증권/여전사/캐피탈 등) 정상화에 적합한 출자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민생재정은 확장재정의 범주로 간주하고,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와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지금처럼 소득세 감세가 대기업 감세보다 더 중하고, 무주택자 주거안정이 다주택자 중과 배제보다 더 시급하고, 민간부채가 정부부채보다 더 심각하게 와 닫는다면, 지금의 민생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프로필] 송두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 KDI 경제정책 자문위원
◾ 전) NH금융연구소장(NH금융지주)
◾ 전)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Otterbein University, Columbus, Ohio)
※ 저술: 서브프라임 버블진단과 파급효과 진단, 주택버블주기 진단과 시사점, 경영분석을 위한 고급통계학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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