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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맛있었다. 떡볶이도 그랬다. 동네 분식집에서 5개에 50원이던 떡볶이는 ‘사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늘 ‘동경의 맛’에 가까웠다. 어느 날은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5개 값을 내고 6개를 집어 먹은 적도 있다. 주인 할머니 몰래 떨리던 손,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작은 죄책감은 지금도 떡볶이를 떠올릴 때마다 어딘가에서 함께 피어난다.

 

어릴 적 여름이면 집에서 키우던 닭을 어머니가 직접 잡아 삼계탕을 끓여주시곤 했다. 지친 몸을 단숨에 회복시켜 주던, 그야말로 우리 집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서울세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삼계탕을 밀키트 형태로 수출하려는 기업을 대상으로 FTA 컨설팅을 한 경험도 있다. 요즘 삼계탕 수출이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한국인의 보양식이 이제 세계인의 원기 회복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때의 꿈같은 간식이 이제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시골 분식집에서 먹던 그 떡볶이가 뉴욕과 파리의 마트 진열대에 당당히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보면 한국의 삶과 맛이 바다를 건너 세계인의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 자체로 한 편의 긴 성장담이다.

 

K-콘텐츠가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으면서 K-푸드의 영역도 자연스레 넓어지고 있다. 노래와 드라마, 웹툰이 한국의 감성을 소개하면 라면·떡볶이·김치·고추장이 그 감성을 혀끝으로 확인시킨다. 문화가 마음을 열면 음식이 그 마음을 채운다. K-컬처와 K-푸드는 그렇게 서로의 길을 밝혀주며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가끔 해외에서 떡볶이가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어린 시절 분식집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맛이 이제는 국경을 넘어 ‘새로운 언어’처럼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얼마 전 전북 김제의 냉동밥·즉석식품 수출기업인 ㈜한우물을 찾았다. 미국 통상 환경 변화로 불확실성이 컸지만, 기업은 묵묵히 세계 시장을 향해 제품을 수출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단순히 밥을 파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식탁을 세계로 보내는 마음입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한국과 미국 간 팩트시트 공표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대표는 여전히 걱정을 털어놓았다. “수출 환경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라고.

 

 

돌아오는 길, 회사 이름 ‘한우물’을 떠올리며 삼행시를 지어드렸다.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한우물
(우) 리나라 최고의 기업이 되시길 바랍니다
(물) 심양면으로 관세청이 지원하겠습니다
말은 짧아도 마음이 담기면 전해진다. 대표의 웃음에서 그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K-푸드가 세계로 뻗어가는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K-관세행정의 손길이 조용히 개입되어 있다.

 

원산지 증명, FTA 적용, 복잡한 통관 절차…기업에게는 낯설고 부담스러운 과정이지만 이 문턱 하나가 수출의 성패를 가르기도 한다. 관세청은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원산지 확인서를 과감히 간소화하고, 관계기관의 인증서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원산지증명서 간소화 개선은 수출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을, 업무를 수행하며 여러 차례 체감하였다. 냉동·신선식품의 통관 시간을 줄이기 위한 제도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처럼 외부 변수는 언제든 찾아오지만 관세청은 기업의 어깨가 흔들리지 않도록 정책·정보·행정으로 묵묵히 받쳐주고 있다.

 

K-푸드의 성장에는 기업의 땀뿐 아니라 이렇듯 보이지 않는 관세국경관리의 섬세한 손길도 함께 스며 있다.

 

살아보니 세상에서 둥근 것은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늘 보름달처럼 둥글었다. 빈속에도 나를 먼저 챙기셨던 그 마음이 작은 비닐봉지 한 봉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K-푸드를 만들고 세계로 보내는 기업들도 어쩌면 그 둥근 마음의 일부를 이어가는 사람들 일지 모른다. 정성과 품질, 그리고 한국인의 따뜻한 정서를 담아 식탁 하나, 제품 하나에 마음을 얹어 전한다.

 

관세청이 해야 할 일은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착지까지의 길을 닦고 지켜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보름달이 밤을 밝히듯 행정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업의 길을 비춘다.

 

그 밝음이 이어져 언젠가 K-푸드가 세계인의 식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한 조각이 되는 날까지,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현장을 향해 손을 내밀 것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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