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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돈세탁(Money Laundering)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추운 겨울이 되면 가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리어카에 빨래를 가득 싣고 엄마와 함께 강가로 향하던 날이다.

 

리어카는 엄마가 끌고, 나는 뒤에서 밀었다. 겨울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몸이 먼저 움츠러든다.

 

엄마가 빨래를 하는 동안 나는 강가의 자갈을 집어 물수제비를 뜨며 기다렸다. 얼마나 추웠는지 손이 얼어붙는 줄도 몰랐다. 강아지처럼 주변을 맴돌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나는 ‘세탁’이란 그저 더러워진 것을 물에 씻어내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이가 들며 세상에는 ‘돈을 씻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처음 접한 ‘돈세탁’이라는 단어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강렬했다.

 

우리나라에 자금세탁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소개하신 분은 고(故) 이강연 관세청 차장님이었다. 차장님은 책자를 통해 자금세탁의 위험성을 알리고, 한국 역시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국제협력과 사무관 시절, 운 좋게도 그분을 상관으로 모실 기회가 있었다. 가까이에서 들은 문제의식은 작은 마중물이 되어 마음속에 남았다.

 

그리고 2001년 11월 28일,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출범했다. 당시에는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변화의 출발점 곁에 서 있었던 셈이다.

 

비슷한 시기, A 관세청장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관세청에 외환 수사권을 도입하고, 외환 조사 특별조사반과 금융계좌 추적 특별조사반을 설치하는 등 외환 범죄 대응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셨다.

 

사무관 시절 첫 해외 출장을 수행하며 그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탁월한 보고서 작성 능력, 통역이 필요 없는 유창한 영어, 성실함과 신속한 업무 처리.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외환에 대한 깊은 전문성이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분이다.

 

그 영향으로 학위 논문 역시 '아시아 외환시장의 투기적 공격에서 펀더멘털과 행태 금융의 역할'을 주제로 삼았다. 이후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외환은 늘 나의 관심사였다.

 

외환조사과장으로 근무하며 비로소 현장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불법 자금세탁과 재산 도피, 환치기 행위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관세청이 이를 어떻게 차단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서울세관은 외환 검사와 외환 수사의 중추 세관이다. 2014년 모뉴엘 사건은 위장수출 규모 3조 2천억 원, 해외 유출액 446억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외환 수사 사례다.

 

 

금융권이 불법성을 낮게 보았던 사안이었으나, 서울세관이 무역거래 구조를 정밀 분석해 범죄 실체를 밝혀냈다. 이는 관세청이 무역과 연계된 횡령·외환 범죄 수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서울세관장 재직 시절, 외환 조사 부서는 코스닥 상장회사가 허위 매출과 분식회계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미화 약 4,460만 달러 상당의 투자금이 정당한 사유 없이 필리핀 등 해외 관계사로 유출된 뒤 회수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는 수출입 가격을 조작해 매출을 부풀리고, 회계 조작을 통해 금융기관 대출이나 무역금융을 부당하게 편취하는 행위에 대한 점검과 수사를 더욱 강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아울러 사기·횡령 등 범죄로 취득한 자금을, 외환거래를 통해 국외로 이전하는 재산 국외 도피 행위에 대해서도 수사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경제지표 가운데 환율은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즉시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비로소 투기적 공격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본유출 규모는 점차 커지고 있으며, 이는 국부 유출과 외환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약류 범죄의 실제 규모가 적발 건수의 약 28.57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듯, 해외 금융계좌 역시 신고된 금액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

 

범죄의 암 수율과 빙산 이론을 적용하면, 현재 신고된 금액 뒤에 약 7배에 달하는 미신고 자금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본유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지난 2017년 삭제된 외국환거래법 제7조의 부재가 사각지대를 키우고 있다는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수출 채권 미회수는 일부에서 자본유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의 재산 국외 도피죄를 실질적으로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범죄의 실체는 존재하지만, 이를 포섭할 법적 고리가 느슨해진 셈이다.

 

2017년 당시 개정안은 경상거래의 자유화를 확대하고 기업 부담을 완화하려는 정책적 취지를 반영한 결정이었으나, 규제 완화 이후 이를 보완할 사후 통제 장치와 수사 연계 체계가 충분히 정교화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향후 입법 등을 통해 제도적 보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외국환거래법상 원인행위별로 살펴보면 불법 외환거래는 단일한 방식이 아니라 다층적·복합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상거래 영역에서는 수출 가격을 낮추거나 수입 가격을 부풀리는 방식이 활용된다. 정상적인 무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화를 국외로 이전하기 위한 수법이다.

 

자본거래 영역에서는 해외법인 설립이나 투자를 가장하거나, 해외법인의 매출을 고의로 회수하지 않는 방식이 나타난다. 파생상품 거래를 조작하는 사례도 있다.

 

특히 해외법인 매출 미회수는 수출 채권 미회수 규제 공백과 맞물려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지적된다.

 

용역 거래 영역에서는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 계약을 조작하거나, 해외 전시회·하도급 계약을 허위 또는 과다 계상하는 방식이 활용된다.

 

무형자산 거래의 특성상 실체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들이다.

 

특정 거래 영역에서는 중계무역이나 위·수탁 가공무역, 외국인도 수출입, 연계무역을 악용하는 방식이 나타난다. 거래 구조가 복잡할수록 자본의 실제 흐름은 더욱 은폐되기 쉽다.

 

최근에는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본유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가상자산 재정거래, 콜드월렛을 이용한 이전, 가상자산을 무역대금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전통적인 외환 규제 체계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오늘날 외환 범죄는 특정 법률 위반 행위로 포착되기보다는, 경상거래·자본거래·용역 거래의 구분을 교묘히 넘나드는 구조적 범죄로 고도화되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을 매개로 한 자본유출은 규제의 부재라기보다, 외환·금융·조세 규제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한 제도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외환 제도는 경제라는 건물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다. 불법 외환거래는 그 기둥을 눈에 띄지 않게 갉아먹는 쥐와 같아, 방치할 경우 제도 전체의 신뢰와 안전을 흔들 수 있다.

 

따라서 외환 질서 유지는 단순한 단속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화된 외환시장이 스스로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하는 최소한의 공공적 안전장치이다. 이러한 안전장치의 한 축을 관세청의 외환 검사와 외환 수사가 담당하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출범은 자금 흐름을 금융거래 차원에서 포착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무역과 외환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자금 이동은 금융 정보만으로 그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세청의 외환 검사·외환 수사는 거래의 실물과 자금 흐름을 결합해 분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다른 기관이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이다.

 

환율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관세청 역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장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외환 검사와 외환 수사를 중심으로 세 가지 방향에서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첫째, 외국환 법령을 위반한 무역대금 지급·수령 행위다.


둘째, 가상자산 등을 활용한 환치기와 같은 외환시장 교란 행위다.


셋째, 무역을 가장하거나 수출입 물품을 조작해 외화를 빼돌리는 행위다.

 

고환율 국면을 악용한 불법·변칙적 거래에 엄정히 대응함으로써, 건전하고 안정적인 외환시장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겨울 강가에서 얼음 아래 흐르던 물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외환과 자금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표면은 고요해 보여도, 안에서는 복잡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그 보이지 않는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며 작은 균열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차갑고 깊은 흐름일수록 누구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때 손을 대지 않으면 혼탁은 더 커진다. 그래서 누군가는 얼음을 깨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은 바라본다고 맑아지지 않는다. 외환과 자금의 흐름을 들여다보는 이유도 같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흐름을 바로 세우는 일, 어렵고 고될수록 외면해서는 안 될 행정의 책임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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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상속세제 개편 논의 이어가야
(조세금융신문=이동기 한국세무사회 세무연수원장) 국회는 지난 12월 2일 본회의를 열어 법인세법 개정안 등 11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중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일부 조문의 자구수정 정도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인 개정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앞서 지난 봄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피상속인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하는 현재의 유산세 방식에서 상속인 각자가 물려받는 몫에 대해 개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상속세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상속세제가 그동안 낮은 상속세 과세표준 구간과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세율, 또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부동산가격의 상승과 물가상승률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낮은 상속공제액 등으로 인해 상속세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과 함께 상속세제 개편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재부가 2025년 3월 ‘상속세의 과세체계 합리화를 위한 유산취득세 도입방안’을 발표하면서, 유산취득세 방식의 상속세제 도입을 위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 관련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됐다. 이 무렵 정치권에서도 상속세제 개편에 대한 의견들이 경쟁적으로 터져 나왔었는데, 당시